• '나 다시 돌아갈래' 그 남자의 부활
    By mywank
        2009년 07월 24일 05: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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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동 감독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박하사탕>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첨예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광주’를 텍스트로 삼는 영화이다.

    20년 전의 이 사건은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년 이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근거리의 사건이기에 아직은 ‘역사’라기보다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소위 새 밀레니엄을 여는 2000년 1월 1일 0시라는 상징적인 시점에 개봉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일 것이다.

    1999년 가을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작이라는 이름값을 걸고 <박하사탕>이 개봉되었던 초반에 관객의 반응은 썰렁한 것이었다. 그러자 ‘이렇게 훌륭한 한국 영화를 이런 식으로 끝나게 할 수는 없으니 보고 또 보아서라도 스크린에서 내리는 것만은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더니 뒷심을 발휘해 47만이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 영화 <박하사탕> 포스터

    80년 광주를 분기점으로 분단 이래 관행화 되어왔던 소수 엘리트 중심의 선언적 정치운동은 민중주도의 실천적 참여 및 연대라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으며,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역사는 동시대인들에게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밝힐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광주’를 말하다

    현실과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하던 문화 역시 이러한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후 광주에 대해 다양한 매체로부터 다양한 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텍스트들은 80년대의 철저한 언론 통제 상황 아래서 비합법공간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실기록에서 출발했다.

    광주의 실상이 점차 알려지게 되면서 ‘광주문제’는 80년대 모든 분야의 운동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되었고, ‘민주화’의 척도가 되었다. 이후 소설이나 시, 연극, 노래 등을 통해 광주를 재현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텍스트들은 주로 국민 전체를 당시 정치 현실의 피해자로 설정하면서 광주를 순교자로, 당시의 정권, 군부, 언론, 미국, 재벌 등을 가해자로서의 적으로 규정하고(정치적 입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광주 외부의 사람들에게 광주에 대한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서술방식이 주축을 이루었다. 순교자로서의 광주와 피해자로서의 국민의 연대감을 촉발하는 이런 서술방식은 텍스트의 수용자에게 정치적 실천을 촉구하는데 강력한 정치적 선전선동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규제와 검열에 의해 가장 강한 통제권 하에 놓여있었던 영상매체는 그 행보가 비교적 더딘 편이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드러나는 ‘광주’는 기존의 다른 매체로부터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후에,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참여와 실천의 요구를 비껴간 후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의 정치적 해결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90년대 이후에야 합법적인 영상매체가 광주를 텍스트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시기는 대부분의 국민이 87년의 대대적인 시민운동인 ‘6월 항쟁’을 기폭제로 하는 정권교체, 문민정부 수립 등의 정치적 변화와 실망 등을 체험한 이후로서 정치적 피해자로서의 연대감을 광주와 공유하기에는 거리감이 형성된 시기이다.

    그러면서 광주에 대한 영화 텍스트는 이제 80년 5월 당시의 광주를 우리 역사의 정치적 외상으로서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호명하는 <꽃잎>과 같은 피해자 중심적 서술방식의 영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가해자 중심적 서술 <박하사탕>

    그러다가 광주에 대한 정치적 이용을 통해 ‘호남출신 대통령’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이후, 신보수주의의로 지칭되는 우익 세력이 결집되면서 광주에 대해 ‘화해와 용서’를 요구하게 되었다. 광주에 대해 가해자 중심적 서술이 가능해진 <박하사탕>의 등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짚어볼 때 그 의미가 다시 새겨질 수 있다.

    상업적 영상매체를 통해 광주가 드라마의 소재로 처음 가치를 드러낸 것은 94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서였다. 이 드라마는 소위 ‘모래시계 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이들의 영상매체에 대한 상품적 가치를 드러냈다.

       
      ▲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꽃잎>

    이 드라마에 등장한 광주는 중심소재라기보다는 전체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받쳐주는 서브 플롯 가운데 하나였지만 ‘광주’를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재현했다는 사실과 그 재현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평가가 아니라 막연한 휴머니즘적 시각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었다. 또한 <모래시계>를 통해 ‘광주’가 영상물로서 매혹적인 상품가치를 가진 소재이면서 더 이상 완벽하게 통제된 금단의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모래시계> 이전에 91년 이정국 감독이 영화 <부활의 노래>를 통해 광주를 영상화한 적이 있으나 이 영화는 심의와 검열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개봉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정치적 여건이 바뀌면서 ‘광주’에 대한 검열의 수위도 달라지게 되었으며, <모래시계>가 그 시험대 역할을 하게 되자 1996년 장선우 감독은 <꽃잎>을 제작하여 5.18의 영화적 재현을 시도했다

    <부활의 노래>부터 <박하사탕>까지

    <부활의 노래> 관객이 만여 명에 그친 것은 열악한 상황과 제작 여건에 따른 영향이 컸다고 한다면, 광주를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제작된 <꽃잎>이 23만 관객을 불러들여 한국영화의 평균은 넘어섰지만 드라마 <모래시계>의 폭발적 신드롬에는 못 미치는 결과를 보인 것은 ‘광주’라는 사건에 대해 재현 자체보다는 해석의 관점이 중요해지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하사탕>의 흥행은 광주라는 사건을 다루는 형식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박하사탕>은 1999년 어느 날 철로 위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한 남자가 그 곳을 출발점으로 해서 시간이라는 레일을 타고 역사라는 기차를 거꾸로 돌려 개인의 삶이라는 창을 통해 보는 여정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99년 주인공이 갑작스레 뛰어들어 망쳐버리는 ‘야유회’를 현재로 시작해서 79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7개의 단락으로 나누고 한 지점씩 머물면서 처음에는 모호하던 그의 종착역이 분명해질 때까지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먼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야유회’로부터 출발해서 주인공 영호가 그 며칠 전 죽어가는 첫사랑을 만나면서 기억을 불러들이는 장치로서의 ‘사진기’, IMF 이전 경제적 호황기인 94년의 속물 쁘띠 부르주아로서 갈고 있던 시절의 ‘삶은 아름답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7년 수배자인 운동권 학생을 잡으러 간 지방에서 술집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하는 ‘고백’, 전두환 정권의 지독한 억압의 시대 84년에 형사가 되어 첫사랑과 헤어지고 식당집 딸과 섹스를 하기 전에 하는 ‘기도’에 이르기까지 흔한 통속극에 흔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형적 삶을 보여준다.

    그 통속성은 관객의 동일시와 몰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면서 뻔한 공식대로 다음 지점에서의 반전 또는 회차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대한민국 남성의 통속성을 양성하는 터전인 군대가 바로 그 지점이다. 80년 5월 이등병 시절의 영호가 영문도 모르고 자의식도 없이 광주에 허겁지겁 파견되는 ‘면회’에서 그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청년기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어 첫사랑과 이별하듯 광주를 지나쳐서는 79년 구로공단의 푸릇푸릇한 야학 청년들 속에 끼어들더니 눈물 한방울로 보편적 순수의 상징을 획득하는 ‘소풍’ 장소에 간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

    이렇게 꽉 짜인 형식은 극중 실제 화자의 존재를 감추고 주인공을 통해 관객에게 일방적 메시지를 강요한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속에서 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분절시키고, 시간의 역으로 사건들을 배치하면서 삶을 인과론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미스터리 장르 기법과 플래시백을 통해 완벽하게 조직화된 내러티브를 구축하면서 타락과 폭력의 주체로서 사회에 대한 가해자였던 한 남자를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역사와 체제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피해자로서 존재증명을 해준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플롯의 구성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도식화되어 있다.

    영화는 노동계급 출신의 비지식인 주변인으로서의 남성을 통해 개인의 삶이 역사적,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폭력적으로 중층 결정되는 과정에서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내러티브의 폐쇄성은 영화 속 화자가 주체가 아니라 실제화자로서의 작가만이 주체이며 관객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텍스트를 생산적으로 해독할 길이 봉쇄된 채 수동적 청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감독 자신은 이런 짜임새에 대해 ‘시간을 거꾸로 가고 싶다는 욕망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하는 욕망과 같다’고 말하고, 자신이 영화 속에서 선택한 연도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지점임을 인정하면서 그런 시간의 선택과 배열을 위해 선택한 장치로서의 사진과 기차를 선택한 까닭을 설명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시간을 한 순간 움켜잡으려는 것인데 영호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은 시간을 자기 것으로 움켜쥐려는 감독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며, 거꾸로 가는 시간을 일깨울 이미지로 기차를 사용하면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슬픈 정서로 풀어내고자 했음을 밝혔다.

    그래서 <박하사탕>은 정치적 폭로나 이데올로기적 저항, 역사적 사건이 갖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추구보다는 광주의 직접적인 피해자를 제외한 국민 전체를 가해자로서의 위치에 세워 놓고 정치적 저항성, 진보적 실천 행위보다는 공범의식에 기반한 역사의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현재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주인공 영호는 80년 당시를 기점으로 이후 내리 폭력과 타락을 직접적으로 행사한 가해자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의 마법을 통해 가련한 역사의 피해자로 거듭난다.

    그는 <넘버3>의 깡패 검사 마동팔의 ‘죄가 무슨 죄가 있냐, 죄 지은 놈이 나쁜 놈이지’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죄지은 자가 무슨 잘못이냐, 상황이 죄일 뿐’이라고 두 눈 부릅뜨고 강변한다. 불의를 저지른 자들, 그 앞에서 비굴하게 숨죽였던 자들 모두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죄지은 자가 무슨 잘못이냐, 상황이 죄일 뿐"

    이렇게 실천적 주체로서가 아닌 역사 속에서의 수동적 존재로 설정된 가해자 입장에서 ‘광주’를 진술하는 <박하사탕>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은 한 개인의 삶을 회상해 나가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시대의 알리바이를 조직화해낸다.

    남자의 회상은 치밀하게 계산된 역사의 재구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청년기의 순수, 첫사랑의 신화, 쁘띠 부르주아 가정의 붕괴, 권위를 상실한 남성의 불행 따위의 아주 익숙한 장치들을 클로즈업해 들이민다.

       
      ▲ 영화 <박하사탕> 한 장면

    이 모든 장치들이 봉사하는 것은 파시즘의 다른 이름인 남성주의의 자기연민에 대한 정당화다. 이런 정당화는 우리 역사에 꾸준히 반복되어 온 하나의 경향이다. 반민특위를 무산시키고, 박정희를 부활시키고, 전두환을 복권시킬 수 있었던 역사의 고질병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소리지르는 순간 스무 살 청년으로 눈물 흘리며 부활하는 것이다.

    그 부활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 우리 시대의 영화이며 그 영화를 승인한 것이 우리 시대의 대중이라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 남자 김영호는 기차에 치어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새파란 청춘으로 거듭 태어났음을 깨닫는 것, 언제 어디서고 불현듯 나타나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우리를 욕조에 처박을 수 있는 그 자가 바로 우리 안에 살아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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