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이 공동묘지 되길 원하는가?
    By 나난
        2009년 07월 23일 01:5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월요일이었던 20일 아침, 경찰헬기가 투명한 비닐봉투를 도장 공장 옥상에 투하했습니다. 비닐봉투가 터지자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최루액이었습니다. 도장 옥상에 있던 동지들은 연신 재채기를 해댔습니다. 돌아온 경찰헬기는 ‘체루액봉투탄’을 무더기로 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체루액봉투탄’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경찰헬기는 ‘허연’ 체루가스를 무차별로 살포했습니다. 공설운동장에서 날아온 세 대의 헬기가 번갈아가며 도장 옥상을 저공비행해 체루가스를 난사했습니다. 도장공장 위를 모두 덮어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습니다.

       
      ▲ 경찰헬기에서 최루액과 형광물질을 뿌리고 있다 (사진=쌍용차 지부) 

       
      ▲ 용역 방화에 의해 불탄 차량 (사진=쌍용차 지부)

    바람을 타고 날아온 체루가스는 굴뚝도 하얗게 뒤덮어 버렸습니다. 무차별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은 도장공장 가까이에서 물대포를 난사했습니다. 도장을 에워싼 경찰병력은 프레스공장과 조립공장을 차례차례 진입해 도장공장을 완전하게 포위했습니다.

    70m 굴뚝 위에서 차마 이 참혹한 광경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과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는 각오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슬러 싸우고 있는 도장공장의 동지들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

    지금은 22일 밤 12시가 다 되어갑니다. 20일부터 시작된 살인진압은 공장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저녁 식사로 주먹밥이 올라왔지만 계속되는 가슴 통증으로 먹지 못했습니다. 낮에 남겨놓은 죽으로 간신히 허기만 때운 후 약을 먹었습니다.

    오늘로 굴뚝에 올라온 지 71일째입니다. 처음 올라왔을 때는 한 밤의 추위가 가장 고통스러웠는데, 최근에는 폭풍을 동반한 천둥번개와 한 낮의 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공장 밖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아빠들을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의 고통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헬기 3~4대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을 울리며 굴뚝과 도장공장 주위로 낮게 날아 최루액을 대량으로 살포합니다. 진압작전이 끝나면 회사에서 24시간 동안 틀어놓은 방송소리가 귀속을 뒤흔듭니다. 남녀가 번갈아가면서 노조를 비난하고 조합원을 회유하고, 늘어지는 헤이즈의 음악을 틀어댑니다.

    KT가 민주노총을 탈퇴했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는 방송이 계속되더니, 지금은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민주노총에 한 자리 하는 데 이용당하지 말고 나오라고 떠듭니다. 초등학생만도 못한 저질방송을 뻔뻔히 틀어댑니다. 낮에는 헬기의 굉음 때문에, 밤에는 선무방송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전선에서 북쪽에 있는 인민군에게 이런 방송을 틀어대겠지요. 여기 있는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이 적군입니까? 밤낮으로 자동차를 만들며 1~200만원 월급 받아 10년 20년을 살아왔던 노동자들, 이제 제발 같이 살자고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테러범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미치게 해 이 위험천만한 곳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 쇠파이프를 둔 용역과 경찰 진압대 (사진=쌍용차지부)

    밤새 계속되는 선무방송으로 주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시민들까지도 잠을 잘 수 없다고 항의를 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끔찍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오늘 노조간부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안성의 한 묘지에 묻히셨습니다. 회유와 협박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견디지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치가 떨렸습니다. 당장 굴뚝에서 내려가 그분에게 고통을 준 회사 관리자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우울증이라구요? 쌍용차 조합원들과 가족 중에 우울증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단연코 회사가 죽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없는 아이들의 엄마, 노인데들까지 협박하고, 지금 나오지 않으면 감옥에 간다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회사가 싫어지고 이제는 인간이 싫어지고 제가 만들던 쌍용자동차까지 싫어지려고 합니다.

    평택공장이 노동자의 무덤이 되길 원하십니까?

    경찰과 용역깡패가 공설운동장에서 함께 최루가스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루가스에 어떤 화학약품을 넣는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수면가스를 넣고 있는지, 아니면 식욕이 없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타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을 확인하겠다고 갔던 금속노조 조합원 30여명을 연행했다고 하니 더 더욱 두렵습니다.

    오늘 경찰특공대가 우리 조합원들에게 테이저건이라고 불리는 전기총을 쏘아 다섯 명이 쓰러졌습니다. 5만 볼트의 전류를 발생해 근육을 마비시켜 큰 부상을 입히는 대테러무기를 왜 아무 잘못이 없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발사한다는 말입니까?

    경찰이 쏜 총탄이 우리 조합원의 볼을 관통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인데도 의사를 들여보내지 않는 자들이 진짜 같은 나라 국민입니까? 2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20여명이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다 죽어서 이 공장을 나가길 원하십니까?

    음식물 반입을 중단하고 물과 가스까지 끊고, 경찰특공대 100여명과 용산철거민참사 때 쓰던 컨테이너를 가져와 기어이 도장공장 살인진압을 강행하시겠다는 겁니까? 정말 평택공장이 노동자의 무덤이 되길 원하십니까?

    자동차 엔지니어가 꿈이었던 가난한 농부의 아들

    저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엔지니어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동차를 고치고,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 한 조합원의 가족이 철문 너머 아빠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쌍용차 지부)

    2003년 쌍용자동차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100만원밖에 안되는 적은 월급이었지만 정규직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우리 네 식구의 조그마한 꿈은 정규직이 되어 안정된 직장에서 조금씩 돈 저축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아왔다며, 서민을 위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시는 이명박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과 생계를 꾸려가고 싶은 우리들의 꿈이 욕심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저를 포함해 여기에 있는 노동자들은 평생 경찰서 한 번 가보지 않은 착한 노동자들입니다. 남의 돈 빼앗아본 적 없고, 남의 물건 훔쳐본 적 없습니다. 버는 돈 그대로 정부가 달라는 대로 세금 내고 은행에 한 푼 두 푼 모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사려고 발버둥치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녕 이 착한 사람들을 적군으로, 테러범으로 몰아 평택공장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제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멈추어 주십시오.

    2009년 7월 22일 밤 12시 70m 굴뚝에서 서맹섭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