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성, 전문성 두 마리 토끼 잡은 책
        2009년 07월 21일 09:2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 – 『자본』의 대중화

    『자본(Capital)』이 출간된 지 꼭 100년 뒤 영국 수상 해로드 윌슨(Harold Wilson)은 이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겨우 2페이지에서 멈추고 말았다.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 주석이 나오는 그 부분 말이다. 나는 본문 두 문장에 주석 한 페이지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 책 표지

    ‘본문 두 문장에 각주 한 페이지인 엉터리 책’을 읽어 보지도 않고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려는 목적으로 말한 윌슨의 언급은 『자본』에 대한 지배계급의 뿌리 깊은 불신이 낳은 무시와 편견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무시와 편견으로 『자본』을 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도 『자본』은 읽기에 너무 어려운 책이다.

    고등학생 논술이나 대학생의 기초교양 함양을 위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쌓인 사람들이나 『자본』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거나 학문적으로 이 책을 해석하고 비판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나 모두 『자본』은 두껍고도 딱딱하며 난해하고 골머리 썩이는 책이다. 이들에게 『자본』은 ‘본문 두 문장에 각주 한 페이지인 난해한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난해한 『자본』을 이해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두꺼운 이 책에서 마르크스(K. Marx)가 제시한 핵심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난관에 부딪힌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로 이 책의 해설서를 손에 들게 된다.

    『자본』이 금서였고 이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위반 대상이 되는 1980년대에는 주로 일본에서 나온 해설서들이 이 역할을 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자본』이 번역되면서는 아주 다양한 해설서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로써 역할해 왔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온갖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한국에 수입되어 유행하면서 『자본』 해설서들은 한물간 낡은 책으로 무시되면서 그나마 제 기능 자체마저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2000년 들어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로써 해설서들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전에 폐기처분된 해설서들이 표지를 바꾸거나 제목을 바꿔 출판되었고 『자본』을 보다 쉽게 해설한 책들이 출판시장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자본』해설서들은 기존의 일본이나 소련 혹은 서유럽의 해설서들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학자, 전문 집필가, 활동가 등이 제 나름대로 『자본』을 이해한 결과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자본』의 핵심내용을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해설서들은 많은 현실의 예를 들어 최대한 쉽게 풀어 쓰고 그림이나 만화를 넣어 독자들에게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이 점은 2000년대 들어 『자본』해설서에서 나타는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화된 『자본』 해설서 – ‘대중성’과 ‘전문성’의 조화

    『자본』해설서의 흐름이라는 맥락에서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는 2000년대 들어 출판된 『자본』 해설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이자『자본』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시적으로 보면 이 책은 “『자본론』을 최대한 쉽고 재밌게, 핵심 내용만 뽑아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자본』 대중화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 해설서들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서평자가 판단한 장점은 무엇보다도 이 책이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자본』해설서들은 ‘대중성’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개념 자체나 핵심 내용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해설서들은 ‘전문성’에 너무 치우쳐 『자본』을 직접 읽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두 편향을 극복하고 ‘대중성’과 ‘전문성’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키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본』해설서와는 차별화된 것이다.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스포츠 신문」을 경쟁상대로 한다. 「자동차 운전면허 예상집」이나 『마법천자문』 또한 이 책의 경쟁상대이다. 이들과 경쟁해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책은 『자본』의 개념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방식을 채택한다.

    예를 들어 생산의 목적이 이윤추구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나온 이야기는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니? 당연히 돈 벌려고 회사 만들지, 그럼 뭐 하러 만드나?” 이 책의 곳곳에 배치된 대화들은 『자본』에서 사용된 개념이나 핵심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책에 손문상 화백이 그린 그림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책의 내용을 명쾌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다른 측면에서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 이 책은 개념이나 내용을 현실 생활에서 경험하는 일(아마도 필자가 현실에서 경험한 일일 것이다!)과 잘 조화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 든 예를 보자.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알코올 축적의 본성’을 기반으로 ‘절대적 음주가치 생산’과 ‘상대적 음주가치 생산’이라는 현실적(!) 개념을 사용한 것, 자본의 순환과 회전을 구분하기 위해 ‘순환목마’와 ‘회전목마’를 비교한 것, 자본의 재생산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가 막대기를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들이 만든 솜사탕을 빼앗아 먹는 아버지를 비유한 것.

    이 책에 나온 예들은 독자들이 늘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딱딱한 개념이나 내용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자본』 자체를 경쟁상대로 하는 듯하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본』 1~3권의 핵심내용을 순서대로 전개하면서 독자들에게 『자본』의 개념이나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자본』에서 제시된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이를 최대한 『자본』에서 제시된 방식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경쟁상대인 『자본』이 가진 전문성을 충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는 『자본』해설서로서의 ‘대중성’과 ‘전문성’을 잘 융합하여 쉽고도 흥미롭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자본』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서평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문구인 “인류사를 뒤흔든 『자본론』을 가장 쉽게 풀어쓴 책”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가장 쉽다는 표현은 ‘대중성’과 ‘전문성’ 모두를 충족시키려고 할 때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평자의 의무 – 좋은 독서를 위한 제안

    그런데 『자본』을 가장 쉽게 풀어 쓴 책임에도 독자들은 이 책의 한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이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록 『자본』이 두껍고도 딱딱하며 난해하고 골머리 썩이는 책이기는 하지만, 『자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리는 반드시 원전 자체를 읽음으로써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만으로 독서를 중단하지 말고 독자들은 『자본』자체를 읽으려 시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명쾌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을 완성했고 2권과 3권은 그가 죽은 이후 엥겔스(F. Engels)가 남겨진 유고를 바탕으로 편집했다는 점에 크게 기인한다. 따라서 『자본』이 가진 한계는 『자본』해설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책의 개념설명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예를 들어 잉여가치를 설명하는 과정이 좀 더 보강되었으면 한다. 등가교환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비밀에 대한 설명을 보강하고 잉여가치의 전유로써의 ‘착취’를 좀 더 강조하는 서술이 있었으면 한다(책의 87~89쪽의 설명).

    또한 잉여가치와 이윤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인가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는 것인가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일한 실체의 다른 표현임을 앞부분부터 강조할 필요가 있다(105~106쪽의 설명과 239~240쪽의 설명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 자본의 변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산자본, 상품자본, 화폐자본의 통일 속에서 산업자본을 설명하는 방식과 자본 분파로서 산업자본으로부터 상업자본, 금융자본의 분리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한 보다 명료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156~158쪽과 13장의 설명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 금융자본을 ‘가짜자본’이라고 표현하며 실물자본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는 방식은 개념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215쪽).

    넷째,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14장과 15장의 이윤율 저하와 공황의 설명은 혼란스럽다. 서평자가 보기에 이 책의 설명은 이윤율 저하경향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내용과 공황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혼재되어 있다(대표적으로 253쪽의 ‘공황을 늦추는 것들’).

       
      ▲ 서평자 장시복 교수

    더욱이 공황을 이윤율의 최저점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든지(254쪽의 설명) 공황을 파국으로 인식할 오해가 있는 문장들(238~239쪽의 표현)은 설명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서평자의 생각에는 14장에서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15장에서 공황을 다루는 서술방식이 더 좋을 듯하다.

    이러한 지적들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위해서 서평자가 해야 할 의무임을 밝힌다. 다시 말해 서평자의 의도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새로운 건설’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서평자는 이 책이 『자본』을 가장 쉽게 쓴 책이라는 점에 흔쾌히 동의하며 이 책이 수많은 독자들과 교류하며 『자본』을 이해하려는 사람들과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