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어린왕자의 음모 추적기
    By 내막
        2009년 07월 18일 1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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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새 장르를 열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1943년)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특징 때문에 ‘선물용 도서’로 각광받고 있다.

    10년 전 만화와 오늘의 상황

    또 어느 집에나 최소 한 권 이상이 꽂혀있고,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새로운 판본 혹은 패러디물이 서점가에 등장하는, 어떻게 보면 좀 식상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어린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이하 『어린왕자의 귀환』) 은 지금까지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패러디물은 물론 『어린 왕자』 원전과 비교해서도 돋보이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어린왕자의 귀환』이 담고 있는 풍자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09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린 왕자』 원전이 내포하고 있던 수많은 상징들을 이해하는 보너스(?)를 얻게 된다.

    데뷔작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역사와 현실 사이에 나타난 유사성을 꿰뚫는 통찰력과 통렬한 시사성, 배꼽 잡는 해학성을 함께 보여줬던 만화가 김태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해제를 썼다.

    사실 이 책의 기본 골격은 김태권이 1999년부터 노동단체 소식지나 대학 교지 등에 기고했던 작품들로, 김태권은 ‘작가의 말’에서 편집자의 제안으로 이 책을 구상하면서 작업에 앞서 20대 때 그렸던 만화들을 펼쳐들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10년 전에 그린 만화가 지금 상황과도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문제 그 자체는 더욱 심각해졌던 것이다. 오늘날 빈부 차는 더 커지고 일자리는 더 위태위태하며 FTA는 몰려오고 민영화는 몰아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경제학의 가장 논쟁적 이슈들을 한 권의 만화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고전적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신자유주의의 해악이다. 고전적인 노동 통제의 방식들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건강보험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 문제, 각종 규제 철폐와 개발주의로 인한 환경 문제, 주거 문제, 또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각종 통제의 부활….

    21세기 한국 사회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독자들 앞으로 호출된다. 이는 작가가 고백했듯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는 아니다. 또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미망에 사로잡혀 ‘이 정도쯤은 괜찮아, 별 문제 없겠지’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던 사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조금씩 더 각박해지고 척박해졌는지 이 만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분명 시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만평식의 일시적인 풍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노동과 상품, 초과이윤이나 분할통제, 시장주의, 비교우위론 등 정치경제학의 기본 개념들이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좀더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공공부문 민영화를 다룬 6장만 하더라도 시사적인 이슈와 역사적인 정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주 특별한 경지를 보여준다.

    청소년 세미나 교재용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딱딱한 정치경제학 책을 바로 집어 들기에 어색함을 느끼는 학생, 청소년, 일반인들이 세미나 교재로 사용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문제에 불편함과 불만과 분노를 느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고민하고 알아보기를 권유한다. ‘지식만화’라는 조금 낯선 개념은 이런 작가의 의도를 고려할 때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사적 이슈들을 다루는 작가의 관점은 통렬하며 그러한 관점을 구체화하는 사례들 역시 날카롭고, 매 페이지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도의 말장난이나 썰렁한 블랙 유머는 딱히 특정한 시사적 이슈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꼭지들 중 일부는 예전에 작가가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작품들이므로 개개의 꼭지가 저마다 완결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상 속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치는 사이, 이 다양한 꼭지들은 이제 거대한 우주 속에 감추어진 신자유주의의 음모를 파헤치며 나아가는 두 주인공의 우주 모험담이라는 구조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책에 정보와 고민거리를 더 풍부하게 포함하게 된 데는 매 꼭지마다 부록으로 달려 있는 해제의 공이 크다. 이 해제들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만화가 미처 다루지 못한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설명을 보완하고, 오늘날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논쟁적인 이슈들을 한결 명확하게 설정한다.

    가령 상품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레저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경영 합리화의 문제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나 CEO 신화의 허구성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지며, 노동시간의 문제는 ‘사회적 임금’의 확충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노동자 분할통제라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연대와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 * * 

    글·그림 김태권

    2002년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며 중세 유럽과 이슬람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룬 『십자군 이야기』로 데뷔, 대표적인 교양만화가로 자리 매김 했다. 지은 책으로 『십자군 이야기 1,2』, 『만화 미학 오디세이』,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등이 있다.
    blog.ohmynews.com/kimtae, kimtae.egloos.com

    해제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인생의 4분의 1을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에서 보냈다. 귀국해서는 현대산업연구원에 들어가 일했으며,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하는 등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어떤 정파나 집단의 이해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경제와 사회, 문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왕성한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88만원 세대』를 비롯해,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촌놈들의 제국주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 『괴물의 탄생』, 『직선들의 대한민국』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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