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헌 사기극 전에 헌법해석투쟁부터”
        2009년 07월 17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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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체제를 논하는 가운데서, 그 한계에 대한 구구한 비판은 눈에 띄지만 실제 87년 체제 혹은 87년 헌법, 즉 현행 헌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든 간에, 87년 헌법은 그 이전의 유사헌법들과는 달리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주권”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헌법체계이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

    현행헌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전제하지 않고는 앞으로 어떠한 폭발적 위력을 보일지 모르는 개헌논의에 대해 소위 진보진영의 대응이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를 할 수 없다. 더불어 헌법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이라는 양날의 칼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세력이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획득했던 헌법해석투쟁의 틀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선 ‘유사헌법’이라는 단어가 왜 적실성을 가지는가.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 이래 신군부가 제정 시행했던 5공화국 헌법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헌법은 헌법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정치적 의미조차 담지하지 못한 헌법들이었다.

    87년 이전 헌법은 모두 ‘유사헌법’

    왜 그런가 하면, 기존 헌법들로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의 총강부분이 천명하고 있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가 기실 현행헌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헌법들에서는 담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현행 헌법을 낳은 1987년 6월 항쟁 "호헌 철폐, 독재 타도"

    87년 헌법은 해방 이후 한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규모 민중항쟁으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보수정치세력들의 합의로 인하여 그 구조가 결정됨으로써 오늘날의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하나, 제헌에 가까운 형태로 현행 헌법을 만들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민중들에게 있었다.

    “독재타도”라는 구호와 함께 거리를 메웠던 “호헌철폐”의 함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교할 때 앞서의 유사헌법들은 모두 정치세력들이 그들만의 정략에 의해, 혹은 독재정권이 권력의 항구적 향유와 안정을 위해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었다. 바로 여기서 현행 헌법의 최대 의미가 드러난다.

    즉 현행 헌법 제1조에 분명히 적시된 바, 주권자로서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요청에 의해 비로소 제 모습을 갖게 된 최초의 헌법이 87년 헌법인 것이다. 작금 논의되고 있는 헌법개정의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시작된 개헌논의는 이제 이 87년 헌법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의미마저 안락사시키려 하고 있다. 개헌논의를 촉발하고자 하는 정치세력들은 헌법 제128조에 규정된 형식만을 근거로 헌법 자체를 “국민”의 것이 아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87년 헌법 안락사가 한나라당의 목적

    이런 비판의 근거는 다름 아니라 개헌과 관련된 논의의 내용에 있다. 보수세력이고 진보세력이고 간에 공히 현재의 논의는 정치구조, 다시 말해 헌법의 한 장인 통치구조에 함몰된 개헌논의에 집착한다.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데, 개헌을 논의하는 주체가 바로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87년 헌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의는 아랑곳없이 다시금 구체제의 유사헌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모한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는 노무현이 이야기했던 원포인트 개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행각일 뿐이다.

    진보신당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비판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레디앙>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회찬 대표나 조승수 의원으로 대변되는 진보신당의 입장은 현재 진행되는 개헌론에 대해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이 비판의 칼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시나 그들의 입장이라는 것 자체가 헌법에 규정되게 될 구체적인 조문의 형식과 내용에 관련된 것이지 헌법에 투영되어야 할 주권자로서의 “국민” 혹은 인민의 의지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국민”들의 입을 통해 “개헌하자”는 욕망이 분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헌법해석투쟁이 필요하다. 노회찬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문제의 출발지는 헌법이 아닌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진보진영의 과제는 현직 대통령이 현행 헌법을 어떻게 위반하고 있는지,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어떻게 방기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은 개헌하자 하지 않는데…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제1항의 언명은 촛불집회의 복판에서 소리 높여 외쳐졌을지언정 정치세력에 의해 제대로 실물화되지 못했다. 이 점에 있어서 진보신당은 왜 그러한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 삶을 파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현행 헌법이 아니다. 예컨대 현행 헌법에 “사회복지수급권과 국가의 급여의무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현행헌법의 규정과 그 정신조차도 왜곡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살피는 것이 바로 헌법해석투쟁이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진행해왔던 헌법해석투쟁의 대항구조가 된다. 그리고 이 헌법해석투쟁의 귀결이 개헌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금, 87년 이전의 유사헌법체제로 회귀하려는 모든 반동적 개헌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 논의에 황급하게 떠밀려 들어가기 전에 진보신당은 차라리 현행 헌법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는 작업부터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구제 문제나 비례대표 강화 등에 대한 이야기는 선거법 개정논의를 함으로써 충분하다. 이원집정부니 내각제니 하는 논의는 대중들에게 공염불에 불과한 이야기고, 그러한 통치제제가 도입된다고 한들 개발동맹의 일원으로 자족하면서 정치혐오에 휩싸여 있는 대중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

    주권자로서의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헌법적 권리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때에 개헌에 대한 열의는 “국민”들 자신에게서부터 출발할 것이고 바로 그 때 유사헌법체계가 아니라 87년 헌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개헌론이 유발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들로부터 헌법 각 조문에 적시되어 있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누구나”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을 때 개헌론은 적실성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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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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