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의 유연안정성은 허구다
    By 나난
        2009년 07월 17일 01: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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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강조해 온 정부가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덴마크 유연안정성 모델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인하대 윤진호 교수가 “덴마크 모델의 중요한 한 축인 충분한 사회안전망 제공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추진은 그다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덴마크 모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모델 중요한 축은 사회안전망"

    윤 교수는 한국노총 주최로 17일에 열린 ‘덴마크 유연안정성 모델 평가 및 도입조건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해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에 관한 평가와 한국에의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윤 교수는 발제를 통해 “유연안정성 개념이 가진 모순과 한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며 “실제로 정부나 사용자는 유연성이 우선 목표이고 안정성은 부차적, 보완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어 직장안정성의 포기와 고용안정성의 채택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일방적 손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실제로 덴마크 노동조합들은 유연안정성 모델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유연성’과 ‘안정성’ 간의 불균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유연성은 충분히 달성되는 반면,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할 경우 결국 고용불안과 저소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유연한 노동시장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지출을 통해 소득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보다 쉽게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반면 한국의 고용보험제도는 1998년 이후 적용대상의 확대, 가입자격의 완화 등을 통해 사실상 규모의 차이를 묻지 않고 모든 노동자를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까다로운 가입자격으로 인한 고용보험 적용대상의 협소, 사용자들의 보험가입 기피 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히 동일 기업 내 근속기간이 짧은 비정규직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윤 교수의 발제문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전체 취업자 2,286만명 가운데 고용보험 적용대상자는 1,130만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가운데 실제 고용보험에 가입한 수는 934만명으로, 전체 노동력 대비 40.9%,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58.2%다. 전체 노동력의 83%가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는 덴마크와 비교할 때 한국의 고용보험적용률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고용보험 적용률 덴마크 83%, 한국 40%

    윤 교수는 "고용보험적용률과 실업급여 등은 광범한 사각지대의 존재, 낮은 소득대체율, 소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의 한계 등으로 인해 실업자(노동자)들에게 소득안정성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유연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수용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덴마크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소득안정성(관대한 실업급여),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균형으로 진정한 의미의 유연안정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노동시장 유연성은 덴마크 수준에 가까우나, 소득안정성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윤 교수는 “소득안정성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유연성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에서 유연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소득안정성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현재 수준보다 대폭 제고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참여정부 시절부터 정부는 노동시장 정책의 방향으로서 유연안정성 모델을 제시하면서 특히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의 적극적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근로자의 고용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고용안정 서비스의 확충 및 선진화, 고용의 퇴출 및 진입의 유연성 보장, 사회안전망의 확충 등을 주장했다.

    여기에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고용위기가 대두되면서 실업률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한국노동시장의 개혁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윤 교수는 “덴마크 모델은 100여년에 걸친 정치적 갈등과 양보의 결과이며 따라서 덴마크 특유의 구조 결과”라며 “한국의 역사적, 제도적, 경제적, 문화적 토양을 고려한 한국식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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