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헌, 담합정치동맹으로 가는 길?
        2009년 07월 17일 07: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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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순 한 번째 제헌절이다. 제헌절을 맞아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회 개헌 특위 구성도 제안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개헌 문제가 정치권의 핵심 의제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중앙 단상의 사람은 이승만 국회의장

    개헌 쟁점화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개헌 문제를 가장 중차대한 정치적 쟁점으로 삼고자하는 시도에 비판적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문제, 쌍용 자동차 노동자 대량 해고 등 사실상 다수 서민들의 삶과 관련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 시기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고용과 소득 불안정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기 위한 현실적 방안이 무엇인지 지혜를 모아 그것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은 개헌 논의는 보통 사람들의 관심과 동의를 결코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개헌 논의의 시의적절성 뿐만 아니라, 그 방향 역시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헌 논의의 초점이 주로 권력구조 재편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분점형 정부나 의원내각제의 도입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구조 재편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재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사회권’ 강화를 기조로 세워내야 한다. 사회복지수급권과 국가의 급여의무, 더 나아가서는 기초소득보장의 명시, 다양한 환경권의 보장이 그 일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전제로 개헌의 필요성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절치 못한 때에 그릇된 방향의 개헌 논의는 반대한다. 개헌논의는 결코 서둘러서도 안 되며, 논의의 주체가 협소해서도 안 될 문제이다.

    담합체제를 노리나

    개헌 논의의 방향 설정과 관련, 더욱 심각한 것은 개헌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구상이다. 김 의장의 구상에는 정치안정을 위한 타협적 정치문화의 정착을 명분으로, 정당명부제를 폐지하여 군소정당의 성장을 제약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축으로 양당체제를 형성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 같은 구상은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 이외에 별다른 이념 정책적 차이를 갖고 있지 않은 양대 정당의 ‘담합체제’를 세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또한 분단과 전쟁, 냉전 반공주의를 역사적 기원으로하는 한국 정당 정치의 협애한 이념적 대표성을 그나마 확장시켜온 진보정당들을 거세하겠다는 것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해둔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부자 정권’ 논란으로 민심 이반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부자정당’, ‘부자국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성 주요 정당들의 담합정치는 정치불신과 정당정치의 위기, 더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있어왔음을 상기하고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지향하는 새로운 군소정당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카르텔 정당’에 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김 의장이 모델로 삼고 있다는 미국의 정당정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특히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현재의 개헌 논의 본격화 시도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류 언론 일각에서는 민주당에게 “뉴민주당 플랜의 초심으로 돌아가 한나라당과의 대립을 중단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민주당의 태도

    뉴민주당 플랜이 대재벌 중심의 시장친화적 정책, 즉 참여정부와 집권여당 시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바꾸기’ 혹은 번드르르한 ‘말의 향연’으로 가득차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이념 정책적 차별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바탕해 ‘담합정치동맹’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그것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념 정책적 차별성이 없는 양대 정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채울 수 있는 거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개헌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선거법 개정 등의 후속 조치를 통해 양대 정당의 아성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담합정치동맹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면 개헌 논의 확산을 제어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담합정치동맹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세간의 평가로 인해 ‘반MB 대안동맹’을 이끌어가는 주도성을 상실하고 싶지 않다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킨 지난 참여정부와 집권당 시절의 정책적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선명한 친서민적 정치행보를 위한 노선 전환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의 이념 정책적 차별성을 확보해야한다.

    개헌 논의는 사회경제적 이념과 정책에 있어 차별성이 없는 여야 모두에게 ‘거짓 대립’으로 꽉 막혀 있는 정국의 숨통을 터주는 ‘국면전환용’ 카드일 수 있다. ‘정치안정을 위한 근본적 처방을 내오는 생산적 논의의 개시’ 운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주어야 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숨통이 아니라, 서민들의 숨통이다. 그리고 서민들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코 개헌 논의가 아니다. 서민들이 겪고 있는 당장의 고통을 해소하고 그들의 이해와 열망을 제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정치는 개헌이 아니라 이러한 정당들의 실천을 통해 발전할 것이다. 정당정치와 그에 바탕한 민주주의의 지속에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정치적 안정이 아니라, 서민들의 이해와 열망에 바탕한 ‘제대로 된 갈등의 정치’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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