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연구원이 좌파해방구?"
    By 나난
        2009년 07월 16일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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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동연구원 박사급 연구위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국책기관으로서 “중립적 입장에서의 연구” 취지에 충돌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이들의 노조 결성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소통 단절”, “연구 자율성 침해”, “연구원 사유화”로 이미 객관성을 상실한 경영진의 운영 방식에 이들은 "최소한의 수단"으로 노조를 결성했다.

    지난해 8월, 친 기업성향의 박기성 원장이 취임한 이후 한국노동연구원은 바람 잘날 없었다. 지난 2월 6일 단체협약 해지로 기존 노동조합은 이미 부분파업에 들어간 상태며, 연구위원들의 소통창구인 연구위원협의회는 ‘임의단체’라 규정돼 6월 8일 폐지됐다. 설치 예정이었던 고용보험평가센터 발족은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의 악화’를 이유로 지연됐다.

    이에 한국노동연구원 박사급 연구위원 20명이 지난 13일 연구위원 노동조합을 공식 출범시켰다. “연구 자율성 회복과 중립적이고 공정한 연구기관으로의 회복”이 목적이다. 이들은 “불과 수개월만에 20년간 유지되어온 소통 채널이 일방적으로 단절되고 협력적 노사관계 관행이 와해되면서 ‘대안부재’의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밝혔다.

    20년간 유지돼온 소통채널 일방 단절이 계기

    연구위원 노조 황덕순 위원장은 “연구위원 개별평가에서의 불공정 논란 및 이의제기에 대한 합리적 해명과 개선을 위해 지난 6월 2일 노사 동수의 평가위원회를 요구했지만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연구위원협의회 참여가 거부됐다”며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조합 황덕순 위원장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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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조 황덕순 위원장.

    – 14일 노조 출범 기자회견에서 “노조 설립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한국노동연구원은 정부 출연기관으로, 노동자, 사용자, 정부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연구를 해야 한다. 연구위원이 노조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구한다’는 취지에 충돌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나 사용자 측이 ‘조합원인 너희의 연구가 중립적이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면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기존 연구원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 노동연구원지부에 가입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훨씬 더 성숙한 사회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여건이나 상황을 볼 때 외부에서는 연구의 중립성이나 신뢰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조를 만들었지만 최대한 공정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에서 독립노조를 구성했다.

    "노조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 연구의 중립성과 신뢰도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면 한시적 노조가 될 수도 있는 것인가?

    = 알 수 없다. 노조 설립까지 온 상황을 볼 때 현재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는다. 물론 문제가 해결되고 난 이후의 상황(노조 존재)은 열려있는 상태다.

    – 국책기관의 박사급 연구위원 노조 결성, 그 목적은 무엇인가?

    = 노동연구원의 정상화다. 노사정 사이에 중립적인 연구기관으로 한국노동연구원을 되돌려 놓자는 게 가장 기본적인 목표다.

    – 지난 2월 단체협약 해지 통보 전부터 노동연구원은 내부 문제로 곪아가고 있었다.

    = 2월 6일 단체협약 해지 통보로 8월 6일이면 무단협 상태가 된다. 당시 연구위원들 사이에서는 ‘노사관계에 모범이 돼야 할 연구원에서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물론 경영진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 원장 취임 후 기관 운영방법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원장 입장에서는 정당하겠지만 구성원으로 볼 때 매우 독단적이었다.

    예를 들면, 연구위원의 소통 창구인 연구위원협의회의는 인사위원회, 규정심의위원회에 참여하며 의사를 전달해 왔다. 하지만 원장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연구위원협의회의 존재를 참지 못했다. 이에 기관 설립 이후 20년간 매주 운영된 연구위원회의도 폐지시켰다. 면담 거부는 물론 모든 대화와 소통의 창구가 막혔다.

    원장은 ‘법대로 하자’, ‘규정대로 하자’고 했다. 결국 연구위원협의회는 규정에 없는 임의단체임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법대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했고, 최소한의 수단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 그간 연구위원들의 연구 활동에 원장이 부당하게 개입한 사례가 많다고 들었다.

    = 이미 수행 중인 연구에 특정 논문을 주며 ‘이 방향으로 연구를 하라’고 요구하는 가하면, 참여하는 공동연구진에 대해 ‘이 사람을 넣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연구 책임자가 거부할 경우 책임자 교체도 서슴지 않았다.

    외부 시민단체의 토론회에 참석할 경우 단체의 성향을 문제 삼아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정부의 방침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언론 기고도 막았다. 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아닌 것들이 마치 연구원의 결과물인 것처럼 둔갑해 청와대에 보고된 일도 있었다. 매우 극단적인 시장주의에 기반한 내용의 연구물이었다.

    원장 맘대로 연구자, 연구방향 개입

    – 15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박기성 원장이 노동연구원을 향해 “좌파의 해방구”라며 연구위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 지난 10년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위원을 채용했다는 말인데, 어이가 없다. 연구위원 공개채용의 경우 내부 연구자와 외부 심사위원이 논문을 평가해 점수화한다. 선발절차에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어떠한 인사 청탁으로부터도 원장은 자유롭다. 심사위원들이 선발하기 때문이다. 선발 과정에서는 이념 개입이 됐을 리 없다. 냉정하게 실력으로 뽑기에 양질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장관도 아니고 정권이 임명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원장의 시각이다. 연구원을 ‘좌파의 해방구’로 바라보니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좌파가 득실거리는 해방구’에 우파 성향이 강한 분이 오셨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 원장의 입맛에 맞는 연구원 교체도 발생했나?

    = 연구위원 교체 추진은 당연하다. 선발 인터뷰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연구원의 생각을 체크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노동연구원은 전화교환원도 연봉 3,700만 원을 받는 등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 경영진과 직원들이 담합을 통해 국민 세금을 낭비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 연구원은 단체협약을 노무법인에 위임함으로써 지금까지 6천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낭비했다. 오히려 이것이 예산을 낭비한 명백한 사례다.

    – 기존 노동연구원지부의 파업과 연구위원 노조 결성 이후 박기성 원장은 인터뷰 등을 통해 맞대응에 나섰다. 향후 대책은?

    = 단체협약안을 가지고 교섭요구부터 시작할 것이다. 단체협약안은 전문직 연구자 노조의 특성에 맞게 연구의 자율성과 중립성 보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경영참여와 관련된 부분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 노조를 만든 것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함이다. 노조로 인해 노동연구원과 연구자들의 사명이 침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동연구원을 정말 ‘공정하고 중립적인 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돌려놓은 것이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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