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주엘라 중간계급 삶의 속살을 보다
        2009년 07월 13일 03: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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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카스 공항에는 몇 년 전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공항 구내에 신종 플루 예방을 위해 간호사들이 서성거리는 것 외에 특이한 것은 공항 내 면세점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각종 조합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벽에 도착한데다 방이 있을 걸로 짐작한 호텔은 방이 하나도 없어 당황스러웠는데 일본인 2세 베네수엘라 친구 집에 머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덕분에 베네수엘라 중간계급(대학 교직원)의 삶의 속살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삶을 사는 라틴 아메리카 중간계급

    그는 나이가 이미 50이 넘었는데도, 낮에는 대학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제일 좋은 국립대학인 센트랄대학교의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미 젊었을 적에 다른 전공의 대학 공부를 마친 사람인데 다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기 대학교는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5년제인데 아침반과 밤반이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미 사람들은 게으르고 정열적(?)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까지 일하고 오후에 학교에 가서 밤 8시까지 공부하고 있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들이 그렇게 일찍 직장에 나간다. 물론 하루 종일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노동자의 경우 아침 7시에 출근하면 오후 3시 50분경에는 퇴근한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

    부인도 대학교에서 직원으로 일하는데 저녁에 부인은 미션 리바스라는 고등학교 해당 사회교육 과정에서 강사로 시민들에게 봉사한다. 이들 부부는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들을 이렇게 부름)다.

    대학교 한 한기 등록금 2달러

    센트랄 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달러로 치면 2달러밖에 안 된다. 식사는 공짜다. 이 같은 시스템은 차베스가 집권 후 생긴 것이 아니라 약 백 년 전부터 그래왔다. 실제로 한 번 식사를 공짜로 얻어먹고 싶다.

    이 집은 초라하고 가난한 아파트이고 지저분하게 어지럽혀 있어도 전형적인 라틴아메리카 중간계급 수준이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눈길을 끌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문 안쪽에는 차비스타답게 체 게바라가 죽기 전 자신의 아이들에게 쓴 편지와 가족 사진이 걸려있는데 ‘마음의 가장 깊은 데에서부터 세계 어느 곳에서나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사회 불의를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문구가 있다.

       
      ▲ 사진=안태환

    그런데 필자의 흥미를 끈 것은 맞은편의 전자 기타들과 고가로 보이는 각종 앰프 시설들이었다. 그의 취미생활이었다. 그는 “비록 돈은 없지만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록 음악과 베네수엘라 음악을 같이 좋아한다고 한다. 여기서 베네수엘라 음악 하면 토속적인 구어 문화에서 유래되는 ‘음유시인적’ 음악을 말한다.

    그리고 거실 한쪽 벽에는 기도하는 제단이 마련되어있는데 새벽에 출근하기 전에 열심히 ‘남묘호렝겡꾜’(일본 불교의 일파인 창가학회의 기도문. ‘남무묘법연화경’을 뜻함)를 외우는 것이 아닌가. 기도 제단에는 제물로 접시에 향이 좋은 두 개의 망고가 놓여있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통념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높은 성직자들과 차베스는 사이가 아주 나쁘다고 한다.

    인간 무의식에 호소하는 혁명

    창문을 열어놓은 방에 있으면 새벽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마치 에어컨을 틀은 것처럼 시원한 바람과 시차 때문만이 아니라 길거리 나무에서 들려오는 “까까까… 뽀삐요…” 등, 마치 밀림에서와 같은 열대성(Tropical) 새들의 노래 소리 때문이다.

    차베스 혁명을 ‘뜨로삐깔 혁명’이란 말로 부르는데 라틴아메리카 좌파들을 상징하는 표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정의와 함께 개인의 자유분방함을 동시에 중요시하며 그렇게 팍팍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삶의 결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합의하여 틀 맞춰 온 것이다.

    이 친구의 책상에는 촘스키의 책, 마리오 베네데티라는 유명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평론가의 책, 그리고 감수성 계발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다. 인문학적 감수성이 자존심 강한 좌파 정신을 부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소위 ‘좌파 정부들’(새로운 정부들)의 변혁 과정에 관심이 크다. 그러나 지나치게 외형적으로 또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자칫 중요한 포인트를 놓칠 수도 있다고 본다.

    인간의 느낌을 중요시해야 한다. 무의식보다 더 아래 밑바닥에 숨겨있는 진정한 자기(Self)에서부터 올라오는 욕망에 솔직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바로 이점이 C. G. 융의 분석심리학의 핵심 메시지라고 한다. 융은 자아 아래에 무의식 층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집단적 원형’ 등이 있고 더 아래에 자기(Self)가 있는데 이곳에 바로, 자기실현의 창조성, 영성이 있다고 하였다. 글보다는 음악이 자기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회경제적 변혁의 맨 얼굴

    우선 욕망이 자아(Ego)의 기본적 욕구 충족(건강에 대한 염려와 웰빙 등)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욕망과의 만남이 진정한 자기실현의 방법이고 행복의 비결인데, 이 흐름에는 굉장히 깊은 타자와의 연대의 울림이 있어서 개별적인 수준의 자아 발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같은 욕망은 자기보다 못사는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평등의식으로 이끌게 된다. 고립된 개개인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체 게바라의 인식이다.

    그런데 이 욕망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돈보다는 시간적 여유다. 필자가 머무는 호텔 부근에 아주 맛있고 값싼 식당이 있는데 문을 새벽 6시 반부터 오후 2시반까지 열고 토, 일요일에는 아예 열지도 않는다. 극단적인 효용성을 추구하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삶의 방식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 현실은 어지럽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석유가격 하락으로 인해 달러가 귀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차베스 정부가 귀한 달러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기 전술(포퓰리즘)로 막 풀어준다는 게 우파들의 비난이다.

    달러가 공식 환율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리고 약 1년 전부터 5천 볼리바르가 5 볼리바르가 되는 식으로 화폐개혁을 하였다. 아직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급진적 참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제도(소농, 조합을 통한 소기업운동 등)를 통한 사회적, 경제적 변혁의 맨 얼굴이 드러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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