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MB연대 이전에 기억해야 할 것들
        2009년 07월 15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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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진보신당 경기도당 주최로 진행된 시국 거리연설회에 다녀왔다. 주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였다. 퇴근시간 무렵 수원역 앞에서 소박하게 진행되었으나 조승수 의원과 평택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위원장의 연설은 분명히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었다.

    거리연설회 풍경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유인물을 돌리고 행사를 진행한 경기도당의 이름 없는 당원들과 당직자들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지역 당원으로서 역할을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대부분은 언뜻 보아 무관심하게 지나쳤고 일부는 애써 외면하였다. 연설자들은 되풀이해서 "남의 일이 아닙니다"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침묵으로 "내 일도 아닙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듯하였다.

       
      ▲ 지난 8일 수원역에서 진행된 순회 연설회. 이홍우 진보신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은 가운데 필자와 경기도당 당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진보신당 경기도당)

    결국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연설회에서 발길을 멈춘 청중을 찾아보기는 무척 힘들었다. 노 전 대통령 조문정국에서 5백만 명이 모이고 김해까지 찾아가서 참배하였던 시민들의 열정은 어디로 갔나? 그 뜨거운 열정은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곧 죽어가는 노동자들 앞에서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자신들이 대다수 노동자인데도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이후 정세가 어수선하다. 노 전 대통령의 49재에 몇몇 신문들에는 시민단체들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광고도 여럿 실렸다. 인터넷의 몇몇 카페 단체가 연합하여 노무현 정부의 전 총리와 소통하기 위한 카페를 열고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는 보도도 있다.

    또 유력한 시민단체들 주도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토론회도 개최되었다. 몇 가지 오류와 한계는 있었지만 민주주의와 소통을 위한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기조가 지배적이었다. 뭔가 모르지만 새로운 정치의 전망이 보인다는 밝은 기대도 느껴진다.

    노무현 죽음 이후를 향한 치열한 모색들

    한편 내년 지자체 선거를 둘러싼 선거연합이나 정당체제 개편의 모색도 치열한 것 같다.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반신자유주의’가 연대의 조건이 되어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또 과거 전력은 불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민주세력들을 포괄한 선거연합용(?) 반(反) MB포괄정당을 결성하는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노총 주도의 진보정당 통합추진위원회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통합 없이는 진보와 한국정치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민주주의, 소통과 통합 그리고 연대, 반 MB선거연합 모두 다 좋은 말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필요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그 민주주의가 누구의 민주주의이며 어떤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또 누구와 무엇을 위해 소통, 연대하며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 어떤 반 MB(선거)연합을 할 것인가를 정치하게 고민하는 일이다.

    온라인 단체들이 주목한다는 그 총리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 진보세력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한나라당조차 억울하게 만든 ‘비정규보호법’을 노전대통령과 함께 만든 바로 장본인이다. 그는 여의도에서 농민 두 사람, 그리고 포항에서 비정규노동자를 경찰 곤봉으로 살해한 노무현 정부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기억해야 할 것들

    한미 FTA를 추진하고 쌍용자동차를 상하이자동차에 팔아넘긴 바로 그 정부가 노무현 정권이라는 사실 정도는 기억하고 연대와 통합을 논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KTX여승무원, 이랜드-뉴코아비정규노동자, 기륭전자 노동자들, 공무원 노동자들의 절규를 군화발로 밟고 1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구속한 그 정치세력들과 연대하는 일이란 것을 기억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노무현과 촛불을 상찬하기에 바쁜 시민단체들을 도통 신뢰할 수 없다. 노무현 시대를 그리워하는 시민단체들의 그 감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다. 필자가 보기에 노무현 시대의 소통과 민주주의는 그 본질이 국가 권력에 의한 시민단체 ‘포섭’이었다.

    조직노동자들은 ‘귀족노조’의 반사회적 이기주의 집단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법투쟁’이라는 강박관념을 시민들에게 심어준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이 때 정권의 노동자 탄압을 묵인한 반대급부로서 손에 쥔 것이 시민단체들이 말하는 ‘소통과 민주주의’라면 지나친 말인가?

    노무현 정부의 기간제 2년 제한 비정규법안을 개혁적 법안이라며 환영했던 그들이 이명박 정부의 4년 연장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때는 민주주의였는데, 지금 MB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그들의 외침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시민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대체 ‘소통’이 무엇이란 말인가? 또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의 방패막이로 삼는 노동현장을 두고 진보정당의 통합은 어떻게 가능할까?

    답하기 힘든 의문들

    촛불과 조문정국의 뜨거운 열기가 용산의 죄 없는 차가운 주검들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 이 땅에서 과연 ‘소통’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답하기 힘든 이런 의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요컨대 위기 속에 깊이 빠진 진보정치를 위해서는 좀 더 진지한 자기성찰과 주체적 실천이 먼저 필요한 일인 듯하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그 결과이지 원인일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이나 그를 추종한 세력과의 연대 문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MB정권의 몰아치는 반민주주의를 시민사회와 진보세력이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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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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