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겨서 굴뚝을 내려가고 싶다"
    By 나난
        2009년 07월 13일 01:4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그렇게 퍼붓던 장대비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70m 상공을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굴뚝은 마치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굴뚝 아래에서 올려준 짜장밥을 먹고 전투경찰에 둘러 쌓인 적막한 공장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이제 도장공장과 굴뚝뿐

    지난 7월 9일 새벽 3시쯤이었을까요? 거센 바람이 굴뚝을 뒤흔들어 잠을 깨우더니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남해안을 강타한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올라와 이곳 평택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굴뚝 안에 쳐놓은 비닐은 폭풍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습니다.

    번개와 천둥, 폭풍우를 비 옷 한 장으로 꼬박 21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굴뚝 아래에서 식사도 올라올 수 없었고, 강풍에 굴뚝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굴뚝 한가운데에 고이는 물을 빼내며 폭우와의 전쟁을 치른 후 밤 12시가 넘어서야 곯아떨어졌습니다.

       
      ▲ 사진=금속노조

    10일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내리쬐더니 이내 폭염으로 굴뚝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리고 프로펠러의 굉음으로 굴뚝을 흔들며 경찰 헬기가 또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상공에서 굴뚝과 공장 주변을 촬영하고 돌아갔고, 그 사이 굴뚝에 있는 우리는 귀청을 때리는 심한 소음과 함께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1일 토요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2천여명의 경찰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지게차를 동원해 공장 정문과 남문을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를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컨테이너를 끌어내고 철조망을 뜯어내고 정문 경비실을 장악하더니, 공장 안으로 밀려들어왔습니다.

    저들은 공장 안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 조합원 두 명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굴뚝과 도장 공장은 공권력 투입 소식에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경찰병력은 공장 밖에서 공장 안으로 밀고 들어 왔고, 남아있는 것은 우리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는 도장공장과 이곳 굴뚝뿐입니다.

    “아빠 내 생일 다가오는데 선물 사 줄 거지?”

    오늘(12일)로 이곳에 올라온 지 61일이 되었고, 공장점거파업은 52일을 맞았습니다. 1998년 정리해고에 맞서 현대자동차 동지들이 굴뚝에 올라간 지 38일만에 내려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곳에 있습니다.

    “아빠, 내 생일 다가오는데 선물 사줄 거지?” 일곱 살 먹은 큰 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래, 아빠가 내려가서 꼭 선물 사줄게.”하고 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세 살짜리 아들 녀석이 전화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지난 9일 밤 거의 11시가 되었을 무렵, 아내와 아이들만 있는 집에 경찰이 출두요구서를 가지고 초인종을 눌러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굴뚝에 있는 모습을 매일 경찰 헬기로 촬영을 하면서,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까지 쳐들어가 가족들을 괴롭히는, 정말 비열하고 잔인한 자들입니다.

    2004년과 2006년 이곳 평택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리 없이 쫓겨날 때 우리는 그저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2006년 몇 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준비했지만, 이내 회사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정규직 동지들 살자고, 비정규직을 내모내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속상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무기력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직 힘으로 노조를 만들고

    2006년 정규직 동지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옥쇄파업을 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정규직들은 파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갔지만, 비정규직들은 업체 관리자들이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현장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공장 안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누군가 말이라도 했으면 같이 했을 텐데, 그 때는 아무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었습니다.

    2008년 가을, 정규직 전환배치로 비정규직 350명이 또 다시 공장 밖으로 내몰릴 무렵이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동지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을 만나 금속노조에 가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노조운동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 문제로 두려움과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정규직 동지들이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노동조합 결성을 알리기 전날, 정규직 동지들이 자신들 이름을 걸고 유인물을 뿌렸습니다. 현장에서 정규직들의 비난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시 쌍용차지부 집행부를 만나 비정규직의 요구사항을 얘기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노조 설립 보고대회를 진행했고, 130여명의 동지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절, 정규직 동지들이 저희 곁을 지켜 주셨고, 저희가 가는 길마다 저희와 함께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동지들의 선거가 있었고, 지금 집행부가 당선되었습니다. 정규직 동지들은 당선된 이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따로 없고, 하나의 노동자로 같이 싸워야 한다고 얘기했고 실천했습니다. 비정규직을 같은 동료로 바라보지 않던 정규직들의 마음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 공장을 원하는 자들에 맞서

    그렇게 함께 공장에서 뒹굴며 이제는 노동자가 하나라는 것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는 정규직을 자르고, 분사와 외주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늘려 기아차 모닝공장처럼 아예 비정규직 공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우리는 이렇게 굴뚝과 도장공장에서 함께 어울리며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진=금속노조

    지난 6월 19일이었던가요? 서울에서 가두투쟁을 마치고 동지들을 태운 버스가 끝도 없이 공장으로 들어오고, 동지들의 손에 하나 둘 촛불이 켜져 1만개의 촛불이 공장을 환하게 밝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동지들 손에 든 촛불 하나하나의 온기가 이곳 70m 굴뚝 위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저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6월 26~27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잔인한 공장침탈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난 후 금속노조 동지들은 6월 29일과 7월 1일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총파업을 벌여 공장을 세우고, 이곳 평택으로 달려와 주셨습니다. 저는 망원경으로 30도를 육박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공장을 지켜주셨던 동지들의 모습을 가슴 벅차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은 아직까지 이 사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투쟁과 희생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때문이겠지요. 아니,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실패한다면, 다른 모든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지요.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투쟁을 박살내야, 비정규직을 맘대로 쓰고 맘대로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법을 더욱 개악하고, 파견법을 개악해 제조업 생산현장을 비정규직으로 넘치게 하며, 정리해고 요건마저 완화해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겠지요.

    그래서 금속노조 동지들이, 민주노총 동지들이 천리 길을 마다하고 달려와 함께 싸우며 이 투쟁을 승리로 만들려고 하고 계신다는 것은 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걸어서 굴뚝에 내려갈 수 있도록

    7월 13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에 대한 안건이 올라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1998년 38일간의 영웅적인 정리해고 저지투쟁을 전개하셨던 현대자동차 동지들, 2001년 1750명의 정리해고에 맞서 가열 찬 투쟁을 벌이셨던 GM대우자동차 동지들, 그리고 부도로 인한 노동자 고통강요에 맞서 싸우셨던 기아자동차 동지들께 간절하게 호소 드립니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대공장과 중소공장이 함께 싸운다면 60일이 넘게 진행된 우리의 투쟁은 아름다운 결과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투쟁이 아름답게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도 많은 동지들이 연대와 관심,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조금 더 많은 동지들이 조금 더 싸운다면 우리의 투쟁은 끝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지들, 꼭 이겨서 이곳 굴뚝을 당당하게 걸어 내려가고 싶습니다.

    2009년 7월 12일 밤. 70m 굴뚝 위에서 쌍용차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 서맹섭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