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각
    2009년 07월 10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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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휩쓰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본주의적 국가경제체계를 구축하고 세계시장으로의 확대에 매진한 한국은 자본주의 산업경제가 발전하지 않은 다른 나라들에게 꿈의 나라의 새로운 모델이 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로부터 이주노동자를 합법, 비합법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송해성 감독의 2001년 작 <파이란>은 20세기 말에서 21세기를 넘어오면서 한국 사회가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국가부도상황을 겪은 후,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 전체가 재정비되는 시점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 <철도원>에 수록된 <러브 레터>가 원작인 영화 <파이란>은 국적 취득을 위한 위장결혼의 배경이 한국(미국도 일본도 아닌)으로, 한국에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펼쳐나가려는 이주노동자가 중국 국적의 조선족 처녀로 설정된, <깊고 푸른 밤>의 21세기 한국형 변형이다.

미국도 일본도 아닌 남한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시답잖은 백수건달에게 어느 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중국 조선족 처녀로부터 자신을 남편으로 부르는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는 설정은 가져오되 나머지 상황과 이야기는 당대 한국 현실에 맞춰 각색되었다.

일본 원작에서의 백수건달 고로는 한국 삼류 양아치 강재가 되고, 술집 여자가 되어 야쿠자에게 착취당하던 원작의 파이란은 한국에 와서는 술집을 벗어나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세탁소 일을 하게 된다.

영화는 서울 인근 항구도시 인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천은 오래 전부터 화교들이 차이나타운을 형성한 중국계 이주민의 집단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조선족들이 한국을 오가는 창구이자, 그 조선족들을 상대로 한 영세한 취업소개소와 결혼중개업소가 수두룩하고, 개발과 저개발이 뒤섞인 풍광 속에 서울 주변부의 변두리 정서가 배어있는 장소로 영화의 배경이 되기에 제격이다.

중국계 조선족은 국적으로는 중국인이지만 민족정체성의 뿌리는 한민족인 중국내 56개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은 민족집단을 이루고 있다. 영화가 개봉되던 2001년 당시 한국 내 체류 중인 조선족은 한국 정부에 따르면 합법체류자 2만 5천 명, 불법체류자 4만 4천 명, 총 6만 9천 명으로 추정되었고, 이듬해인 2002년에는 그 수가 총 15만 명에 이를 정도로 국내 체류 조선족의 수는 가파르게 늘어가는 추세다.

인천 그리고 삼류건달

인천 뒷골목을 전전하는 삼류 건달 강재(최민식)는 공갈을 일삼고, 푼돈이라도 생기면 오락실에서 죽치면서 인형뽑기 게임 성공 여부에 일희일비하는 한심한 신세다. 배 한 척 장만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꿈인 강재는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대중영화의 주요 장르가 된 ‘조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건달의 이미지 대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불량배의 현실적 일상을 재현하는 인물이다.

   
  ▲ 영화의 한 장면

강재와 같이 건달생활을 시작했던 친구 용식(손병호)은 어느새 조직의 보스가 되어 있지만, 강재는 그 밑에서 나이트클럽 삐끼 노릇이나 하며 건달입네 건들거리지만 새파란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며 조직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인물이다.

어느 날, 강재는 용식과 술을 마시다가 용식이 영역다툼을 벌이던 다른 조직의 일원을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용식은 강재에게 자기 대신 감옥에 가준다면 그토록 소원하던 배를 사주겠다고 제안한다.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 강재에게 갑작스런 부고가 날아든다. 강재가 돈을 받고 서류상으로 위장결혼을 해주고는 잊고 지냈던 조선족 처녀 파이란(장백지)이 부고의 주인공이다. 죽은 사람의 남편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위해서, 그러니까 결혼 자체가 위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재는 파이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찾는 여정

그래서 파이란을 만나러 가는 길의 목적은 애당초 추모와 애도가 아니라 강재 자신의 보전을 위한 것이다. 파이란의 장례를 치르러 떠나는 기차 속에서 강재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신 분’이라며 고마워하는 파이란의 편지를 뒤늦게 읽고,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를 짚어가면서 알게 되는 것은 파이란의 실체가 아니라 적나라한 강재 자신의 모습이다.

강재는 파이란의 가련한 처지를 통해 자신의 처지가 가련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파이란의 순수한 사랑에 비추어 자신의 순수함을 발견하려고 한다. 파이란이라는 디아스포라 여성 이주노동자를 통해 한국의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현실과 처지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강재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것은 파이란의 편지다.

   
  ▲ 영화의 한 장면

파이란은 편지에서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강백란이라고 합니다’라는 자기소개로 시작해서 ‘강재씨, 결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재씨가 결혼을 해주셨기 때문에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감사라든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씨 좋아하게 됐습니다. 좋아하게 되자 힘들게 됐습니다. 혼자라는 게 너무나 힘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사랑 고백까지 전한다.

병상에 누워서는 ‘아픔과 괴로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당신을 생각하며 울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잠잘 때 꼭 그렇듯이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웁니다. 늘 그렇게 했지만 다정한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웁니다. 슬픔이 힘든 게 아니라, 고마워서 눈물이 납니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마침내는 ‘죽는 것이 무섭고 아프고 괴롭지만 참고 있습니다’라는 호소까지 남긴다.

장바이즈가 연기하는 서툰 한국어 대사에 실린 파이란의 편지 내용은 그 편지를 쓰는 파이란의 안쓰러운 처지나 강재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실상에 대해 선의만으로 해석하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선의의 오해가 현실과 충동하면서 범죄 장르의 조폭 드라마에서 출발한 영화의 플롯을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는 멜로 라마의 플롯으로 이끌어 나간다.

파이란의 노동, 파이란의 소외

파이란의 이주생활은 인신매매의 전형적인 사례다. 직업소개소에 수수료 뜯기고, 중간 소개 단계에서 또 수수료 떼이고, 사진 한 장과 서류 하나로 위장결혼해 준 강재에게도 사례비 건네고 남은 것은 자신의 몸 하나다. 중국에서 갓 건너온 파이란에게는 이 모든 비용이 자신의 몸값에 붙는 빚이다.

그래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저당 잡힌 파이란이 처음 보내진 곳은 술집이다. 자해를 해서 병을 가장하고서야 파이란은 술집에서 벗어나 바닷가 마을 세탁소에서 고되고 초라한 생활을 꾸리며 빚을 갚아 나간다. 자신의 노동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삶은 소외된 삶이고, 소외된 삶의 결과는 죽음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그래서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면 될수록 파이란은 죽어간다.

그런데도 파이란은 한국 사회에 감사하고 강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파이란의 감사와 사랑은 이방인에 대한 데리다의 질문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환대를 주는가? 주체에게? 신분 증명이 가능한 주체에게? 법적인 주체에게? 이름으로 신분 증명이 가능한 주체에게? 법적인 주체에게? 그렇지 않으면 환대는 스스로 가는가, 환대는 스스로 자신을 타자에게 주는가?

타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에, 타자가 주체이기(주체로서 조정되기, 또는 상정되기) 전에 벌써, 요컨대 타자가 법적인 주체이기 이전에 가족의 이름(姓) 등으로 불려질 수 있는 주체 등이기 이전에 벌써 자신을 주는가? 환대의 문제는 결국 물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주체에 대한 문제이고, 세대의 가정(假定)으로서의 이름에 대한 문제이다.” –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파이란의 편지는 강재에게 환대의 문제를,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질문을 경유한 강재의 자각은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는 영화 포스터의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 영화의 한 장면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파이란의 죽음으로부터 주체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각에 이른 강재는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 룸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귀향하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강재는 용식을 찾아가 살인죄를 대신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짐을 꾸린다.

그러다가 우연히 후배의 비디오테이프 가운데서 바닷가를 거니는 파이란의 모습이 담긴 테이프를 발견하고 회한에 잠기는데 그 순간 뒤에서 다가온 침입자에 의해 강재도 숨을 거둔다. 죽어가는 강재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비디오에 담긴 파이란의 모습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방인에 대한 문제를 출생에서 죽음으로 이동시킨 데리다의 논점을 상기시킨다. 데리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출생을 기초로 이방인을 규정하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든 거부하든 간에, 외국인은 출생에 의해 태생적으로 이방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방인의 문제는 이국땅에서 죽을 때 성문화된 법을 넘어서는 땅의 환대와 매장의 환대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이란은 이미 이 문제를 고민하고 강재에게 편지를 남겼다.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주시겠습니까? 만약 오신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무덤에 같이 묻어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으시겠습니까? 응석부려 죄송합니다’라는 파이란의 부탁과 사과는 그런 매장이 강재를 둘러싼 세계의 법을 침범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겨진 것이다.

강재가 조선족인 파이란을 장사지내고 애도하는 것은 그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입장은 ‘민족적 환대’ 이전에 ‘국적법 상의 소외’에 기울어 있다. 그러므로 파이란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강재를 처벌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맺을 수밖에 없고, 이런 강재에 대한 동일시를 거부하는 대중으로부터 영화도 외면당해서 <파이란>은 작품성에 대한 높은 평가와 무관하게 신통치 않은 흥행으로 당대 한국 사회의 조선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파이란>의 흥행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세계화된 노동시장과 이주의 보편성은 일본 원작소설을 한국에서 장편 대중영화로 각색되게 만들었듯이 헐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되는 소재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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