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선회하는 남아공
        2009년 07월 10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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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남아공의 좌파 경제학자 패트릭 본드가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Znet(www.zcommunications.org/znet/)에 발표한 글(7월 4일)을 번역한 것이다. ANC 좌파의 제이콥 주마가 새 대통령이 되는 등 좌선회하고 있는 남아공 상황을 생생하게 보고하고 있어서 우리말로 소개한다.  – 역자 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격렬한 목소리와 공공 서비스 개선을 바라는 지역사회의 투쟁을 통해 계급투쟁의 굉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방방곡곡에서 말 그대로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이제 사회의 커다란 균열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 시위하는 남아공 민중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집권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내에서 전 대통령 타보 음베키 진영[역자주 –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집행한 당 내 우파]과 현 대통령 제이콥 주마 진영[역사주 – 음베키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한 상대적 좌파. 노총과 공산당이 이에 결합했다]이 벌인 내분은 주마 편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결말을 보았다.

    남아공을 덮친 세계 경제 위기의 해일

    하지만 이제는 심층적인 경제 위기라는 더 커다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케인즈주의 정책만 만지작거리며 허송세월하던 정부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땜질 처방은 심각한 불황에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남아공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1929년 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1996년 이후 통화 위기가 다섯 차례나 반복됐다. 이것만으로는 사례가 충분하지 않다면, 2009년의 1/4분기 GDP가 6.4%나 추락했으며 이것은 1984년 이래 최악의 성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겠다.

    2008년 말이 되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리라는 게 분명해진다. 2009년에 남아공 경제는 특히 제조업과 광업에서 50만 개의 일자리를 상실할 것으로 전망된다.

       
      ▲ 남아공의 새 대통령 제이콥 주마

    1월에 신차 매매는 36% 감소했고 생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전국자동차제조업협회에 따르면, 이것은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다. 항만 가동도 역전돼서 2009년 초에 연평균보다 29% 감소했다.

    차압된 주택 수는 연초부터 52% 증가했다. 주택 가격은 11% 하락했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광물 가격은 작년 최고치에서 70% 하락했다. 주식 시장은 작년에 거의 절반가량 손실을 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무역 및 금융 자유화 덕분에 남아공은 이제 전 세계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많은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에 따르면 남아공은 신흥시장 중 가장 리스크가 큰 나라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양의 돈이 남아공을 빠져나와 남아공 기업들의 새로운 런던 금융 본부에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콥 주마의 대통령 당선과 공산당의 입각

    6월 초 두 주 동안 남아공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지역사회의 분노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다. 더반에서는 2010년 월드컵으로 철거 위협에 처한 수천 명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소도시인 마쉬셴크에서는 부패와 공공 서비스 질 저하에 맞서 5천 명이 시위에 나섰고, 경찰 발포로 한 명이 사망했다.

    많은 지역에서 분노한 운동가들이 주택과 공공 서비스를 요구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항의하며 파업 투쟁을 계속했다. 비록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주마가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폭발하는 계급투쟁 때문에 집권당은 승리에 취할 시간조차 없었다.

       
      ▲ 남아공 공산당 사무총장 블라데 은지만데와 시위대

    주마에게 무려 65%의 표를 몰아준 뒤에 노동자들은 각료 인선 과정에서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 남아공 공산당(SACP) 사무총장 블라데 은지만데와 당의 저명한 경제학자 롭 데이비스는 현재 각각 교육부 장관과 산업부 장관을 맡고 있다. [역자주 – 남아공 공산당은 ANC와 구분되는 독자 정당이지만, 선거에서는 ANC를 선거연합 삼아 그 한 정파로서 출마한다. 즉, 남아공 공산당은 독자 정당이면서 ANC 내부의 좌파이기도 하다.]

    다른 남아공 공산당 명망가들도 현재 차관직을 맡고 있다. 다만 주마는 음베키 정부에서 통신부 장관과 사회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좌파 인사 두 명은 해임시켰다.

    하지만 내각의 좌선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보다는 과거와의 연속성이 더 컸다. 이것이 주마 정부 거시경제정책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다. 전반적인 경제 “계획” 담당(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된 장관급 지위)은 신자유주의자인 트레버 마누엘이 맡고 있다.

    경제발전전략은 신임 에브라임 파텔 장관의 몫이다. 그는 섬유노조 지도자 출신으로서, 남아공 노총(COSATU) 내에서 “코포라티즘”(노사정 협조주의)의 주된 주창자였다.

    남아공 노동운동의 좌향좌

    신임 보건부 장관 아론 모초알레디는 6월 5일 의회 연설을 통해 캐나다식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옹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헌법인 권리장전 27조에 따르면 건강은 모든 시민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전국민 의료보험은 누구나 이 권리를 누리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모초알레디는 또 말하길, 의료보험 민영화 덕분에, “7백만 명이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 GDP의 5%를 쓰는 반면 절규하는 4천2백만 명은 GDP의 나머지 3.5%로 견뎌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게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면, 저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충성을 바치길 꺼려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이 이런 상태에 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 – 뒷 배경은 공산당 깃발

    또 다른 갈등의 불꽃들(일자리의 극적인 감소, 정부의 임금인상 공약 실현 실패, 공공 교통 구조조정, 전기 가격의 급격한 인상)이 곳곳에서 작렬하는 상황에서, 계급투쟁의 성장은 경제정책마저도 변화시키고 말 것이다.

    2000년 6월 1일 금속 노동자들은 금리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며 남아공 중앙은행에서 시위를 벌였다. 중앙은행 총재 티토 음보베니는 금속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거만한 태도로 거부했다.

    남아공 금속노조(NUMSA) 위원장 어빈 짐에 따르면, “아무 죄 없이 극심한 경제적 사회적 곤란을 겪고 있는 남아공 노동계급의 청원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평화적 시위를 무시한다면, 그게 누구든 앞으로 더 큰 재난을 자초하는 것이다.”

    음보베니의 오랜 동지인 마누엘은 6월 11일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회의에서 자본가들이 계급전쟁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입만 열면 안하무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기에 맞설 세력이 없어요. 만약 저들에 맞설 세력이 없다면, 실질적인 발전과 진보의 성과는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경영계에는 정말 겁쟁이들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금속노조 대변인 알렉스 마쉴리오는 이렇게 대꾸했다. “만약 마누엘 씨의 언명이 노동과 자본 사이의 계급투쟁에 대한 민족민주정부[역자주 – ANC 정부는 자신을 ‘민족민주정부’라 칭한다]의 관점과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면, 노동계급과 빈곤층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 시위하는 남아공 노총 조합원들

    금속노조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음베키를 지지하는 정파가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급격히 좌선회했다.

    5월 금속노조 대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금속노조와 연맹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전망을 밀어붙여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미래다 ― 지금 건설하자>는 슬로건을 현 국면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안에 구체화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다. “생존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폐쇄 위협에 놓인 기업은 정부가 인수하거나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략적 원자재, 가령 강철, 석유 등을 생산하는 핵심 부문에 대해서는 국유화를 고려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보다 친환경적인 자동차 생산을 위한 재원 마련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

    대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신자유주의는 붕괴했다. 금속노조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역사의 먼지로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흐름들에 맞서 승리하기 위한 모든 국제적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결의한다.”

    “또한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좌파회의를 개최할 것을 좌파에게 제안할 것이다.”

    좌파는 그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 패트릭 본드

    그간 독립 좌파[역자주 – 이 글의 필자인 패트릭 본드처럼 ANC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무당파 좌파들]로 하여금 ANC-SACP-COSATU 연합에 대해 거리를 두게 만든 역사적 균열이 이러한 정신을 통해, 초정파적 회의 개최를 통해 과연 치유될 것인가?

    균열의 앙금의 한 사례로는,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남아공 노조 운동가들이 표한 정당한 분노를 들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최근 국제회의를 모로코에서 개최했는데, 모로코는 서부 사하라에 대한 불법 점령을 계속하고 있는 나라다.

    좀 사소한 사례로는, ANC 사무총장 그웨데 만타셰가 금속노조의 중앙은행 시위를 비난한 사건이 있다. 그는 “중앙은행의 문은 열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시위를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못 된다”고 말했다.

    청년공산주의자동맹 의장 데이빗 마손도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다. 문은 열려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영향력을 끼치기에는 너무나 조금만 열려 있다.”

    만타셰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2004년에 그 자신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수천 명의 광산 노동자 대표단을 이끌고 중앙은행을 찾아갔지만 거절만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좌파는 문을 더 활짝 열어 제치기 위해 계속 두드리고 있다. 경찰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에 걸쳐 3만 회 이상의 ‘집회’(15명 이상이 참여한 시위)가 있었다. 이 중 10%가 ‘소요’로 이어졌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 수치는 더욱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좌파 정부 외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갱신이 무르익는 것처럼 보인다. 다름 아닌 노동과 지역사회의 연대가 이를 담금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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