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가 비정규직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2009년 07월 08일 06: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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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 대신, 숫자가 논쟁을 지배하고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이와 같은 말처럼 현재 진행 중인 비정규직법 논쟁은 ‘숫자싸움’으로 이뤄지고 있다. ‘2년 유예’, ‘1년 유예’, ‘6개월 준비기간’, 그리고 정규직 전환 지원금 ‘1100억 원’, ‘1조 원’과 같은 논란들이 그것이다.

    8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비정규 노동자 증언대회’는 이러한 ‘숫자싸움’을 바라보는 비정규 당사자들의 절규였다. 기간제 근로자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20%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파견-용역업체 근무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비정규 노동자 증언대회(사진=정상근 기자)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핵심기술 부문까지 계약만료를 이유로 연봉계약직 노동자 420여 명을 사실상 해고한 <KBS>는 반발이 거세지자 자회사로 전환되는 인원을 늘리는 방법으로 반발을 무마코자 하고 있다.

    오진호 정책국장은 “시설관리팀의 한 선배는 <KBS>에서 십 몇 년을 일했지만 계약만료가 다가왔고 결국 사측의 몇 차례 회유를 통해 결국 전적동의서에 사인케 했다”며 “우리는 이를 폭탄돌리기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KBS의 ‘폭탄 돌리기’

    이어 “우리가 정직원들에게 고통분담을 하겠다는 서약을 받았는데, 이들은 우리를 해고하는 사유가 경영악화라면 3~5% 정도의 고통분담을 감내하겠다고 했다”며 “그럼에도 사측의 입장에 따라 8년에서 10년 길게는 16년까지 일한 분들을 연봉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해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 국장은 또한 “우리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당장 이번 주 다음 주에 해결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몇 달이 걸리든 심사숙고를 통해 해결을 내놓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사약을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지난 2007년, 2008년 단체교섭을 통해 2년 이상 직접고용 비정규직 400여 명을 정규직화했다. 그리고 2년 미만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고용보장과 차별시정을 했다. 그런데 2009년, 정부가 ‘대량해고설’을 흘리면서부터 입장이 돌변했다. 서울대병원은 2년 미만 고용보장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 7명의 비정규직을 사실상 해고했다.

    ‘해고노동자’인 김성미 공공노조 서울대병원 분회원은 “해고당한 이유는 2년의 기간이 지났고 일하고 있는 분야가 외주업체로 넘어갔기 때문”이라며 “계약 기간이 줄어들 때마다 이용만 당하고 쫓겨나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재계약이 될 것인가 생각에 일도 제대로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외주업체에 가면 하는 일을 같지만 근로조건이 현저히 악화된다”며 “임금도 절반이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동안 서울대병원에서 400명 이상 정규직화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갖고 일했지만 현실은 복직 투쟁 중”이라며 “해고된 비정규직들을 복직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외주화, 일은 같고 근로조건은 악화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0년에 걸쳐 외주화를 진행해 왔다. 도로공사의 비정규직은 현재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비정규직법에 의한 계약해지 대상자가 총 345명이지만 지사별로 각기 따로 비정규직을 관리하고 있어 근로자와 해고자가 불분명한 상태다. 그러나 곧 노사분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정회권 한국고속도로 관리원 노동조합 위원장은 “중규직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하고 싶다”며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 관련한 법에 보시면 처우 관련한 조항이 없는데, 우리는 노동조합을 별도로 결성해 임단협을 통해 처우를 개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10여 년 가까운 점진적 외주화를 통해 요금 수납원들은 전부 협력업체 직원들로 외주화됐다”며 “가장 먼저 외주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 비정규노동자들이며, 근로자들이 외주를 거부하게 되면 외부에서 새로운 계약직이 오고, 잉여인력이 발생해 결국 조직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외주화의 근본적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의 무덤’으로 불리는 동희오토는 기아차 ‘모닝’의 완성차 조립업체다. 문제는 이 하청업체 속에 생산직 노동자들은 또 다른 17개의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기간제 계약을 맺는 ‘이중의 비정규직’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최진일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 지회 교육선전부장은 “너무나 열악한 조건이기 때문에, 완성차 공장보다 노동 강도가 높고 임금도 최저임금 수준이며, 사측은 탄압할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전전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와 친하다는 이유로 계약해지하기도 쉽고, 수습기간 중 채용을 취소하기도 쉽다”며 “만약 다수의 노동자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동희오토는 하청업체 폐업이라는 방법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했던 사람들을 걸러낸다”고 말했다.

    동희오토, 해고 일상화

    이어 “한 번 폐업을 겪으면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위축된다”며 “우리 입장에선 지금의 비정규직법 논쟁에 대해 헛웃음이 나온다. 보호법이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2005년부터 동희오토에서는 해고가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또한 “원청이 사용자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의 의무를 지지 않는 한 하청 노동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비정규직법은 한나라당-민주당의 공동합작품”이라며 “한나라당은 이 법이 문제 있다며 유예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한나라당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법안은 전체의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 적용받는 대상은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치되어 있다”며 “게다가 이 법이 통과된 후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법의 결함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국가시책법안을 국가가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승수 의원은 “노동부장관이 경총 국장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 정부 내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이 정부는 무능하고 비열한 ‘무비정부’로, 최근에 시민단체 후원금을 끊고 목사님들에게 소환장 발부하는 등 더욱 비열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당에서는 근로자 파견제에 대한 폐지 등을 포함한 법률개정을 준비 중”이라며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전체를 노동시장을 넘어 사회적 문제이기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현재의 논쟁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낳은 비정규직법이라는 산물에 대해 골치 아프니 살해하자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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