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협박과 방해를 이겨내다
    2009년 07월 08일 09:46 오전

Print Friendly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발암물질은 400종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56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찾아내지 않으면 막을 수도 없다. 정부는 소극적이다. 전문가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발암물질 감시 운동의 중요성과 대책, 외국 사례, 현장과 결합된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전문가의 글을 7차례 연재한다. 이 글은 주간 <변혁산별>에도 동시에 실린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1. 들어가며 : 한국에서 발암물질감시운동이 시작되다
2. 유럽 신화학물질관리제도 (REACH) 도입배경과 경과
3. 유럽 시민사회단체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4. 유럽 노동조합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5. 다시 한국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6. 한국의 발암물질목록은 시민과 노동자의 공동작품이 되어야한다
7. 마치며 : 발암물질감시운동, 현장에서부터 함께하자

   
  

앞의 글에서 유럽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즉각 대체 리스트(SIN List)"를 만들어서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으며, 일부 기업들이 이러한 노력에 동조하고 나선 상황을 소개하였다.

이번에는 유럽 노동조합의 대응을 소개한다. 유럽산별노조연합(ETUC, Europe Trade Union Confederation)은 2009년 3월 “노동조합의 유해물질리스트(TU List, Trade Union List)”를 발표하였다.

노동조합은 유해물질리스트를 따로 만든 이유

2006년 12월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가 유럽의회에서 통과되기까지 10년간의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럽산별노조연합은 REACH 제도를 적극 찬성하는 입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럽사회에게 새로운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전문가들과 연대하여 REACH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적극 조직하고 각종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중에는 REACH 도입으로 직업병이 얼마나 감소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 보고서 같은 것도 있었는데, 피부질환과 호흡기질환만해도 유럽사회에서 1년에 9만 명은 예방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러한 보고서들은 유럽사회와 정치인들로 하여금 REACH의 필요성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사실, REACH 제도가 입안되고 최종적으로 의회에서 통과하기까지 기업의 로비는 어마어마하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느니, 기업들이 힘들어지게 되고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느니 하는 얘기는 기업로비의 단골메뉴였다.

자본, 신화학물질관리제도 도입하면 250만 실업자 주장

2002년 독일의 경제인단체와 컨설턴트 회사의 공동연구에서는 REACH 제도가 시행될 경우 독일에서만 235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기업의 로비는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의 공동대응으로 많은 실패를 하였으나, 일부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의 독성을 기업이 입증하도록 하는 원칙을 노동조합이 밀어붙였다면, 어떤 물질들에 대해 의무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것은 기업 로비의 영역이었다. 최종적으로는 1년에 10톤 이상 생산되는 물질에 대해서만 독성평가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합의되었는데, 이는 유럽산별노조연합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약 2만 종의 화학물질이 1년에 10톤 미만 생산된다는 이유로 독성평가보고서 작성의 의무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인 미흡함은 노사간의 밀고당기기 과정에서 발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향후 과제로 남겨둘 몫이었다. 노동조합이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면, REACH라는 제도 자체가 시행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회에서 REACH가 통과되던 날, 유럽산별노조연합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기업의 로비를 막아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향후 노동조합은 유럽 전체 및 각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화학물질 관리체계가 도입되어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노조의 노력이야말로 실질적인 변화의 동력

다시 2008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암스테르담에서 화학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는 유럽산별노조연합이 마련한 것으로 유럽 각국의 산별노조 활동가들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REACH 제도 도입에 따른 노동조합의 적극적 역할을 토론하였고, 발암물질에 대한 노출기준의 개정이나 표시방법 등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2008년 6월, 유럽산별노조연합은 캠페인에 나섰다. 유럽의 기업들이 REACH에 대한 이해가 낮아서 제도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럽산별노조연합은 유럽 여러 나라에 중요한 노동조합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업에서부터 기업주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잘 알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결의하고 나섰다.

2009년 3월, 유럽산별노조연합에서는 이제 고위험물질리스트를 노동조합의 손으로 작성하여 발표하기에 이른다. 또 다시 기업과의 투쟁, 정부에 대한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유럽산별노조연합은 그동안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자본의 공세와 로비 이겨내야

그린피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본이 REACH를 방해하기 위한 수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집행기관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절차를 아주 까다롭게 만들어놓아서 한 가지 작업을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이 커지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REACH 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고위험물질 후보리스트(SVHC Candidate List)" 작성을 방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위험물질 후보리스트는 REACH 제도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위험물질로 등록된 것에 대해서는 국가의 허가 없이 시장에 유통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허가제도’인 셈이다.

기업들은 허가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하였으나, 허가되어야 하는 물질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로비를 통하여 방해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에서 볼 때, 이미 1500에서 2000종의 화학물질은 고위험물질 후보리스트에 올랐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후보리스트에는 15개 밖에 오르지 않은 것이 그 결과이다.

노동조합은 이것이 유럽국가의 관료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방해전략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들만의 고위험물질 리스트를 발표하고, 정부가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는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유럽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적극적 요구와 개입이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이제 유럽의 부러운 모습은 실컷 보았으니, 다음 글부터는 다시 우리나라의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