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등지고 시민운동 된 게 위기 근본"
        2009년 07월 08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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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에 휘둘리면 학교교육이 망한다’는 공정택 후보의 선거현수막이 대로상에 펼쳐진 걸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성년을 맞은 전교조는 오늘날 위상이 크게 추락한 상태이고 2009년 내내 수세적 상황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 정책 기조의 전환을 촉구한 시국선언이 징계 대상으로 거론되는 형국은 이젠 전교조가 이명박 정권에서 만만한 동네북이 된 느낌마저 갖습니다.

       
      ▲ 사진=전교조

    물론 거기에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의 이념공세를 통한 진실 비틀기와 최근 연이어 터진 성폭력 범죄 등 상처 물어뜯기로 불리하게 조성된 여론 탓도 크겠지만 5년 사이 2만 명 넘는 조합원이 탈퇴할 정도로 전교조가 운동단체로서 조직에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더구나 진보진영이나 개혁적인 NGO조차 전교조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느니 하면서 심심찮게 변신을 주문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전교조 운동 20년 동안 저는 운동의 중심부에 있지 않았고 학교현장에만 있었습니다. 상층 지도부 선생님들이나 지회장, 분회장 선생님들의 헌신과 희생에 언제나 경의를 표하고 싶고 그분들의 열정적인 활동은 소시민적인 저의 삶에 귀감이 되어왔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활동의 중심에 있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에 전교조 20년 교육노동운동의 역사를 성찰해보고 그 과제를 짚어보는 것이 조금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지켜본 전교조 20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교조 운동의 위상이 추락한 원인은 수구신문 조중동의 위력도 아니고 지난 12월에 발생한 성폭력 은폐(?)사건이나 경기도 여자 교생선생님을 성추행한 전교조 교사의 도덕성 상실 등 간간이 터진 도덕성 논란 때문도 아닙니다.

    전교조 운동의 추락은 근본적으로 교육노동운동으로서 전교조 운동이 노동운동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채 표류하였던 데에 그 위기의 본질이 존재합니다. 그 위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전교조 운동의 앞날을 전망하는 것조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군부파시즘을 넘어서서 시민사회로 적극 이행하였고 90년대 내내 시민 민주주의의 확산 속에 전교조 운동 역시 시민운동이 분출하는 사회 환경에 포섭된 채, 1999년 합법화 이후 노동운동으로서의 자기 위상 정립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전교조는 노동운동단체로서 정체성을 견지하기보다 다른 NGO들처럼 시민운동의 마인드가 뒤섞인 속에서 90년대 내내 그리고 2000년대를 보냈습니다. 이후 더욱 거세게 불어 닥친 광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쏟아지는 국가정책에 연일 반대하는 대정부투쟁으로 전교조는 일관하였습니다.

    시민단체가 된 전교조

    7차 교육과정 저지투쟁, 신자유주의 교육정책(학교 시장화정책) 반대투쟁, 네이스 반대투쟁, 교원평가반대 투쟁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교원평가 반대투쟁 과정에서 전교조는 국민으로부터 교사집단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관철하려는 이익집단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고 교원평가반대투쟁은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집단이기주의의 표본처럼 되어 사면초가에 스스로 빠져드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교원평가는 반드시 저지시켜야 할 투쟁이지만 전교조 스스로 양보안을 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돌파하기 어려운 국면을 자초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노동운동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채 낭만적인 교육운동의 정서로 접근하거나 대정부투쟁에서 일반 대중교사와 유리된 상태로 투쟁의 대의명분에 집착하여 지사적인 강경투쟁일변도로 고고한 모습을 양산시킨 데에 그 주된 원인이 있습니다.

    운동은 삶의 과정 그 자체이고 교육노동운동은 학교현장에서 대중운동으로서 조직 역량을 무엇보다 중시하여야 하는데 학교현장에서 전교조 활동은 대중교사와 거리를 둔 채, 교사의 근무조건이나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는 교육노동운동은 거의 존재하지 못했고 교육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조차 미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낭만적인 교육운동을 넘어서서 치열한 교육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전교조가 살 수 있는데 그 점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실패하였던 탓입니다. 무엇보다 전교조운동의 기본은 교육현장에서 마땅히 노동운동이어야 합니다. 교사의 근무조건을 교육적인 환경으로 정비하여야 하고 교사의 복지수준을 높이는 등 노동조합의 기본임무에 충실함은 물론 그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 운동입니다.

    교사 근무조건과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 미미

    그러나 그 흔한 잡무거부투쟁조차도 일궈내질 못했습니다. 잡무거부투쟁은 내부적으로 30만 교사 대중의 전폭적 지지와 함께 교육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 외연을 넓힘으로써 전교조 운동의 저변을 확산시킬 수 있는 중요한 투쟁이었으나 한 번도 채택되질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지만 교사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투쟁으로 교사 자녀 대학등록금 (반액)무상지원투쟁이 있습니다. 대기업체나 은행, 철도, 항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흔히 존재하듯이 교육계에 종사하는 교사의 자녀들에게 대학등록금 (반액)무상지원투쟁은 노동운동의 기본에 충실한 투쟁으로써 그 가치가 있으며 담임수당 현실화 투쟁이나 시간 당 수당 1만 원으로 인상하는 투쟁 등 기타 수당 현실화 투쟁, 주 5일 근무투쟁, 학급당 학생수 20명 감축투쟁, 법정 교원수 확보 투쟁 등은 그러한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잡무거부투쟁이나 수당 현실화 투쟁을 힘차게 그리고 강력하게 발휘하였을 때 지도부가 파면, 구속 등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할지라도 교사 대중은 수구언론의 태도와 다르게 여전히 전교조를 지지하고 그에 강한 연대감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의 기본에 충실할 때 비록 조중동 수구언론에 포위된 사회 환경이라 할지라도 전교조의 조직기반은 튼튼하고 위력적일 수 있습니다. 교사대중의 교육적 이익을 현실화시키는 운동조직이기에 적어도 현장교사들의 끈끈한 지지와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교사 대중의 강한 연대감과 국민적 지지는 오히려 단체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 사진=전교조

    노선 오류로 교사 대중 지지 잃어

    그런 점에서 합법화 이후 전교조 투쟁은 쏟아지는 반교육적 국가정책에 끌려가는 투쟁으로 반정부적 성격으로 일관하였습니다. 7차 교육과정 저지투쟁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학교시장화 정책) 반대 투쟁에서 보여 지듯이 그러한 투쟁의 대부분이 이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쉽게 이념공세에 말려든 채 갈등적 국면을 자초하여왔습니다.

    이는 교사대중과 유리된 상태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수구언론들의 역공세가 먹혀들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고려하지 못한 대단히 잘못된 투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한 번도 교사집단의 이익을 위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교조는 지금 이익집단으로 규정된 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수구언론들이 이념공세로 색깔 덧칠을 시도하거나 정권 차원에서 공안사냥의 먹잇감으로 쉽게 공격해 들어와도 국민들과 교사 대중은 적어도 남의 일처럼 무심한 세태를 보일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교육노동운동단체로서 전교조는 노동운동의 기본 즉, 교사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항상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전교조가 살고 이 땅의 교육이 살아나고 민족의 미래가 한층 밝게 펼쳐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전교조는 노동운동의 기본에 충실하되 이 땅의 변혁운동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은 40년 넘는 파시즘 제제와 분단체제가 쏟아낸 온갖 낡은 질서와 허위의식을 말갛게 씻어내고 반공과 대결의 논리, 냉전과 증오의 논리, 그리고 분단과 차별의 논리가 거세된 그 빈 자리에 화해와 평화의 논리, 상생과 공존의 논리를 심어 사회구성원의 의식을 좀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민족 ・ 민주적으로 바꾸어 나갈 도덕적 책무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잔인하게 표출되는 맹목적 애국심에서 벗어나 전교조는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인격으로 내면화시키는 교육을 지향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전교조가 추구하는 교육은 가난한 영혼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정치한 예술이자 사회적 힘이며 나아가 사회 변화를 위한 훌륭한 무기로 살아있어야 하겠습니다.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기형적 현실에서 우리 전교조가 헤쳐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 험난하지만 역사적 소명이 막중하고 위대한 것임을 우리가 잊지 못하는 참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전교조의 정체성과 조합원 교사의 품성

    마지막으로 전교조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해야 합니다. 조합원의 학생관, 교육관이 뚜렷해야 하고 노동자 의식, 노동자의 세계관 등 건강한 철학에 기초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 활동의 중요한 과제인 노조교육을 강화하여 조합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정립하여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교사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전교조 조합원이면서 학벌이데올로기에 순전히 매몰된 상태로 교직생활에 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아가 입시교육을 교육의 본질인 양 별다른 성찰 없이 수용하거나 학교관리자의 반교육적이고 부당한 지시를 비판 없이 순종하는 것은 조합원 교사의 품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조합원 노조교육을 활성화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노동운동가로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학습이 절실한 이유가 그렇습니다.

    오늘의 시대 이 땅의 교사는 교육운동가에 머물지 않고 교육노동운동가로서 전교조의 전망을 내다보고 불의한 사회현실에 저항하며 부조리한 학교현실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견결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훌륭한 교육운동가를 넘어서서 멋진 교육노동운동가이어야 합니다. 18c ~ 19c 스위스 낡은 교육질서에 끊임없이 저항했던 교원노조의 아버지 페스탈로치처럼 쉼 없이 성찰하고 내면의 도덕성을 드높이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겠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전교조에 많을 때 주변 교사들이 전교조를 지지하고 조직에 가입할 것이며 이는 대중조직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요체가 될 것입니다. 전교조 이름만 들어도 아직도 가슴이 뛰고 설렙니다. ‘참교육의 함성으로’노랫말 가사를 같이 따라 부르다보면 89년 그 때처럼 저도 모르게 벅차고 가슴 속 눈물이 흐릅니다. 언제나 전교조 교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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