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의 신경제노선, 둔전제
        2009년 07월 10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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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여러분께 드리는 사과 말씀.

    지난 2월부터 빨간 삼국지 연재가 예고도 없이 중단되었다가 이제야 다시 재개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빨간 삼국지’는 한나라를 무너뜨린 ‘황건당 운동’이 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처럼 이후 모든 사회운동의 기원이 되는 거대한 대중의 흐름이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치 박정희가 남로당원 출신이었던 것처럼, 조조도 한때 황건당이라는 그 시대의 ‘이념운동’에 참여했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상상 속에서 2000년 전 삼국지에서 드러난 권력운동의 일반적 속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표현해보려는 맥락에서 기획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도 1974년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그 속에서 창천내사(蒼天乃死 : 푸른하늘은 곧 죽는다)라는 황건군의 구호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진보신당의 울산북구 재선거에 참여하는 바람에 부득불 연재가 중단되었고 선거 이후에도 개인적인 사정과 게으름으로 곧바로 연재를 재개하지 못했습니다.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향후 꾸준한 연재로 보답하겠습니다. 서툰 연재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이 기회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필자>

       
      ▲ 그림=억수씨

    본시 천하제패의 꿈을 간직하고 있던 조조는 동군 태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일정한 근거지를 구축하게 되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인간’이었다.

    ‘어차피 세상 일이라는 것이 사람에 의한 일이고, 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나 혼자의 힘만으로 천하를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힘의 근원은 조직에 있는 법.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통해서 나의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나의 편을 만드느냐가 결국 내가 다스릴 영토의 넓이를 좌우할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내 사람을 만들다가, 어느덧 세상 사람들이 다 나의 편이 되면 그것이 바로 천하통일이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조직 원리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갖고 있던 조조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조조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든 힘을 인적 역량을 수소문하고 이를 끌어들이는 데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발굴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순욱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천하통일’

    조조는 순욱을 통해 많은 조언과 충고를 받을 수 있었지만, 순욱이 조조를 위해 했던 가장 큰 일은 바로 이 ‘인재추천’에 관한 일이었다. ‘인사가 만사’라 하였듯이 아무리 조조라도 무작정 인물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사실 조조로서도 누가 누구인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는 순욱을 통해 사전에 맺어져 있던 ‘기존의 신뢰관계’를 최대한 활용했던 것이다. 조조는 한 사람의 인재를 캐내니 마치 고구마 줄거리처럼 줄줄이 다음 역량들이 연결되어 튀어나오는 형국을 보며 한껏 들뜬 마음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때 조조 진영에 동참한 인재들 중에는 대개 젊은 인재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특히 순욱과 함께 황건당 청년파를 구성하던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욱(程昱), 곽가(郭嘉), 순유(荀攸)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조조가 수많은 인재를 끌어들여 새로운 권력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조가 갖고 있던 인간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도 크게 작용했다. 그것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사실 조조를 찾아온 순욱도 따지고 보면 황건당의 봉기 실패 이후 잠시 원소 진영에 몸담았던 바 있었다. 조조의 입장에서 까다롭게 따지자면 경쟁자인 원소 측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순욱이 동군(東郡)에 주둔하고 있던 조조를 찾아 갔을 때, 조조는 짧은 면담 끝에 순욱을 자기 식구로 받아들이면서 "그대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이요!"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순욱을 사마로 임명하기도 했다.

    조조의 인사 원칙, ‘과거를 묻지 않는다’

    조조의 이런 인재 사냥 기질을 잘 알게 된 순욱이 어느 날 물었다.

    “조공, 조공의 진영에 저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그렇게 사람을 잘 믿으십니까?”

    "하하… 이보시오 문약(文若 순욱의 자), 어차피 사람과 사람의 믿음이란 별 근거가 없는 것이오. 아무 근거 없이 믿는 것이 신뢰란 말이오. 어차피 그럴 바에야 내가 먼저 신뢰를 던져서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게 상책이 아니겠소."

    "하하. 장군께서는 참 편리한 인간관을 갖고 계십니다. 그려."

    “내가 만나는 새로운 인물이 결국 내가 만난 새로운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랬다. 조조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는 특히 조조라는 권력의 일생에서 그 형성기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만약 권력의 성장기나 확장기였다면 아무리 조조라도 함부로 이런 원칙을 도입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조조가 이렇게 타 진영에서 넘어온 인물들도 선입견 없이 성심껏 대우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충성심은 오히려 남달랐다. 또 계속해서 다른 진영에서 장수와 인재들이 조조 진영으로 넘어왔다. 사람은 대개 자신을 둘러싼 인적 환경 속에서 자기 시각이 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조는 끊임없이 현재의 인적 환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에 대한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그렇게 조조 진영에 합류한 많은 사람 중에 또, 진류(陳留) 사람 전위(典韋)가 있었다. 전위는 본래 조조와 접경하고 있던 ‘진류’ 지역에서 태수인 ‘장막'(張邈)의 휘하에 있던 인물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 조조에게 찾아와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전위는 겉보기에도 기골이 장대하였다. 조조는 전위에게 무예시범을 청했다. 전위는 외모 만큼이나 힘이 장사였다. 80근이나 되는 양지철극을 마치 나무막대기 갖고 놀듯 휘두르며 마상무예를 선보였다. 한참 사람들이 전위의 무예 시범에 넋을 놓고 있을 때,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커다란 대장기가 막 쓰러지려 했다. 전위가 이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모두들 비켜라!"

    전위는 크게 소리치며 달려가 한 손으로 대장기를 일으켜 세웠다. 전위는 그 자리에서 두 손을 쓰지도 않고 한 손만으로 대장기가 쓰러지는 것을 막아냈다. 조조 앞에서 힘자랑을 한 것이다.

    "오. 대단한 역사로다!"

    조조는 감탄스러운 듯이 겉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왠지 전위가 장군감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힘이 세다고 많은 군사들의 생사를 좌우할 지휘관의 역할을 맡길 수는 없었다. 조조는 잠시 생각했다.

    ‘저 사람이 힘은 세지만, 지휘력이 검증된 인물은 아니다. 높은 자리를 주면 오히려 자기 힘만 믿고 조직 전체에 혼란을 끼칠지도 모른다. 어찌 저 인물에게 적당한 자리를 줄 것인가?’

    조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정규적인 군사 편제상으로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무술 실력 하나는 아까웠다. 그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나의 호위대장을 맡기면 되겠군!’

    믿지 못하겠으니 호위대장

    조조는 그 자리에서 전위를 자신의 호위대장으로 임명한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전위는 오랫동안 조조의 옆에 있던 인물도 아니었다. 방금 다른 진영에서 넘어온 인물을 그의 과거를 묻지도 않은 채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호위대장에 앉힌 것이다.

    전위는 그런 조조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움 이전에 큰 신세를 진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전위는 천민 출신으로 장막의 휘하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 대판 싸움을 벌이고 쫓겨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묻지도 않고 최측근에 봉해준 조조에게 어찌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조조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알아보고 인간적으로 그를 끌어들이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러한 조조의 면대면 흡인력은 조조 진영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원천이었다. 젊은 조조에게 부하들이란 동료로서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들어 새로 만들어진 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 진영은 내부의 다툼이나 분란보다는 뭔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해보자는 의욕적인 분위기가 충만하였다. 젊은 조조는 부하들과 허물없이 지냈고 조조 진영은 상하간 위계질서보다는 조직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생동감이 넘쳤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다양한 상상력들을 형성하는 커다란 기반이었다.

    조조는 동군태수라는 합법적인 직분을 최대한 활용해 근거지를 만들고 부하들에게 자신이 앞으로 천하를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해 줌으로써 이들의 자발성과 성취동기를 극대화시켜냈다. 조조는 이들이 저마다 자기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때로는 없는 직책을 만들어 주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재정 문제 봉착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아진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30만에 가까운 청주병을 끌어들이고 계속해서 인재를 모집해 직책을 남발하니 결국은 이들을 먹여 살리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조조는 이 문제로 큰 고민을 하였다. 부하들과 군사들에게 급료를 제 때 주지 못하면, 애써 만들어놓은 조직체계가 흔들리고 부하들에 대한 지배력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반란의 발생을 의미했다.

    이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진 조조에게 어느 날 순욱이 찾아왔다.

    "조공, 동군 태수로 자리를 잡으신 지도 시일이 많이 지났고 이제 천하의 인재들과 수십만에 달하는 군사들이 몰려들었는데 이 많은 식구들을 어찌 건사하실 계획이신지요?"

    "음. 이보시오 문약. 그렇지 않아도 내 이 문제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소. 무슨 좋은 대안이 없는거요? 저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 하는데 지금 동군의 재정으로는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 분명해서 그렇소."

    "백성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군사력을 유지하려면 대충 7가구에서 한 사람씩의 군사를 차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청주에서 활동하던 황건당의 농민들을 모두 군사로 흡수하여 군대 규모가 매우 방대합니다."

    "그러니 하는 말이오. 게다가 내가 전국에 구현령을 내려 천하의 인재들을 긁어모았더니 그들을 먹여 살릴 일도 이제는 아주 큰일이 되고 말았소."

    "조공, 제 생각에는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수확의 6할을 걷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놀란 눈으로 순욱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문약. 어찌 백성들에게 6할이나 뜯어낸단 말이오. 그랬다가는 이 조조가 역사에 폭군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겠소? 하하하…”

    다른 사람들도 거들었다.
    “아무리 힘없는 백성들이지만, 6할은 너무 많지 않을까요?”

    순욱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땅과 소를 빌려주면 됩니다.!”

    좌중에 일순간 적막이 흘렀다.

    “흠…”

    조조는 짧은 순간이지만 순욱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순욱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 천하가 어지러운 이유는 백성들이 경작할 땅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금의 생산력만으로도 백성들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천하는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위 천하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천자와 귀족들이 그들에게 일할 자리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땅은 많으나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얻지 못해서 여기 저기 떠돌기 때문에 천하가 이토록 번잡한 것입니다.

    시절이 이럴진대, 조공께서 먼저 굶주린 백성들에게 땅과 소를 빌려주고, 그 대신 추수철에 조세를 많이 걷어 오히려 동군 지역을 더 안정시키신다면 백성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튼튼한 바다 그물처럼 안정된 삶의 근거를 얻게 되고 나라의 재정은 더 풍족해 질 것입니다."

    ‘많이 내어주고 많이 걷는다’

    조조와 다른 참모들은 다들 진지한 고민에 빠지는 것 같았다. 순욱이 설득을 이어갔다.

    “단순히 착한 군주가 백성들의 곡식을 덜 빼앗아 간다고 천하가 진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군주가 나눠준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백성들한테 거두어들인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천자가 많은 것을 내어주고 대신 많이 걷어 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옵니다.”

    순욱의 이러한 판단 속에는 발상의 전환이 숨어있었다. 지금까지는 조정(朝廷)에서는 으레 세금을 가져가고 농민은 으레 세금을 바치는 것으로 되어있을 뿐이었다. 백성들은 ‘단순히 좀 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있을 뿐, 왕과 귀족들이 그 가져간 것으로 뭘 하는지는 원천적으로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순욱은 단순히 선한 군주가 백성들의 쌀을 좀 덜 가져가는 호혜적인 천하를 꿈꾸는 것이 아니었다. 순욱은 왕과 백성들이 각기 저마다의 역할에 따라 ‘유기적 경제관계’를 맺는 세상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순욱은 독특하게도 오히려 세금을 많이 걷어 들이는 방식을 선호했다. 대신 많이 나누어주면 천하가 더 안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조조는 판단이 빨랐다. 순욱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조는 민간에게 땅과 소(牛) 같은 생산수단을 국가가 먼저 안정적으로 제공해주고 그 대가로 비교적 높은 비율로 생산물을 가져가기로 했다. 또 민간뿐 아니라 군대가 주둔한 곳에도 이런 식으로 국가소유의 땅과 소를 내주어 군사들이 농사를 짓도록 했다.

    조조 측에서는 많은 소출을 가져가는 대신 백성들이 더욱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 안정을 위한 많은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조조는 여기서 민간에게 내준 토지를 민둔전(民屯田), 군사들에게 내준 토지를 군둔전(軍屯田)이라 칭하고 둔전교위(屯田校尉)라는 벼슬을 만들어 이를 관리하게 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제도를 둔전제(屯田制)라 불렀다.

    순욱은 조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시 천하라 함은 풍년과 흉년의 주기적 변동체이고 백성과 귀족의 일상적 균형체입니다. 따라서 천자라 함은 천하의 경제기운이 변동할 때 그 중개자가 되어야 합니다. 천하가 어려울수록 먼저 조정에서 재정을 털어 백성들의 삶에 안정을 기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라의 수취체제를 통해서 모든 농민을 사회적 농민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소. 내 그대의 뜻이 무슨 뜻인지 많이 알아들었소. 문약 덕분에 내 큰 근심이 하나 사라질 것 같소. 역시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요!"

    조조 할인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조가 시간의 가치를 빨리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조조의 둔전제(屯田制)는 서로 다른 차원의 시간 이익을 국가와 백성이 나눠 갖는 체제였다. 일단 백성들이 어려울 때 조정(朝廷)에서 먼저 토지와 가축을 제공해 백성들에게 살길을 뚫어준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대가로 장기에 걸쳐 조금씩 높은 세금을 부담한다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거대 자산의 소유자인 임금과 조정에서 장기적인 시간 이익을 갖고, 대신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백성들 개개인은 자기 노동력을 이용해 당장의 짧은 시간 이익을 갖는 것이었다. 즉 조정에서 생산수단의 미래가치를 가져가는 대신 백성들은 당장의 할인된 현재가치를 향유하는 체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조조의 할인>(曹操之割引)이라고도 하였다.

    이 조조할인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향후 조조라는 권력의 지속적인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막 자기 정치를 위한 원초적 축적을 수립하던 당시에 이미 조조와 같은 수십 명의 지역 제후들이 있었으나 바로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통해 조조라는 인물이 비로소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가가 많이 가져가되 백성들에게 먼저, 많이 베푸는 독특한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조조는 천하 제웅들과 겨루기 위한 매우 강력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렇게 휘하에 수십만의 군사와 수많은 장수들 그리고 유능한 행정가를 거느리고 그들을 먹여살릴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게 되자 조조는 슬슬 천하제패라는 본래의 야망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연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그 우연한 사건이란 바로 조조의 아버지 조숭의 피살 사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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