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 내용 없이 교섭 ‘형식’에 갇혀
        2009년 07월 07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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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노동자회에서 내는 주간 <현장노동자>에서는 금속노조 산별 전환 이후 3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기획을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현 단계 노동운동의 조직적 전망은 산별이며, 그 동안의 한계와 성과를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산업별 노조로 전진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산별 건설의 과정과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한 사업과 이에 대한 평가 등의 내용을 담은 연재를  <레디앙>에도 함께 싣는다. <편집자 주>

    ① 들어가며 : 산별전환 때의 열기가 식고 있는 건 아닌지
    ② 교섭 : 중앙교섭 성사라는 ‘형식’에 갇혀 사용자설득에만 ‘올인’
    ③ 의사결정 : 방침수립도 쉽게, 방침위반도 밥 먹듯…“밀어부치면 다된다”
    ④ 투쟁 : 현장투쟁 조직은 방기하고 무조건 국민과 함께하는 투쟁
    ⑤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 외로운 중소영세비정규직…금속노조의 무게중심은 대기업
    ⑥ 제조산별 : 상층조직 통합하면 ‘제조산별’ 할 수 있다던 헛공약
    ⑦ 종합 : “전략을 갖고 현장과 소통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난 3년간의 금속노조 임단협 투쟁은 한마디로 ‘실패’다. 올해 투쟁이 마무리 되진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필자가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라 본다.

    2006년 말 주요 대공장의 산별노조 결합 뒤 처음으로 맞은 2007년 임단투, 우리는 단순하게 산별전환 그 자체로서 강력한 무기를 획득했다고 착각하고 현장에서 투쟁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단추가 어긋나서 3년이 지난 지금은 아예 옷을 새로 갈아입어야 할 지경이다.

       
      ▲ 지난 6월에 열린 제 10차 중앙교섭 (사진=금속노조)

    3년간 후퇴해 온 산별교섭

    지난 3년간 금속노조의 교섭 투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기조와 목표는 산별교섭 쟁취였다. 올해마저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산별교섭 실패의 원인은 금속노조가 3년간 교섭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2년 반 동안 ‘조합원들의 투쟁 동력이 교섭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것과 ‘조합원들의 투쟁 동력은 요구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조합원 전체의 공유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어겼다. 그리고는 회사를 상대로 세련된 교섭 기술로 교섭을 판가름 낼 수 있다고 착각했다.

    노사 협상에서 ‘세련된 기술’은 어떤 문서나 문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이 2007년의 확약서였고, 2008년의 제2확약서였다. 각 확약서는 모두 “다음해에 중앙교섭에 참석하겠다, 이런저런 조건이 해결되면…”이었다. 이를 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에게 ‘다음해에 교섭이 성사된다’고 포장해 성과로 설명했고 사측은 ‘내년에 교섭 참석 안해도 된다’는 것으로 주장했다.

    노조는 조합원들로 하여금 우리가 무엇을 요구했는지, 혹은 어떤 요구가 산별노조다운 것인지 생각지도 못하게 하고 조합원의 생각을 ‘형식’에 가두어 두었다. 이 틈에서 회사는 조합원의 관심이 집중되는 의제들을 사업장별 교섭에서 풀어놓았다. 결국 3년간의 투쟁은 사업장 차원의 울타리에 턱 막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알맹이는 빼고 형식에만 목매

    지난 3년간 금속노조가 설정했던 목표를 되짚어보자. 2007년에는 중앙교섭 승리와 산별체계 확립을 목표로 잡았다. 그 다음해에는 5만의 산별협약쟁취와 중앙교섭 돌파로 설정했다. 그리고 올해는 산별교섭권 확대의 토대 구축으로 변화했다.

    목표가 ‘승리->돌파->토대구축’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는데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3년간의 목표가 죄다 교섭이라는 ‘형식’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형식을 성사시키지 못함에 따라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내용’이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말이다. 임금과 고용, 그리고 작업장 문제나 노동시간 등과 관련해 산별노조다운 요구로 어떻게 내용이 다듬어져 요구될 수 있는지 그 ‘내용’이 남은 거 하나 없이 ‘형식’에만 집중하다 실패에 이르니 참으로 상실감이 크다.

    그런데 이 형식마저도 대기업 교섭과 나머지 사업장이 3년간 갈라졌다. 중앙교섭에 참석하는 사업장 2만여 교섭과 그렇지 못한 압도적 다수의 대각선 교섭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것이 투쟁 동력을 분리시켰다. 내용도 없고, 형식마저 단일하지 않으니 실패할 수밖에.

    합법과 낮은 요구로 조합원 참여 유도?

    여기에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나치게 ‘합법’에 의존했던 경향도 실패를 부추겼다. 지도부는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합법적 절차로 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조합원이 관심을 집중할 산별노조다운 내용적 요구도 없고 교섭형식마저 15만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니 마지막으로 조합원을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법에 의존’하는 것 밖에 더 있었겠나 싶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투쟁 참여는 합법이냐 비합법이냐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이 관심을 집중할 요구 내용 설정과 지도부에 대한 신뢰에 있다. 단지 ‘합법’으로 조합원 동원이 쉬울 것이라고 봤다면 지도부 스스로가 내용을 만들 ‘전략’도, 신뢰를 구축할 지도력도 포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요구(목표)가 교섭을 위한 현장 동력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그 요구 목표는 현장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자면 지도부는 전략을 갖고 내용을 설정하고, 조합원들과 그 전략과 내용을 소통하고 공유시켜 나가는 가운데 자기 요구로 만들게끔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부는 처음부터 ‘교섭성사’라는 형식에 매몰되어 “요구수준이 낮을수록 사용자가 교섭에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거”라는 말을 공석이든 사석이든 서슴없이 했다.

    그러나 요구수준을 낮추고 사용자를 잘 설득한다고 교섭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이 3년 동안 입증됐다. 문제는 내용이었는데 3년 동안 금속노조 지도부에겐 그 ‘내용’이 없었고 전략도 없었다. 이런 지도부는 매번 조합원 정서를 핑계대기 마련이다.

    조합원의 투쟁력=지도부의 지도력

    올 투쟁을 준비하면서 연초부터 현장토론이 있었다. 앞선 2년 동안 현장토론과 그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히 대기업단위에서 산별투쟁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전략과 내용을 모르니 조합원들로서는 마냥 투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을 리 없다.

    그러자 지도부는 “투쟁 지침을 내려도 조합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조합원 탓만 했다. 그러나 이는 지도부가 해야 할 책임, 즉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드높이고 보다 높은 투쟁 목표를 조합원들이 자기 것으로 갖게끔 하는 철저한 준비를 그동안 방기해 왔다는 고백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지도부의 지도력은 결국 무너졌다. 지도부가 전략과 내용 등의 준비가 없으면 조합원들은 방치되고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렇게 조합원들이 쉽게 싸움에 나서지 않으면 거꾸로 지도부는 조합원 핑계대며 교섭에만 매달리며 협상의 기교를 부리는 수밖에 없고, 이는 또다시 조합원들을 노동조합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올해 투쟁에서 ‘경제위기’라며 내부 동의 절차 없이 사회적 교섭이니 임금양보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은 조합원들과 분리된 지도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사용자들에게 교섭에 나오라고 애걸복걸 하게 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섭지상주의가 되면 투쟁은 없고 집회와 행사 위주로 대체된다. 노조 지도부의 지도력마저 무너지게 될 때 그 지도부는 본능적으로 쪽수가 많은 쪽의 의견에 치우치게 된다.

    현대차가 아닌 금속노조가 중심이 되어야

    마지막으로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현대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에 지나치게 매어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조합원에게도 너무 지나친 부담이 되고 있다.

    노조 역시 전체의 힘을 집중하지 못하고 특정 조직에 의존하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 지난 3년 동안, 현대차를 중심으로 전술을 짜다가 결국 매년 현대차지부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전체 투쟁이 어그러지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속노조는 이제 현대자동차를 극복해야 한다. 올해 현대자동차지부 집행부 사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자동차지부가 거대 조직이기는 하지만 98년 정리해고 투쟁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중요한 요구(주간연속2교대제)를 결코 온전히 쟁취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모든 투쟁은 현대차가 중심이 아니라 금속노조가 중심이 되어 힘을 모으는 전략과 전술이 되어야 한다. 이것저것 다 실패해 결국 조합원수가 가장 많은 조직의 의견에 의존하다 이마저 실패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산별노조가 전략과 내용을 갖고 현장을 구석구석 조직하며 소통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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