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 ‘절대반지’를 없앨 수 있을까?
By 내막
    2009년 07월 06일 0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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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상] 유라시아 지정학 요동칠까?

미국과 러시아가 오늘(6일)부터 2박 3일간의 정상회담에 들어간다.  「심층분석- 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국 정상이 논의할 사안들은 넘쳐난다. 이 가운데 단연 관심을 끄는 분야는 ‘핵협상’이다.

올해 12월 5일 만료될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갱신 대체할 합의에 도달하느냐의 여부는 그 자체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미사일방어체제(MD) 및 나토 확대 등을 둘러싼 양국간의 관계의 가늠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회담 결과는 오바마 행정부가 주창하고 나선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데 첫 단추를 꿴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첫 단추를 잘 꿰어 내년 5월 뉴욕에서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핵보유국 정상회담을 통해 핵군축 역사에 이정표를 세우길 원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까닭이다.

   
  

일단 미러 양측은 새로운 협정을 통해 핵탄두 수를 1,500개 수준으로 줄이는 것에는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START-1에서 상한선으로 정한 6,000개의 1/4 수준이다.

그러나 장거리 운반수단,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전략 폭격기의 감축 폭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은 1,000~1,100개 수준으로의 감축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러시아는 600개까지 줄이자고 제안하고 있다. START-1에서의 상한선은 6,000개였다. 핵탄두에 비해 운반수단의 숫자가 적은 이유는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 4월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운반수단의 보유량을 발표했다. 미국은 550개의 ICBM, 432기의 SLBM, 그리고 216기의 전략폭격기를 신고했다. 이는 핵탄두 5,576개를 운반할 수 있는 양이다. 러시아는 ICBM 469기, SLBM 268기, 전략폭격기 79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3,909개의 핵무기를 쏠 수 있는 분량이다. 미러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핵미사일의 상당수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핵감축에 더 적극적인 이유

주목을 끄는 부분은 미국보다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MD가 지구화되는 것이 미러간의 전략적 균형을 헤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미국보다 더 많은 핵미사일을 보유할 동기가 강하다.

이는 러시아가 핵협상을 MD와 연계시키고 있는 이유를 말해준다. 즉, 미국이 동유럽 MD 계획을 철회하면 더 많은 핵감축이 가능하지만, MD를 양보하지 않으면 핵감축은 불가하다는 협상 전략을 엿보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핵무기 운반수단을 크게 줄이지 않으면,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막강한 핵 인프라를 보유한 미국은 운반수단에서 핵무기를 분리하더라도 ‘필요시’ 분리된 핵무기를 다시 장착할 수 있다.

러시아는 또한 미국이 핵탄두가 분리된 운반수단에 재래식 무기를 장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더욱 확고해져 러시아의 군사력을 압도하게 된다는 것이 러시아 군부의 우려라고 <워싱턴포스트> 6일자는 전했다.

부시 행정부는 ICBM에 비핵무기를 장착해 유사시 사용할 방침을 밝혔는데, 푸틴은 이를 ‘핵미사일’과 동일시하겠다며 강력 반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운반수단을 최대한 줄여 미국이 핵탄두를 재장착하거나 재래식 무기를 장착할 여지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러시아의 협상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러시아의 제안처럼 보다 과감한 핵무기 운반수단의 감축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단기적으로 운반수단의 해체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런데 돈 쓸 곳은 많고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처지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핵태세검토(NPR)를 완료하지 않은 상황이다.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NPR이 미완성된 상황에서 대규모의 핵감축을 시도했다가는 의회의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동유럽 MD의 대안?

앞의 글에서 자세히 분석한 것처럼, 핵협상을 포함한 미러관계의 핵심 의제는 동유럽 MD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새로운 대안이 부상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부시 행정부 때 추진된 계획은 폴란드에 요격미사일을,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대안은 스탠포드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딘 윌케닝이 제시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윌케닝은 오바마 행정부에게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보다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을 설명했다. 하나는 터키에 레이더 기지를, 루마니아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지스함을 이용한 해상 MD 시스템 구축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전략미사일부대 사령관을 지낸 빅토르 예신은 루마니아 MD 방안은 불가하지만 해상MD는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이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 또한 미지수이다. 동유럽 MD 계획의 철회는 러시아의 압력에 미국이 굴복한 모양새를 띨 수 있고, 동맹국을 포기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바마는 MD 계획의 철회나 변경은 공화당과 민주당 내 매파들의 반발을 야기해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핵군축 조약 비준을 어렵게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러시아에 밀린 지도자’로 낙인찍히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것을 우려한다.

국내적으로 압박을 받기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푸틴과 달리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다. 4월 초 오바마와 첫 회담 때에는 MD를 핵군축 협상과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두 가지 사안을 연계시키고 있는데, 이는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내 강경파의 반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교훈

기실 핵협상과 MD 문제가 이처럼 얽히고설킨 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군축 협상의 이정표로 일컬어지는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1)은 MD에 대한 양측의 공동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SALT에서 핵무기 운반수단의 상한선에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MD에 제한을 둔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핵감축의 ‘대약진’을 가로막았던 것도 MD를 둘러싼 미소간의 이견 때문이었다. ‘신사고’를 강조하고 나선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자고 레이건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ABM 조약 존중 및 MD의 전신인 전략방위구상(SDI) 계획의 철회였다.

그러나 레이건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중거리미사일 폐기에 진전이 있었지만,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가 SDI와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1990년대 들어 START 협상이 본격화될 수 있었던 것도 소련의 몰락과 함께 아버지 부시가 SDI를 철회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후에도 핵미사일 감축을 ‘블로킹’하고 나선 것은 부시 행정부의 MD였다. 1993년 미러간에 합의된 START-2는 1997년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의 추가의정서 비준 거부와 부시 행정부의 2001년 12월 ABM 조약 탈퇴로 발표되지 못했다. 1997년부터 협상에 들어간 START-3 역시 부시의 ABM 조약 탈퇴로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결국 MD와 핵협상의 모순과 긴장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바마가 인간세계의 ‘절대반지’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 폐기에 획기적인 진전을 거두기 위해서는 MD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손에는 최강의 핵전력을, 다른 한 손에는 MD를 쥐고 ‘절대안보’를 꿈꿔온 미국이 이러한 역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바마가 주창하고 나선 ‘핵무기 없는 세계’가 말만 무성하고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최근 지은 책으로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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