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비정규직 걱정을 하셨나요?
    2009년 07월 03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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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과 번개, 폭풍우가 굴뚝을 뒤흔들었습니다. 지상에서의 폭풍우는 70m 상공에서는 거의 태풍입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멀미가 나올 만큼 심하게 굴뚝이 흔들립니다.

   
  ▲ 쌍용차 비정규지회 서맹섭 부지회장은 40여일이 넘도록 70m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비바람은 비옷을 입고 버티면 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번개입니다. 시멘트로 되어 있는 굴뚝 맨 꼭데기에서 아래쪽으로 1m 가량 철판이 둘러쳐져 있고, 두 개의 피뢰침이 있습니다. 번개가 치면 이 피뢰침을 타고 내려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굴뚝 한가운데로 가지 못하고 주변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습니다. 쇠로 된 물건은 어떤 것도 만지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굴뚝의 끝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점심에는 식사도 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괜히 점심을 올리다 번개에 맞으면 큰일이니까요. 굴뚝농성 52일,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아침 먹은 게 또 탈이 났는지 배가 아파서 점심은 그냥 굶었습니다. 이따가 배가 고프면 초코파이나 하나 먹을까 합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이 고립되다

용역깡패가 물러간 자리에 전투경찰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오늘도 버스 27대 정도가 공장을 포위하고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아주 큰 일이 벌어진 조합원들이 공장 밖을 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7월 1일에는 우리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전국에서 파업을 하고, 쌍용차 정리해고 규탄집회를 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보았습니다. 현대와 기아, GM대우차는 파업을 못했지만 200개가 넘는 사업장에서 함께 파업을 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까지 4천명이 넘는 동지들이 이곳 평택공장으로 달려와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밤늦게까지 함께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굴뚝이 너무 멀고 높아서 조합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우렁찬 함성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산별노조를 외부세력이라는 하는 코미디

지난 해 9월 비정규직 희망퇴직, 우선해고에 맞서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쌍용차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으니까 이제 갓 10개월이 되었습니다. 금속노조는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산업별노조이기 때문에 개별 가입을 하고, 조합비를 금속노조에 내고,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교섭권과 체결권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회사는 현대, 기아, 쌍용, 한진 등 제각각이겠지만, 노동자는 금속노조라는 산별노조로 묶였고, 대기업부터 하청회사까지 모든 회사의 교섭 대상은 바로 금속노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섭과 파업은 물론, 해고를 당해도 금속노조가 생계비를 책임지고 함께 싸운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금속노조를 외부세력이라며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처럼 노동조합을 배운 지 10개월도 안 된 초보도 산별노조를 아는데, 높으신 정부와 검찰, 경찰은 금속노조가 단일노조라는 걸 모르는 모양입니다. 아니, 너무나 잘 알면서 국민 여론을 왜곡하기 위한 교활한 수단이겠지요.

산별노조가 발달한 유럽이나 외국 사람들이 산별노조가 외부세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비웃을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노동부의 수장인 이영희 장관께서도 금속노조가 외부세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영희 장관의 눈물이 가증스런 이유

어제 이영희 노동부장관께서 비정규직법 문제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비정규직의 해고를 걱정하시는 말씀도 여러 차례 반복하셨습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해서 비정규직법 유예를 반대한다는 말씀도 하셨더군요.

쌍용자동차에서 7년 동안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왜 저는 ‘악어의 눈물’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쌍용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해 10월 350여명의 강제희망퇴직을 반대하며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수차례 노동부를 찾아다니며 비정규직의 심정을 호소했습니다. 노동부와 고용지원센타를 몇 번씩 방문해 원청과 하청업체 사장들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고,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규를 호소했습니다.

   
  ▲ 사측 용역에 의해 부상당한 조합원들 (사진=쌍용차지부)

우리는 쌍용자동차 원청회사와 하청회사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 교섭을 요청했고, 노동부와 고용지원센타를 찾아가 중재에 나설 것을 호소했으며, 수많은 언론사에도 우리의 억울함을 알렸지만, 어느 누구 하나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울 것을 결의했고,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굴뚝에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경제위기가 몰아닥치던 지난 해 12월에는 금속노조 산하 금속비정규투쟁본부를 만들어 현대차, GM대우, 쌍용차 등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우선해고와 차별대우를 중단할 것을 외쳤습니다. GM대우 부평공장, 쌍용차 평택공장, 양재동 현대기아차본사, 동우화인켐, 기아차 모닝공장을 찾아 경제위기의 고통을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지난 4월 3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터쇼가 열리는 일산 킨텍스를 찾아 ‘비정규직 다 짜르고 웬 쇼냐’라며 기자회견을 하다 40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국무총리와 높으신 장관님들이 행사장 안에 계셨다지요? 그래서인지 경찰은 ‘비정규직도 함께 살자’는 애절한 바람을 군홧발로 짓밟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영희 장관께서는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회사 사장들을 만나 비정규직을 해고하지 말고 고용을 보장하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높으신 분이니까 ‘아랫사람’을 시켜 만나보라고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요?

높으신 이영희 장관님.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이후 지난 2년 6개월의 세월이 흘렀고, 장관이 되신 지도 1년 4개월이 지났는데, 그 동안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정부기관에서 정규직을 꿈꾸며 2년을 꼬박 기다린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하시면서, 사장들에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 말고 해고하라고 선동하고 계시면서 비정규직을 걱정하시다니요.

장관님은 어제 쌍용차 노동자들이 “소란해서 그것을 대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불만”이라고 하시며, 쌍용차가 아니라 비정규직 같은 약자들의 해고에 더 관심을 기울여주셔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법과 단체협약에 고용이 보장되었던 쌍용차 정규직 노동자 2646명도 하루아침에 해고시키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쌍용차 350명의 비정규직 해고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정규직은 그냥 짜르고,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계속 부려먹자는 말씀입니까?

정규직은 짜르고 비정규직은 영원히 부려먹자고요?

높으신 이영희 장관님,

비정규직이 잘못된 고용이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대통령품질상을 받았고, 7년 동안 단 이틀 월차를 낸 저 같은 사람도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것이 비정규직입니다. 저희 중에는 10년이 넘은 조합원도 해고됐습니다.

쌍용차만이 아닙니다. 현대차, GM대우차 등에서 경제위기 이후에 해고된 1,4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5~10년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입니다.

언제 짤릴 지 몰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사는 이 비정규직 굴레를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관님은 잘못된 고용이 아니라 하셨습니까? 장관님의 아이들, 손주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여기 자동차 공장의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일하라고 하시겠습니까?

높으신 이영희 장관님,

그렇게 비정규직을 걱정하신다면 오늘 당장 이 쌍용차 평택공장에 들어오셔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주십시오. 현대차, GM대우차에서 경제위기를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보십시오. KBS, 철도공사, 병원에서 해고된 비정규직들을 찾아가 보십시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간단합니다. 하루 8시간, 상시적인 일을 하는 일자리는 정규직을 사용하도록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일입니다. 단시간 노동을 하거나 본인이 원하더라도 정규직과 똑같은 월급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법개정을 하시기 위해 눈물을 흘리신다면 저는 장관님을 위해 단식이라도 하겠습니다. 이영희 장관님, 악어의 눈물을 거두어 주십시오. 진정으로 비정규직을 걱정하시는 장관님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쌍용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가 정부에 대한 처절한 분노로 바뀌지 않길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2009년 7월 2일 밤. 70m 굴뚝에서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서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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