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괴동의 유령들
    By 나난
        2009년 07월 02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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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위치한 주소가 칠괴동이다. 39일차 공장점거 파업이 진행되는 칠괴동에는 1박2일간의 용역깡패와 구사대에 맞선 치열한 전투 끝에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치적치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 그날 밤부터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관리자를 납치해서 거꾸로 매달아 신나통에 담궜다”
    “사측이 철수한 것은 본관에 화염병으로 불을 지를 것이라고 해서 그랬다”
    “구사대가 노조에게 탈취한 지게차를 후진시키다가 관리자를 치어서 죽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소문들의 출처들을 추적해 보면, 회사로부터 시작해서 꽤 유명한 언론사 기자가 노조에게 물어오는 내용도 있다. 아무런들 사람을 납치해서 거꾸로 매달아 신나통에 집어넣을 리가 있는가! 이런 얘기를 공신력 있는 언론의 기자가 노조에 물어 오니 기가 막힌다. 하지만 유령들이 떠돌 만큼 칠괴동의 전투는 처절하고 치열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갑작스런 사측의 철수

    1박2일간의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던 27일 밤 10시경, 사측은 갑자기 긴급기자회견을 해서 철수를 결정했다. 극단적으로 격앙된 투쟁대오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도 외부에서 이점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사측의 무력진입의 이유는 첫째, 투쟁대오를 압박하여 흔들겠다는 목적. 둘째, 소위 ‘산 자’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기고 충돌을 통해 분노를 강화시켜 대체 물리력을 만드는 것. 셋째, 극한충돌을 통해 공을 정부에 던지면서 공권력을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철수 했을까? 세 가지 목적을 다 이룬 것인가? 투쟁대오를 흔들기는커녕 더 격앙시킨 것으로 보인다. ‘산 자’들의 분노도 극에 달해 어제까지 한 가족이던 사람을 원수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철수하면서 관리자 내부반발도 있었던 것을 보면 말끔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공을 정부로 넘긴 것은 확실하게 성공한 것일까? 노사 간의 대결에서 노정간의 대결로 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당장 공권력을 투입하든 혹은 고사(枯死)작전을 펴든 국면의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파산 얘기가 솔솔 나오면서 파산하는 경우 책임은 쌍차지부만이 아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에 덮어씌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오판인가? 고도의 전술인가?

    사측을 보면서 헷갈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측의 최초 시나리오는 ‘해고강행 – 노조저항 – 공권력 투입 – 정리 – 운영자금 수혈 – 매각’이라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에서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어려웠다.

    대체 물리력으로 용역과 구사대를 사용했지만 이것도 성공 못했다. 설혹 공권력으로 정리했다고 해서 바로 산업은행이 운영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을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GM과 협상중인데 중국 상하이차가 여전히 대주주자격을 가진 상황에서 쌍차에 자금투입은 GM과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씨알이 먹히지 않는 시나리오였다.

    사측의 시나리오가 더 고도한 것이라면 무엇일까? 이유일 법정관리은 쌍용차를 망하게 해서 현대기아차에게 이익을 주고 설혹 망하지 않는다 해도 구조조정을 극한적으로 밀어 붙여서 이후 현대기아차 노조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임무를 띄고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출신’ 이라는 점 말고 확실한 근거가 없다. 박영태 법정관리인은 상하이차 아래서 재무담당을 한 핵심 경영진이다.

    따라서 상하이차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대주주 자격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해서 팔면 매각대금을 상하이가 챙길 수 있다는 해석과 만약 망해도 이미 쌍차에서 가져간 모델과 기술을 상하이가 맘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하이는 어느 경우에도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영태 관리인은 노조와 정부에게 공을 던져버리면서 공권력으로 쓸어 내든, 혹은 파산으로 가든 자신의 임무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상하이의 대주주 자격 유지와 부실경영책임을 물어 강제소각을 할 것인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에 기초한 예상일뿐이다.

    정부를 중심에 놓은 해석들

    정부를 중심에 놓고 볼 때에 첫째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조기에 진압해서 전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확산시키려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국면이 발생했다. 또한 노조가 도장공장을 점거하는 바람에 자칫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불이라도 나면 민심은 더 흉흉해 진다는 것이다.

    항간에 “대통령의 사주팔자를 보니 물로 흥하고 불로 망할 운명이다”는 소문이 나돈다. 청계천으로 히트치고 대운하공약으로 당선되었는데 촛불에 대이고, 용산철거민 강제진압화재사망에다가 쌍용차에까지 불이 나면 완전히 끝이라는 얘기다.

    둘째는 ‘불개입의 개입’을 통한 ‘고사작전’이라는 것이다. 쌍용차는 자동차산업에서 상대적으로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공권력을 투입해서 낭패를 볼 바에는 그냥 내버려 두다가 안 되면 파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부는 “노조 때문에 쌍차가 망했다”는 여론몰이를 통해 민주노총, 금속노조까지 싸잡아 끝장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아주 고도한 전술로 ‘노조를 사냥개’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의 전제는 총자본의 이익과 개별자본의 이익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차라는 대주주가 있는 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상하이차 좋은 일 시키게 되니 우선 상하이차를 몰아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상하이차를 몰아내려고 하면 중국정부와 경제적, 외교적 마찰이 뻔하기 때문에 노조를 활용해서 몰아내는 것이다. 하긴 정부가 이런 고도의 전략전술을 구상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현 정부의 책략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판정승부인가? KO승부인가?

    수많은 유령들이 칠괴동을 중심으로 떠돌고 있다. 그 중 어떤 것이 유령이 아닌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향후 전망은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 안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언론의 보도의 제목에 빗대어 예상한다면 첫째는 “극적타결, 회생가능성 열려, 이제 정부가 책임져야”라고 하는 노사 간의 판정승부로 끝나는 것이다. 둘째는 “공권력, 결국 쌍용차 노동자들 진압”이라고 하는 노조의 KO패이다.

    셋째는 “쌍용차 노조 장기파업 후유증, 자중지란으로 무너져”라고 하는 역시 내부의 문제로 인해 녹다운(knockdown)되는 경우다. 넷째는 서로 승부를 보지 못하고 “쌍용차 장기대치로 파산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다. 네 가지 경우 중 현실가능성은 각각 다르다. 또한 노조, 정부, 회사 등 각 처지에 따라 선호하는 경우의 수가 다르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노동자들과 노조 또한 분명한 판단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투쟁’과 ‘생존게임’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순수성은 6월 26일 담을 무너뜨리고 침탈해온 회사관리자들을 향해 차마 쇠파이프를 휘두를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단 하루였지만 쌍용차 본관을 회사에 내 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보루인 농성거점을 위협하자 처절하게 저항했다. 이제는 공권력이 그것을 대신할 것인가?

    쌍용차 농성현장의 분위기는 분노, 불안, 생존의 욕망… 등이 겹쳐 있다. 투쟁이 점점 극한에 치닫게 될수록 마치 자동차 속도를 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측도 어설프게 용역과 구사대를 동원하는 행위는 시야를 좁혀 극한대결을 낳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부와 사측은 칠괴동을 ‘야만의 정글’로 만들었다. 한솥밥 먹던 사람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 친 것이야 말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재현한 범죄행위다. ‘ 너 죽고 나살자’는 생존의 법칙만이 작용한다. 공장에 불을 지른들 야만의 법칙이 강요한 ‘함께 죽자’는 당연한 최후의 선택이 아니던가! ‘야만이 아닌 문명’을 원한다면 쌍용차 해결을 위한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다른 대공장의 투쟁이 보여 주듯 이 시점에서 아무리 투쟁이 잘 끝난다고 해도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동료들 내부에 깊이 폐인 적대감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운동은 다수자운동이지만 비록 소수라고 해도 ‘산 자’보다 ‘죽은 자’가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를 위한 노동운동의 길이다.

    “우리도 조합원이다. 왜 우리의 생존을 생각하지 않고 불법점거농성을 하는 사람들과 한패가 되고 있냐”는 회사가 동원한 ‘산 자’들의 외침 또한 생존의 외침이긴 하지만 노동운동이 당장 그들과 ‘죽은 자’들을 동일하게 대할 수 없는 이유다.

    투쟁이 진행 중 인 상황에서 말을 아껴야하는 처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와 우리 노동운동을 향해 덧붙인다. “노동자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지만 실제는 지도하는 사람이 있고, 지도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심부름꾼에 불과한 사람이 있다”

    <2009년 6월 29일 – 쌍용차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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