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법 '개정실패' 아니라 '저지성공'
        2009년 07월 01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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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늘로 시행 2년을 맞는다. 2007년 7월1일 계약을 맺은 기간제 노동자는 오늘부터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 법의 시행을 늦추자는 개정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지만 결국 결렬됐다. 언론 보도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상당수 언론이 비정규직법 개정이 실패했고 그 결과 상당수 비정규직이 잘리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법 개정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같은 사용자 단체들과 이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경제지들이 2년 또는 3년 유예를 요구해 왔을 뿐이다. 한국경제 1면 제목은 "정치 싸움만 있고 비정규직은 없었다"다. 이 신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비정규직을 염려했나. 3면에는 "막판까지 기다렸는데… 눈물의 해고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중앙일보는 "법 못 고쳐 비정규직 일자리 잃는다"고 정치권을 비난했고 한국일보도 "비정규직 피마르건 말건… 밤새 네탓 공방에 협상 제자리", "무능 넘어 구제불능 국회"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정규직 중심 양대 노총 자기희생은 안 하고 대안없는 비판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양대 노총 조합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지 않는다"며 애먼 노동계를 공격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다른 신문들이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이 신문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처우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노노 갈등을 부추긴다.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이 무더기로 잘리게 됐다면서 물타기를 한다. 그럼 노조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계속 연장하는 개정안에 찬성하기라도 바랐단 말인가. 조선일보는 노조에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비난만 쏟아낼 뿐이다.

    중앙일보의 기사는 눈물을 자아낸다. "정규직 전환 바랐는데… 아이들은 어떡하나", "마트 아줌마 ‘법은 몰라… 맘 편히 일하게만 해달라’", "참 무책임한 정치권… 예견된 대량 해고 방치" 등 이 신문은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만든다는 주장을 다양한 화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자리를 달라"는 한 노동자의 하소연을 전하면서 ‘일만 하면 되지 정규직 비정규직이 뭐가 중요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대부분 언론이 비정규직법 개정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잘리는 것보다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논리다. 개정에 실패했으니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호들갑도 쏟아진다. 애초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는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주장들이다. 교묘한 여론조작이고 본질을 빗겨나 비정규직에게 계속해서 희생을 감수할 것을 강요하는 무책임한 보도다.

    정확히 말하면 비정규직법 "개정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개정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다. 상시적인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고 차별은 시정돼야 한다. 정부는 2년 전 정당한 절차를 밟아 통과된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제도적 지원을 다해야 한다. 정말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를 염려한다면 결렬된 개정안에 미련을 둘 게 아니라 오늘이라도 당장 정규직 전환 지원자금 등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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