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가가치세와 박정희 정권의 몰락
        2009년 06월 30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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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을 보니 정부가 부가가치세 인상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부가가치세는 1년에 40조 이상이 걷히니 세율 1%만 인상해도 수조원이 확보될 수 있으니 정부에서는 부자감세를 위한 재정적자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여정부 때도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한 적이 있는데 실행되지 못했는데, 국민의 3할 정도의 지지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이 정부가 과연 부가세 인상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부가가치세는 도입도 어렵거니와 그 인상도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감세는 최소한 부유층이라도 찬성했지만 부가가치세 인상은 대개 자영업자도 반대하고 노동자도 반대하며, 부유층은 별다른 의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즉 쉽게 말하면 부가가치세 인상은 정치적으로 아무도 지지하지 않은 정책인 것이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부가세 인상

    부가가치세는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합리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민주주의가 정지된 유신체제 하에서 조차 이에 대한 불만은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부가가치세 도입 후 이에 대한 동대문 시장 상인들의 항의가 이어졌으며, 부가가치세 시행 전 1년간의 소비자의 물가 상승률은 10.1%였는데, 1년 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4.6%로 상승하였다.

    1978년 10월 야당인 신민당은 부가가치세법안 폐지법률안까지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하였으며, 연이은 12월의 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선거운동의 자유가 매우 제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의 득표율이 공화당을 1.7% 앞서기까지 하였다. 선거 패배의 여파로 부가가치세를 추진했던 주요 관리들은 모두 자리를 옮기고, 정부는 이를 재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가고 과세특례자의 범위를 1,20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1979년에 통과시킨다.

    오죽 했으면 자신이 추진한 정책에 대해서는 실행 이전에는 신중히 검토하지만 실행 이후에는 한 번도 재검토한 적이 없다는 박정희 조차 비밀리에 부가가치세 폐지에 대한 재검토를 시킬 정도였다. 당시 대통령의 지시 하에 경제과학심의위원회에서 논의된 안은 부가가치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구 영업세로 환원시키는 안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 부마항쟁이 발발한 것이고 당시 시민들이 “부가가치세 철폐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박정희조차 폐지 검토

    박정희가 사망한 뒤 동아일보의 의뢰로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국민 2,11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경제성장보다 민주화를 바라는 비율이 72.8%, 앞으로 정치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권과 자유신장이 23.3%로 1위를 차지하였다.

    70년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좋아진 것이 훨씬 많다.”(43.3%), “나빠지기보다는 좋아진 편이다”(43.7%)로 87%가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한다. 나빠진 것으로 세금(54.7%)을, 공해(72.8%) 다음으로 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빠진 것을 세금으로 든 것은 분명히 부가가치세 또한 일조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동아일보 1980.1. 1. 자)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당시 지배층들은 박정희 사망의 일 원인으로 부가가치세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부가가치세 파동이 정치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판단하에 전두환 정부 때도 부가가치세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재검토작업을 했다고 하나 당시 상인들의 반응이 “이미 익숙해졌는데 또 바꾸느냐”라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부가가치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일화는 지배층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도입의 평가

    그렇다면 박정희 정권의 부가가치세 도입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박정희 정부의 결단이 있었기에 한국 정부는 안정적인 세입확보를 할 수 있어 결국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대응할 수 있는 재정여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부가가치세로 걷히는 세수가 40조를 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안정적 세입확보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신치하에서의 조세의 공평성은 여러 주요한 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계속 후퇴하였으며, 당시 정책결정권자들은 공평성 문제를 부차적으로만 인식하였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단순히 세수확보만이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세제와 복잡한 국세청 조직을 둘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예컨대 국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세금을 없애고 부가가치세만 두고 부가가치세 세율을 한 50% 정도로 하면 아마 지금 국세청 인력 10분의 1만 있으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세제는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공평성인데, 부가가치세 위주의 세제가 가지는 위험성을 당시 정부는 간과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고소영과 강부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김대중이 장충단 공원 유세에서 일갈했던 “1~2백만원짜리 독일개에게 쇠고기를 먹이는 사람들”의 문제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정지된 시기였지만 사람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었고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정치적 인권에만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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