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By 내막
        2009년 06월 28일 01: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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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레토릭'(rhetoric : 수사법, 웅변술, 화려한 문체 등)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통용된다. 정치인들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휘두르는 말재주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고대 그리스라틴 문화에서 ‘레토릭’이란 말은 공중에서 말 잘하는 기예를 뜻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토론의 달인’이라는 평가에 대해 "잔재주로 진실을 덮고 토론으로 여러분을 제압하려는 사람으로 비하하려는 뜻"이라고 불쾌감을 표하면서 "삶으로 증명하고 대화했기 때문에 토론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말재주로 이기지 않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인 사람들의 언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와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고, 그 특별한 뭔가가 사람들을 감복시키고 움직이는 힘, 다시 말해 무거운 설득력을 가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예화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을 놓고 쏟아져나온 수십건의 ‘시국선언'(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 교수들이 모여서 만든 문장들이다)에 전혀 움찔하지도 않던 정부여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 하나 하나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준비된 언어’

       
    ▲ 표지

    『세상을 움직인 레토릭 : 정치연설과 메타포의 설득력』(조나단 챠테리스-블랙 저/손장권 역, 해피스토리. 341쪽. 1만7천원)은 설득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여섯 명의 미·영 정치지도자들의 연설에 나타난 특징과 수사적 활용을 분석, 세상을 움직인 리더들의 말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준비된 언어’라고 주장한다.

    분석 대상이 된 6명의 지도자는 처칠, 마틴 루터 킹 목사, 마가렛 대처,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조지 W. 부시 등. 이 책은 그들의 연설을 언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정치리더십의 언어를 밝히고, 나아가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권력이 획득되고 유지되는지, 현대의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고찰한다.

    『세상을 움직인 레토릭…』은 클린턴과 블레어가 그들의 새로운 민주이념을 이미지와 확신의 수사학으로 시민들과 상호 소통했다면, 처칠과 킹 목사, 대처, 부시 등은 정치연설에서 통치이념과 신화를 연계한 메타포(은유법)로 국민과 소통했다고 분석한다.

    즉 ’20세기 영웅’들의 리더십은 그들만의 고유한 수사적 메타포로 진실을 전달할 특유의 정치연설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신성의 정치철학과 이념을 실천하는 그들만의 숭고한 정치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를 제외하면 신화적 메타포를 즐겨 사용한 리더들 모두 20세기의 인물들이다)

    『세상을 움직인 레토릭』에 따르면 조지 부시는 미국인들의 윤리에 기대 ‘도덕적 회계(moral accounting)’의 신화를 지속시켰다.

    재정 메타포는 가격, 비용, 채무 등과 같은 어휘를 비문자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노암 촘스키 등 정치평론가들에 따르면 미국은 베트남, 니카라과, 파나마 등 여타의 순진무구한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죄책감을 가진 집단인데, 미국은 외교정책-특히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관계-에서 거대한 도덕적 빚을 없애 왔다는 것이다.

    특히 9.11은 미국의 적들이 미국에게 도덕적 채무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미국은 ‘도덕적 지도자이다’라는 개념을 통해 윤리적 정당성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해왔다고 분석한다. 즉 도덕적 회계장부에 균형을 이루는 방식의 메타포(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설득의 예술 ‘레토릭’

    레토릭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예술이다. 화자의 레토릭이 성공했을 때에만 청자들은 설득된다. 사람들은 변화하기를 주저하게 마련이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변하게 하기위해선 설득하고자 하는 자는 설득당하는 자들이 이미 믿고 있는 바의 어떤 것에 대한 변화를 유발시켜야한다.

    수신자의 역할은 수동적이지만 설득이 성공하려면 메시지는 수용자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의 필요성, 그리고 그들의 욕구와 상상에 부응해야 한다.

    민주정치의 맥락에서 큰 뜻을 품는 지도자들의 의도는 잠재적인 추종자들을 정책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우선 정치가가 다른 정치인을 선출하는 선거투표에서 먼저 발생하며, 그 뒤에 그 선출된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들을 설득해 그들의 정책에 따르는 법률을 만들게 한다.

    한편 저자 서문의 마지막을 장식한 문장은 "이 저서는 설득력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모색하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대중 설득 능력을 가졌던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동시에 최악의 인권탄압 지도자로 삶을 마감한 아돌프 히틀러의 재현을 경계하는 듯한 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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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조나단 차테리스-블랙

    영국 UWE 언어학과 교수이다. 비유언어, 말뭉치언어학, 인지의미론 등의 영역에서 다수의 책을 내왔으며, 대표작으로 『비판적인 메타포 분석에 대한 말뭉치 접근』이 있다.

    옮긴이 손장권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동대학교 레토릭연구소 위원이다. 그는 「사회과학에서의 수사학 교육」 「페렐만 신수사학의 사회철학과 방법론 고찰」 「인문학의 수사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방법 비교」 등의 논문으로 레토릭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역서로는 『페렐만의 신수사학』(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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