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은 구약만 읽은 폭력 제사장”
        2009년 06월 27일 0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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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진을 처음 본 게 1년쯤 전이었는데, 어느 모로나 독특한 기억이었다. 20대 학생이 책 여러 권 내고 여기저기 칼럼 쓴다 하여 놀라웠고, ‘예술하는’ 사람이면서도 비정규직 파업에 함께 해 몇 십 일이나 굶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때, 내 앞에 마주앉은 김현진이 단식농성장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옷매무새와 화장을 하고 있어 속으로는 대경실색하면서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점잔을 뺐던 것 같다. 1년 만의 김현진은 예의 그대로였으되, 팔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제가 오토바이 욕심이 많아요. 타던 50cc를 누가 훔쳐가서, 125cc짜리를 하나 새로 샀는데, 중국제라서 그런 건지 엔진이 과열돼서 오른쪽 다리를 데었어요. 팔은 그때 넘어지다 다쳤고. 3도 화상이라 이식수술 받아야 한다는데, 어차피 왼쪽 다리에도 상처 있으니까 짝맞춤한 거죠, 뭐.”

       
      ▲사진=이재영

    “제가 오토바이 욕심이 많아요”

    <레디앙> 독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줄까 물으니, 요즘 내놓은 『그래도 언니는 간다』(개마고원)의 ‘작가 소개’를 그대로 읊는다.

    ‘여아 낙태 1위의 도시 대구에서 출생.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여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운 좋게 입학했으나 7년 만에 졸업, 간신히 영화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나 전국 관객 18만 8000명으로 종영된 후 좌절하였다.

    먹고살려고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 등 애써봤으나 여전히 도시빈민 겸 철거민 상태.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통합과정 전문사에 진학했으나,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달마다 ‘신불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휴학 중이며, 일단 살아 있으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

    <한겨레> <시사IN>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네 멋대로 해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등이 있다.’

    “지금은 까페 노동자죠.” 오토바이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그는 홍대 근처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석훈 교수가 얼마 받느냐 물어 보길래, 88만 원 못 받아요, 대답했어요.”

    “한예종 최연소 입학이라든가, 비정규직 파업에 같이 어울린다든가 그런 건 꽤 알려져 있잖아요. 그 밖에 현진씨 사는 얘기 좀 해주세요.”

    “교회가 생명보험 영업 비슷해요. 돈 쓰는 만큼 들어오는 거죠. 처음 아버지가 개척교회 하실 땐 신자가 120명쯤 됐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랑 저만 남았어요. 그러다 다단계 꼬임에 빠지져서 빚만 지고. 그래서 아버지 카드 빚에, 먼저 당겨 쓴 곗돈이 많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라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이 갚아주긴, 내가 갚아주지’ 그랬죠.

    제가 부모님 모셔야 하고, 마이너스 통장도 갚아야죠. 500 벌어 300 기부하며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연봉 세고 일 많이 하는 직장 잠시 다녔어요. 사장한테 폭탄주 따라주는 기술, 삼겹살 뒤집는 스킬 배우면서 빚을 거개 갚았어요. 한 3년 다녔어요.”

    폭탄주 기술, 삼겹살 스킬

    “군대 갔다 온 거네…”

    “다루는 일이 여성비하적 면이 있어서 부대낌도 많았고. 내가 여기 왜 다니나? 모든 중소기업 직원들이 다 느끼는 그런 감정 느꼈죠. 그래서 회사 안에 비디오게임 동호회를 만들고 그 이름을 ‘노조’라 붙이고 그랬어요.”

       
      

    그래도 직장이라는 게 끔찍한 구석만 있는 건 아닐 테고, 김현진은 ‘여성비하적’이고 ‘삼겹살 굽는 기술만 배운’ 그 직장에서 한예종과는 다른 세상을 봤다고 한다.

    “제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이 교수, 기자, PD, 감독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하고만 만나다가 회사 중간간부들 처음 보고는 ‘이 사람들 왜 책도 안 읽고 그럴까’ 거만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치’ 하지 않고 더 합리적인 측면이 있더라고요.

    성추행 문제 같은 거 일어났을 때 예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숨기거나 합리화하려 하는데, 회사 사람들은 그런 문제 잘 알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잘 인정하고 나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려 하고. 그래서, 책 백날 읽어봤자 소용없어, 먹물들은 안돼, 그렇게 깨달았죠. 회사 경험이 사회와 공감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거 같아요.”

    김현진은, 기륭ㆍ시사저널ㆍKTXㆍ이랜드ㆍ강남성모병원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싸움터에서 살다시피 한 경우가 많고, 스스로는 ‘드나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한 이유가 ‘좌파여서는 아니고, 가만 있는 건 못 참는 성격, 성질 안 좋은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질이 안 좋아서…

    “이명박, 이건 아니네, 아니어도 심하게 아니네, 라고 생각 들더라고요. 집에서 굴러다니며 뭘 해야지 고민하다가, 나도 가서 쪽수라도 보태자는 마음에서 비정규직 농성장을 찾았죠. 처음에는 하루 정도만 굶으려 했는데, 비분강개해져서 며칠 더 굶고, 그러다 보니 단식 끊으면 쪽팔릴 거 같아서 계속 굶었어요.

    그런데 굶은 끼니만큼 그 밥값을 투쟁기금으로 내놓는 거거든요. 38일 굶으니 낼 돈이 없더라고요. 단식농성장에서 민주노동당 이영희 최고위원도 만났어요. 너무 더워서 옷도 최소로 입고 있고, 마스카라 하고 있어서인지 말도 안 붙이더라고요. 8~9일쯤 되니 말 붙이면서 ‘동지, 동지는 옷감에 있어 참 검소하십니다’ 그러시더라고요.”

    ‘성질 안 좋은’ 김현진이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어떨까?

    “아버지가 남대문 상인 대상 선교회 할 때 이명박이 와서 간증기도 했었는데, ‘제 어머님이 저를 위해 기도하신 적은 없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어머님이 아들 위해 기도하지 않은 게 문젠 거 같아요.

    “이명박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 할 때 저희 살던 왕십리 때려 부수고, 악연이죠. 대통령까지는 설마 안 되겠지 생각했었어요. 지난 대선 때는 맛있는 거 사주며 식구들 표 매수했어요. 이명박 찍을 거 같으면 아예 등산을 가라고.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 레위(구약성서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자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하나.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약탈을 일삼는다)예요. 그리고 사랑의 신약은 읽지 않고 분노의 구약만 읽었을 거예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발은, 그리고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은 특히나 젊은 또래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새삼 드높이고 있다. 비평가들이야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냉소하지만, 씨알이 안 먹히는 듯하다. 왜 그럴까?

    “그리스 비극 같이 드라마틱 하잖아요. 저는 노무현 찍지 않았고, 비정규직이나 FTA, 김선일 생각하면 밉지만, 그래도 황망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한테는, 쪽 팔린 걸 쪽팔린 줄 아는 마지막 아저씨가 죽은 거예요. 말 통할 거 같은 아저씨를 잃은 거죠.

    이제 돈만 아는 아저씨들만 살아남은 거고요. 풍운아의 시대가 끝나고 후안무치한 시대가 열린 거죠.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애도할 수밖에 없는 건, 노무현에게 애정과 증오가 같이 있었기 때문이죠. 남은 아저씨들한테는 혐오와 짜증뿐이고.”

    “쪽 팔린 걸 쪽팔린 줄 아는 마지막 아저씨의 죽음”

    김현진은 학사와 석사를 내리 한예종에서 하고 있고, 한예종의 학생들 중에서는 제법 알려진 축이다. 그는 한예종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예전에도 이런 사태를 봤어요. 2000년이던가 민주정부 아래에서도, 한예종 취업률이 2%밖에 안 된다고 폐교 이야기가 나왔었죠. 명색이 예술간데, 잘 나가는 예술가 몇 제외하면 노동부나 통계청 기준으로는 다 실업자 아니예요?

       
      

    모짜르트도 하인들과 같이 밥 먹었다는데, 유인촌은 그런 걸 원하는 거 같아요. 자기네들 말 잘 듣는 노리개나 하인 원하는 거죠. 한예종은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손보려는 거고.

    한예종 스스로 고립된 측면도 있어요. 촛불집회 나가자고 하면 학생들이 ‘개인의 정치적 자유’라며 반대하고 그랬어요. 예술가의 의무는 각박한 시대를 위무하는 건데,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연대해달라는 건 이상하죠.

    “예술가로 산다는 건, 큰 각오”

    유인촌이나 뉴라이트가 무식한 건 맞죠. ‘예술의 죽음’이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마음 굳게 먹어야 해요. ‘이명박이 이랬어요, 유인촌 혼내주세요’ 이런 식 넘어서야죠.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예술가가 잉여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우리가 사회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봐야죠. 예술가로 산다는 건 이명박과 싸우는 것보다 더 큰 각오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세상이 흉흉해 데모와 단식이 그의 20대를 장식했지만, 어쨌거나 김현진은 학생이고 오래지 않은 미래에는 ‘지원’이나 ‘동참’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야 하는 운명이이다. 인터뷰 전에 얼핏 전해들은 바로는 영화보다는 다른 곳에서 진로를 찾고 있다고 했다.

    “소설 쓰고 싶어요. 시나리오로 영화 만들려면 남들 돈도 끌고 와야 하는데, 소설은 내 품만 팔면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소설이 안 써지는 거 같아요.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같이 재밌는 소설 써보고 싶다는 꿈만 꾸고 있죠.

    왕년의 386 이야기 써보면 재밌을 거 같아요. 누구는 메가스터디 사장이 되고, 누구는 맨홀 뚜껑 훔쳐다 팔며 아나키스트 자임하고, 그런 이야기…”

    김현진은 KTX 여승원들에게 크리스피크림 도너츠를 사들고 갔었다. 그는 파업 농성장에 찾아드는 드문 학생이고, 언니들이 무얼 바라는지를 아는 진짜 몇 안 되는 투사이며 예술가다. 그가 조금만 더 고생하며 견문을 넓히면, 그리고 그 고생이 지나치지 않아 생각하고 글 쓸 만큼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꽤 좋은 소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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