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 삭감 저지 산별총파업해야
        2009년 06월 29일 07: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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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영국의 어느 공장

    산별노조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본 외국 책의 사진이 기억난다. 80년대 영국의 한 공장라인에 모인 조합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인데 그들 가슴엔 ‘최저임금인상’이라는 산별노조의 요구가 적힌 배지가 하나씩 달려있었다.

    분명 그 조합원들은 대공장의 직원으로서, 거대 산별노조의 조직원로서 최저임금과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회사규정에 어긋나는 부착물을 달고 조립라인에 들어갔다. 왜? 단순히 노조의 지시기 때문에?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아마도 조합원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그 배지를 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일 수도 있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옆집 총각일 수도 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일 수도 있다. 그러한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산별노조라는 큰 집의 존재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산별노조는 80년대 대처 정권의 최저임금 삭감 위협이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고사시키려는 일련의 공격이라는 점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교육과 홍보를 병행했을 것이다. 그게 산별노조다.

    2009년 오사카의 메이데이

    올해 일본 오사카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우경화한 노총인 렝고의 결성 이후 오사카에서는 옛 총평의 노선을 따르는 전노협계와 내셔널센터에는 가입하지 않은 독립민주노조들이 연합해 독자적인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주류의 렝고와 공산당계 전노련과는 별개의 메이데이 집회를 오사카성 공원에서 개최했다. 연합집회라고는 하지만 대공장 노동조합의 개별집회 수준도 못되는 1천여명이 모인 작은 대회였다.

    그러나 일본 독립민주노조의 선봉인 전항만 조합원들이 몸에 두른 선전조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끼에는 ‘일조(북일)수교 실현’,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라’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바람도 안 통하는 비닐조끼를 두르고 전항만의 조합원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추방명령을 받은 동료 조합원의 구명 서명을 받고 있었다.

    전항만은 비정규센터 등의 간행물을 통해 국내에서도 소개됐듯이 소수의 활동가로 이루어진 정파노조가 아니라 부두노동자들의 대중적인 조합이다. 어용과 기업별 조직이 판치는 일본에서 산별과 민주노조 원칙을 지키는 조직이다.

    한국의 잘나가는 산별노조에서, 전투적인 대공장 조직에서 조합원들에게 정치구호가 담긴 선전물을 입히거나 나눠주라고 하면 조합원들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산별 지도부 자체가 그런 발상을 하지 못하거나 꺼린다.

    하지만 우리가 대놓고 한수 아래로 보는 일본 노동운동에는 아직 이런 조직들이 살아있다. 이게 진짜 산별노조다.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벌이는 여성 노동자들.(사진=노동과 세계) 

    지금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한국 자본 

    현재 진행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자본 측은 최저임금 시급의 5.8% 인하를 주장했다. 현행 시급 4,000원을 3,770원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3%를 고려하면 사실상 9%에 가까운 삭감안이다.

    전망치가 3%지만 현재 드러나는 여러 지표만 놓고 봐도 5% 이내의 최저임금인상은 사실상의 동결 삭감이다. 그런데도 자본 측은 아예 마이너스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지만 자본가들의 계산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일단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노동운동이 힘을 집중해 투쟁할 대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합원이 최저임금 이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경우 일반 조합원들을 최저임금 인상투쟁의 동력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외국의 노총, 산별노조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최저임금은 다수 조합원의 이해가 아니라 조직되지 못한, 노동시장의 언저리를 맴도는 노동자들에게 절박한 문제다.

    그럼에도 이들이 조직의 힘을 동원해 최저임금인상이나 방어투쟁을 벌이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계급 일반의 이익의 지키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운동의 사회적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늠하고 계급 내의 연대를 강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출석한 자본 측 대리자들이 대규모 삭감안을 들고 나오는 것은 1차적으로 최저임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후퇴하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사회적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한 결정타로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을 포함해 전체 노동계가 최저임금의 삭감을 막지 못하거나 사실상의 동결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는 한국 노동운동이 사업장을 벗어난 연대를 구축할 이유나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는 꼴이 된다. 그야말로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최저임금 투쟁은 노총, 산별기구 상근 간부들의 동원투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본 측은 그 빈 공간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26일 ‘최저임금 현실화 최저임금 개악 반대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모인 4천여명 조합원.(사진=노동과 세계)

    최저임금삭감에 맞서는 산별 총파업 투쟁을

    지금이라도 산별노조의 전국단위 활동가조직과 대공장 현장조직들은 최저임금 삭감 저지와 현실 수준의 인상을 쟁취하기 위한 산별총파업을 현장에서 선동해야 한다. 산별의 지도부도 조합원 교육과 홍보를 통해 최저임금 투쟁의 현황을 보고하고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말만 많은 좌파조직들도 산별 총파업을 촉구하는 연대체를 꾸리고 직접 사업장과 지도부를 압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되도 않을 일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은 뻔하다. 우리의 산별노조는 자기 문제를 가지고도 총파업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남(?)의 문제인 최저임금을 방어하기 위해 총파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간부나 활동가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조합원들이 이기적이어서 동력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간부나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핑계로 연대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가령 최저임금 확정 최소 한 달 전부터 교육을 배치하고, 선전을 진행하고, 총파업 찬반투표를 붙였는데 그런 과시성 투표에서조차 부결로 결과가 나온다면 조합원들의 이기주의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진행된 적도 없다.

    조합원에게 전달되지 않는 선전물이 민주노총에서 사업장으로 배달됐을 뿐이다. 조합원들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상황을 일반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다.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자 세상이 가능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노동자 세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운동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노동자들을 공격해 노동운동의 무용성을 사회에 과시하려는 자본의 계획을 뻔히 알면서 현실적 조건을 앞세워 총파업을 호소조차 못하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자기부정의 길을 걷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토록 명백한 공세 앞에서 총파업을 꿈도 못 꾸는 산별노조가 1년 뒤 혹은 10년 뒤에 산별총파업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근거 없는 환상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국민 임금인상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선전과 기획을 담당하고 산별노조는 간부 동원을 책임진다는 이 기묘한 분업체계를 무시하고 지금부터라도 현장에서 산별총파업을 제안하고 호소하자. 전국의 정치조직과 현장조직들부터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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