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전 뜨거웠던 좌파열풍은 사라지고
        2009년 06월 26일 07: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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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국에서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멕시코 민중운동과 좌파 상황을 영어로 소개하고 있는 댄 라 보츠(Dan La Botz)가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MR Zine(http://mrzine.monthlyreview.org/)에 최근 발표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한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운동과 2006년 대선의 좌파 후보 열풍으로 주목을 받았던 멕시코 좌파가 요즘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말로 소개한다. <역자 주>

    3년 전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 당시 멕시코 좌파는, 오아하카 주 교사와 민중의 저항으로부터 민주혁명당(PRD) 대통령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지지하는 멕시코시티의 대중 시위에 이르기까지,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6년 오아하카에서는 멕시코 교원노조(SNTE)의 22지역 지부와 ‘오아하카 주민 민중대회’(APPO)의 주도 아래 수만 명의 거대한 시위대가 거리에 나섰다.

       
      ▲ 2006년 오아하카 주의 민중봉기

    부서진 희망, 못 이룬 변화

    한편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민주혁명당은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을 백만 지지자로 가득 메웠다. 동시에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후보들이 모두 썩었다면서 대선을 거부하고 전국적인 반자본주의 캠페인을 벌였다.

    1982년, 1988년, 1994년과 마찬가지로 2006년의 멕시코는 희망과 변화의 욕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희망은 부서졌고 변화는 불발로 끝났다.

    오늘날 멕시코는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과 국민행동당(PAN)의 통치 아래 있다. 하지만 이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 70년간 일당 국가 체제를 통해 멕시코를 통치했던 제도혁명당(PRI)이 37%의 지지를 받으며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PAN은 33%, PRD는 16%다.

       
      ▲ 소칼로 광장에서 연설하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비록 PRD를 탈당하지는 않았지만 이 당 후보의 선거운동이 아니라 두 개의 소규모 좌파정당 ‘연합’(Convergencia)과 노동자당(PT)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좌파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500명의 하원의원과 6명의 주지사를 뽑는 선거가 7월 5일에 실시될 예정이다.

    한편 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무정형의 반정부 여론은 저항의 의미로 투표용지를 훼손하거나 기권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투표율이 30% 정도에 불과하리라는 여론조사 결과로 볼 때 이 캠페인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승자가 될 것 같다.

    이 수치는 2003년의 중간 선거 투표율 41.7%보다 훨씬 적은 것이며 또한 2006년 선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에서 20세 사이의 유권자들은 아예 유권자 명부 등록도 하지 않고 있다.

    멕시코판 대운하 사업? – 마약 전쟁

       
      ▲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캐리커처

    2006년의 그 멕시코 좌파의 조직과 지도력, 에너지와 열정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당연히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좌파가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이다. 많은 부정이 발생하고 다수가 오브라도르가 승리를 도둑질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문제의 선거에서 펠리페 칼데론이 대통령이 되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합법적 멕시코 정부의 합법적 대통령’을 자임하며 이에 맞섰다. 그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3년 동안 멕시코 전국 순회를 계속하며 칼데론을 ‘강탈자’라 공격하고 자신의 조직을 건설했다.

    대통령이자 군 통수권자인 칼데론은 전쟁을 선포했다. 항상 그렇듯이 이것은 잠시라도 인기를 높여보려는 꼼수였다.

    칼데론은 마약 카르텔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4만 명의 군대와 5천 명의 연방 경찰을 작전에 투입했다. 그 이후 카르텔들 사이의 전투, 그리고 카르텔들과 정부 사이의 전투에서 6천 명의 멕시코인들이 사살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분명 카르텔 조직원들이었지만, 일부는 병사와 경찰 그리고 죄 없는 구경꾼들이었다. 게다가 군사 작전은 살인, 고문 그리고 강간 같은 인권 침해를 야기했다.

    하지만 마약 전쟁 덕분에 칼데론은 인기가 치솟았다. <레포르마(Reforma)> 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69%에 이른다. 이에 반해 실망층은 25%에 불과하다. (반면 다른 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으며 여당인 국민행동당 안에서도 그에게 실망한 많은 당원들이 지지를 철회했다고 한다.)

    오브라도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곤두박질치는 민주혁명당

    칼데론과 우파가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 나라의 중도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은 마땅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지도력 아래 의회 안에서 좀 더 강력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투쟁의 전열을 재정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PRD는 당내 좌우 정파들 간의 당내 투쟁으로 몇 달을 허비했다. 이 당내 투쟁 과정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당내 좌파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당내 우파가 이겼고, 이때부터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당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내각이자 전국과 지역을 아우르는 조직인 이른바 ‘합법적 정부’를 이끌면서 PRD의 동맹 세력인 다른 좌파 정당들, 즉 ‘연합’과 노동자당의 후보들을 지원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당내 정파 투쟁도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사실상의 탈당(지난 대선 후보의 탈당)도 혼란과 사기 저하를 낳을 것임에 틀림없다.

    누가 어떤 각도에서 보든 희망이 없는 상황임에 분명하다. 멕시코 의회는 하원이든 상원이든 국민행동당, 제도혁명당 그리고 민주혁명당이 정확히 삼분하고 있다. 단지 국민행동당이 다른 두 당보다 약간 더 많은 하원 및 상원 의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제도혁명당과 국민행동당이 2/3 이상의 의석을 통해 대부분의 주요 정치 쟁점들에 대해 담합한다는 점이다. 민주혁명당이 보수정당들을 막으려면 현 의석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

    민주혁명당의 실패는 부패 사건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당내 부정 선거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이로 인해 민주혁명당은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서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민주혁명당은 애초에 창당할 때 과거의 부패 및 부정선거와의 단절을 약속했었다. 민주적이고 투명하며 깨끗한 새 정당을 자임했었다. 당의 상징인 아스텍 태양과 함께 새 날이 밝아왔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이들의 눈에 민주혁명당은 이 당의 모태가 된 낡은 제도혁명당의 전철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민주혁명당은 1980년대 말 제도혁명당 내 개혁파가 탈당해서 멕시코 공산당 및 일부 트로츠키파 등과 연합해 만든 정당이다-역자). 오직 권력에 눈 먼 정당 말이다.

    위기에 위기가 다시 겹친 멕시코 사회

    물론 다수 민중은 그렇게 정치적이지 않다. 정당과 후보들에만 끌려 다니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삶을 살고 하루하루를 이어가면서 세상이 좀 나아질까 싶어 이 당 저 당, 이 후보 저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때로 이들은 신선한 대안에 열광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전형적인 경우는 투표를 해도 별 볼 일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 체념의 의미로 투표하는 것이다. 때로 지금처럼 나라 전체가 해결할 길 없는 문제들에 직면한 것처럼 보일 때에는 도대체 왜 투표라는 걸 해야 하는지 당황해하기도 한다.

    다수 민중은 멕시코의 수많은 위기 양상에 패배감을 느끼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물론 칼데론 당선의 합법성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위기다. 총 유권자의 1/3에서 1/2에 달하는 사람들(로페스 오브라도르에게 투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칼데론이 진짜 당선자라고 믿지 않는다.

    둘째는 마약 전쟁과 그것이 수반한 군사화로부터 비롯된 위기다. 다수의 멕시코인들이 칼데론과 마약 전쟁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멕시코가 콜롬비아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다.

       
      ▲ 2006년 당시의 오아하카

    게다가 멕시코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세계 경제 위기가 있다. 멕시코의 공식 실업률은 현재 5.25%다. 이 나라의 기준으로 봐도 극히 높은 수치다. 더구나 공식 실업률은 이 나라의 실제 실업자와 불안정 고용 숫자는 거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 10%에 달하는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 다음은 멕시코의 공장형 축산업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돼지 독감(현재는 H1N1이라 새로 명명된) 차례였다. 이와 함께 일련의 공황 상태가 나타났다. 멕시코에서는 7천 명이 이 독감 환자로 판명됐고 지금까지 100명 이상이 죽었다. 이 중 다수는 어린이다.

    그 다음에는 멕시코시티의 에르모시요에 위치한 ABC 보육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45명의 미취학 아동이 사망했다.

    낙관주의가 사라진 멕시코

    지금 멕시코에는 낙관주의의 근거가 별로 없다. 절망에 빠진 이 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2006년 오아하카 시민 봉기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불꽃놀이 운반 차량이 폭발해서 한 명이 다치고 8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언론은 이 불꽃놀이 장비들이 경찰을 겨냥한 로켓 무기로 사용하려던 것이라는 분석을 달았다. 또한 이 챠량이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휘발유를 운반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교원노조와 APPO는 2006년에 20명을 사살한 민병대 혹은 경찰의 공격 때문에 폭발이 일어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폭발의 원인이 무엇이든 2006년의 운동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망자와 중상자들, 화염과 잔해뿐이다. 지금은 멕시코 좌파가 자신을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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