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주의와 전쟁이 시작됐다
        2009년 06월 25일 11:0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서울도시가스지부(지부장 김지희)가 6월 4일과 5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공공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전체 투표율 96.9%에 산별탈퇴 찬성율이 82.3%에 달한다. 김지희 집행부가 내세운 공공노조 탈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공공노조 사업장은 다양한 업종과 규모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공공기관 위주로 조직되어 있어 협상대상이 지자체 및 정부기관이여서 대정부투쟁만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부 자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우며 지부 조합원의 권익보호는 더욱 어렵다. 또한 경직된 조직운영으로 일방적 통제와 지침만을 강요해 갈등만 증폭 시키고 있다.

    둘째 임단협 교섭권과 체결권은 현장이 원하면 지부에 준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일방적 검열을 하고 있다. 교섭·체결권을 모두 빼앗긴 채 투쟁지원만을 강요해서 서울도시가스 노동조합 자주권 회복이 필요하다.

    셋째 당초 조합비는 통상임금 1%를 약속하였으나 현장의견을 충분이 수렴하지 않은 채 연봉기준으로 바꿔 조합비 산정 기준을 일방적으로 인상함에 따라 신뢰가 붕괴되었다.

    사업장 내 실리주의 매몰

    김지희 집행부가 산별탈퇴로 내세운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조합비는 많은데 해주는 게 없다”, “투쟁지원만을 강요하고 있다” “교섭권과 체결권을 모두 빼앗겼다”는 식이다. 철저히 사업장 내 테두리에서 실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김지희 집행부가 내세운 이유들이 사실과도 다르다.

       
      ▲ 지난 해 11월 열림 ‘가스공공성 사수 공공노조 결의대회’ 모습 (사진=공공노조)

    김지희 집행부는 2008년과 2009년 두해에 걸쳐 노조로부터 교섭권과 체결권 위임을 받아 지부 독자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권과 체결권을 모두 빼앗겼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또 투쟁지원만을 강요했다고 하지만 사실 김지희 집행부가 투쟁사업장 집회에 나온 것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서울도시가스의 공공노조 탈퇴는 소속 조합원으로써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 더 큰 문제는 민주노조의 과제인 산별노조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공공노조와 통합 산별노조 건설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공공운수연맹 그리고 민주노총 가맹조직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끼쳐 결국 민주노조 운동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어용과 민주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 필요

    정부와 자본이 내년 복수노조를 준비하고자 보수 우익 계열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제3노총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도시가스지부의 공공노조 탈퇴는 최근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제3노총을 만들겠다는 흐름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으면서도 철저히 사업장 내 실리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노동운동이 기존 ‘어용과 민주’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이를 공유해야할 필요가 서울도시가스지부 사례를 보더라도 더욱 더 확인되고 있다.

    또 현장 활동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서울도시가스의 공공노조 탈퇴에서 볼 수 있듯이 집행부가 어떤 생각이냐에 따라 산별가입과 탈퇴가 좌지우지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서울도시가스 조합원 중 사측과 집행부의 공공노조 탈퇴 작업에도 불구하고 18%의 조합원은 공공노조에 있어야 한다고 선택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새롭게 현장을 세워야 한다.

    김지희 집행부는 2007년 말 공공노조 가입을 이끈 이전 집행부와 경선을 거친 끝에 당선됐다. 이전 집행부에서 추진된 공공노조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 김지희 집행부의 입장이었다. 조합원에 대한 산별교육 강화와 분임토의 활성화를 통한 단계적 산별추진을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 이후 김지희 지부장을 비롯한 8대 집행부는 공공노조의 각종 지침과 방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산별노조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김지희 집행부는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과 부정적인 입장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간담회 및 교육,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나, 실상은 산별무용론과 무관심을 부추기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실리주의는 우리 내 잠복해 있는 문제

    서울도시가스노조는 99년 12월 한국노총을 탈퇴해 2000년 초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서울도시가스노조는 민주노총 가입 바로 그해 6월에 파업투쟁을 벌였다.

    서울에너지(현 SH집단에너지사업단지부)와 공동파업을 벌여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0년 6월 파업투쟁의 결과로 민주노조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됐으며, 노사관계 안정화 및 사업장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딱 10년을 지나면서 공공노조를 탈퇴했다. 기업별노조로 회귀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공공노조 출범과 함께 우리 안에 내재해 있었다. 우리가 산별노조를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연대적 계급의식 고취보다는 ‘더 크고 강한 노조를 통한 우리의 문제해결’이라는 실리주의 논리 위주로 조합원을 설득해온 결과다.

    우리 안에 잠복해 있는 기업별 노조 회귀 경향을 막기 위해 무엇부터 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것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010년 복수노조 시대가 오면 실리주의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실리주의에 맞선 공공노조의 새로운 이념과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갖고 왜 연맹에 있어야 하는지, 공공노조로 있어야 하는지 현장을 설득해야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