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결코 일회용이 아니다”
    By 나난
        2009년 06월 24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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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5월 14일 차트영상업무로 첫 출근해, 2년간 총 6회의 근로계약서를 썼다. 6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게 보통이지만, 2008년 5월부터 차트영상작업 외주화 얘기가 나오면서 6개월 단위 계약은 외주업체가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3개월, 2개월, 1개월씩 초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해고됐다.”

       
      ▲ 서울대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해고자 김성미 씨.

    김성미 씨는 지난 5월 15일 2년간 근무한 서울대 보라매병원 의무기록실에서 일방적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는 “공장의 기계들처럼 화장실도 참아가며 일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병원장은 노조와의 교섭에서 “열심히 일한 직원을 길거리로 내쫓지 않겠다”고 했지만 김성미 씨는 다음날로 바로 해고됐다.

    "… 그리고 해고됐다"

    오는 7월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정부는 ‘비정규직 대량해고설’을 주장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시행 3년 유예를 당론으로 정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섭단체 여야 3당과 양대노총이 참석하는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는 정부 여당의 기간제 및 파견제 사용기간제한 유예 방침을 관철해 가는 자리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 여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유예안에 따라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해고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노동부가 100인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정규직 전환계획이 있다’는 기업은 응답자의 64.9%였던 반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244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은 29.9%에 그쳤다.

    이에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24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의 비정규법의 기간제한 3년 유예 당론 결정과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서 사용기한 제한을 미루는 것에 대해 “비정규법의 유예도 유지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비정규법 유예-유지는 해결책 아냐

    이들은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대란을 걱정한다면 비정규직을 교체 사용하거나 외주화하는 기업을 제재하고,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며 "노동기본권을 차별 없이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지회 한윤수 회계감사.

    32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지회 한윤수 회계감사는 증언을 통해 “2000년 1,700명이었던 비정규직이 2006년 전환배치와 2008년 희망퇴직을 거치며 현재 3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며 “사측의 2,646명 정리해고에도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소모품이기에 정리해고 통보서 한 장으로 해고되기에 정리해고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사측은 현재 분사화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화 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 8명은 지난 5월 15일과 17일 강제휴업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5월말 12개의 사내하청업체 중 2개의 업체가 폐업하며 노동자 전원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정리 대상도 아닌 비정규직

    그나마 남아있던 10개의 업체 소속 노동자들 역시 반복되는 휴업으로 임금은 반 토막 났고, 게다가 반 토막 난 임금조차 체불된 상태다.

    지난해 7월 142명의 일반조교가 계약해지 당한 명지대 일반조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대학노조 명지대지부 서수경 지부장은 “오늘로써 128일간 투쟁해 왔다”며 “눈물부터 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는 입사 당시부터 ‘사학연금에 가입되어 있으니 일반조교는 교원으로, 비정규직법안과 관련이 없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법 때문에 자를 수밖에 없다"며 142명을 해고했고, 지난 4월 22일 경기 지방노동위원회는 명지대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노조의 5차례에 걸친 교섭 시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협의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공공기관 종사자 가운데 13%가 비정규직인 가운데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기관에 20곳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창의경영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97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모두 3만5,921명이었다. 이는 정규직 현원(24만7천561명)을 합한 전체 종사자(28만3천482명)의 12.7%에 해당한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기관도 20곳에 육박했으며 이런 비정규직 중심 기관 중에는 연구기관이 많았다. 한국과학기술원의 경우 비정규직이 1천107명인 반면 정규직 현원이 924명이었고 생명공학연구원도 비정규직이 494명, 정규직이 292명이었다.

    대량해고설이 대량해고 불러

    공공노조 서울본부는 24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대량해고설에 발맞춰 기업들은 비정규법이 개악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7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비정규직 해고를 남발하고 있으며, 모범사용자로서 솔선수범을 보여야할 공공기관에서도 대량해고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규탄했다.

    성신여고와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전후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기 않고 해고했다가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직시킨 후 지난해와 올해 또 다시 해고 했다. 이미 2년 이상 근무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국민체육진흥공단 발매원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이 인사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았다’며 무더기 해고했다.

       
      ▲ 공공노조 서울본부가 24일 오전 ‘비정규직법 개악반대, 비정규 해고 결정 남발 서울지노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이은영 기자)

    여기에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해고설이 유포되면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비정규직노동자의 해고에 대해 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부당해고가 아닌 정당한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라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국립오페라합창단․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무더기 해고됐다. 공공노조 서울본부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앞두고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아 오히려 비정규직 해고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며 “노동위원회가 올해 들어 비정규노동자 해고는 계약만료일뿐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공노조 서울본부는 △사용기간 1년 제한 △차별적 처우 금지 △노동조합 차별시정신청권 인정 △파견법 철폐 및 간접고용 규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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