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하니까 사용된다고? 천만에!
        2009년 06월 23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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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발암물질은 400종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56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찾아내지 않으면 막을 수도 없다. 정부는 소극적이다. 전문가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발암물질 감시 운동의 중요성과 대책, 외국 사례, 현장과 결합된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전문가의 글을 7차례 연재한다. 이 글은 주간 <변혁산별>에도 동시에 실린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1. 들어가며 : 한국에서 발암물질감시운동이 시작되다
    2. 유럽 신화학물질관리제도 (REACH) 도입배경과 경과
    3. 유럽 시민사회단체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4. 유럽 노동조합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적극적 대응
    5. 다시 한국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6. 한국의 발암물질목록은 시민과 노동자의 공동작품이 되어야한다
    7. 마치며 : 발암물질감시운동, 현장에서부터 함께하자

    우리 주변에는 아주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물질 용기에는 독성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화장품이나 음료수에도 성분표시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시중에 유통되는 물질들은 독성검사도 다 거쳤고, 나름대로 안전하니까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착각이다.

    안전하니까 사용된다고? 천만에

    화학물질은 몇 종류나 사용되고 있을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아주 소량 생산되어 유통되는 것까지 한다면 수십만 종이 넘을 것으로만 예상된다. 1990년에 유럽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1년부터 1981년까지 10년간 유럽시장에 유통된 물질은 10만 종에 달하는데, 이 중에서 7만 종은 1톤 이하 생산되는 물질이고, 1톤에서 10톤까지 생산되는 물질이 약 2만 종, 그리고 연간 10톤 이상 생산되는 물질은 약 1만 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10만 종의 화학물질 중에서 독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매우 소수일 뿐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독성을 분류할 수 있었던 물질은 10만 개 중에서 1만 개도 채 안 된다.

    왜 그럴까? 화학물질의 생산은 오래되었으되,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한 관리가 시작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농약을 만들어 식량생산성을 높인 것은 기적이었다. 석유로부터 플라스틱을 만들고 옷과 신발을 만들게 되었을 때, 화학물질은 신의 축복일 뿐이었다. 그 대가로 심각한 환경파괴와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화학물질 10만종 독성 관리 포기한 국가

    유럽에서는 1967년에서야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가 시작되었다. 당시 만들어진 「위험물질의 분류, 포장 및 라벨링에 대한 지침(Directive 67/548/EEC)」은 40년이 지나는 동안 9번의 개정을 거쳤으며, 지금까지도 화학물질 관리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정부는 국가적인 화학물질관리체계를 만들면서 기존 화학물질의 독성을 파악하는 것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물질을 일일이 검사하고 독성을 파악하여 분류하고, 그 경고표지를 붙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기존물질과 신규물질을 나누어 접근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신규물질만이라도 독성검사를 제대로 하자는 취지였지만, 대신에 약 10만 종의 기존 물질은 결국 포기하자는 얘기였다.

    유럽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유럽정부의 느슨한 화학물질 관리체계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였다. 이 때문에 유럽정부는 1993년 법을 개정하여, 기존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대량유통물질이나 우려물질은 독성검사를 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1967년 법 시행이후 화학물질 독성이 분류된 물질이 7천여 종 밖에 안 되었고, 법 개정 이후 기존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대량유통되거나 우려 물질로 분류되는 것 중에서 독성검사를 실시한 것이 80여 종 밖에 안됐다. 실적이 너무 저조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을 파악하기로 한 유럽정부

    게다가 유럽의 화학물질 제조회사들은 상대적으로 기준이 약한 미국 등에서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함으 로써 유럽의 규제를 피해나가는 편법도 저지르고 있었다. 결국, 유럽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유럽정부가 노선을 전환한 것은 1998년의 일이며, 그 결과 2001년에 “미래의 화학물질 관리전략백서"가 발표되기에 이른다. 이 백서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담겨있다. 기존화학물질과 신규화학물질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을 파악하기로 한 것은 화학물질관리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성검사는 제조회사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였고, 유해한 물질은 대체하는 것이 원칙임을 천명하였다. 유럽의 화학물질 제조회사들의 거센 반발은 예상된 바였다. 하지만, 유럽정부는 2003년에 신화학물질관리체계(REACH)를 제안하였고, 2006년 유럽의회에서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고, 2007년에 드디어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발암물질, 생식독성물질 관리 본격화

    기존물질이건 신규물질이건 일정량 이상 제조될 경우 독성검사를 의무화하였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가능한 한 고위험물질의 시장유통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새로운 제도 하에서 2009년 말까지 고위험물질 리스트가 작성될 예정이다.

    발암물질이나 생식독성물질, 변이원성물질이 대상 물질이다. 만약 어떤 물질이 고위험물질 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정부의 허가 없이는 시장에 유통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강력한 규제가 실제로 시행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에는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09년 6월 현재 15개 물질만이 리스트 후보 물질로 올랐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최소 수백 종의 물질이 즉각적으로 고위험물질 리스트에 올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새로운 화학물질 규제의 실패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럽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새로운 규제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유럽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아직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관리체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진보세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분명하다. 다음 글에서는 유럽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이 어떤 식으로 적극적 활동에 나서고 있는지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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