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붕괴, 지금은 저항해야 할 때
    시국선언 행동 없으면 유행에 불과
    By mywank
        2009년 06월 19일 07: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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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현장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버스에서 뿜어내는 엔진 열기는 6월의 무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지난 15일 밤부터 이곳에서 무기한 단식 중인 신부들의 얼굴에는 땀이 흘렀다. 

    용산 그리고 신부들의 단식 

    ‘이명박 퇴진 단식 4일째.’ 18일 오후 찾아간 농성천막에 걸린 명패는 이번 단식의 지향을 알게 해줬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는 전종훈 나승구 송영호 김일회 강정근 김인국 신부 등 6명이다. 단식중인 신부들은 농성장에서 기도를 하거나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5일 밤부터 천주교 신부들이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뭐 하러 여기에 왔어~.”

    인터뷰를 부탁하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호통을 치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오체투지를 해서 힘들어 죽겠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요즘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는 시국선언 이야기부터 꺼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국선언

    “예전에 오체투지를 하면서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기도 했는데, 말로만 하고 싶지 않아 다시 왔어. 시국선언 그런 거 많이 하잖아. 그런데 내 생각에는 ‘유행’처럼 하는 것 같아.(한숨) 전두환 정권 때에는 시국선언이 행동의 촉매제가 되었지만, 요즘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

    신부들의 단식 돌입선언은 지난 15일 저녁 참사 현장에서 열린 시국미사 중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전국사제비상시국회의’에서도 이 내용은 논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전 신부의 답은 명쾌했다.

       
      ▲전종훈 신부(왼쪽)과 송영호 신부가 농성 천막안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 때 시국회의에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뿐만 아니라, 다른 신부님들도 많이 왔잖아. 그 자리에 ‘단식하자’고 선언하면 얼마나 부담 가지시겠어. 또 미리 용산에서 단식한다고 하면 경찰이 천막을 치지 못하게 막을 게 뻔하고…. 그래서 말하고 싶어도 ‘꾹’ 참고 있었지. 결국 미사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단식을 하겠다’고 말을 했어.”

    “대통령이 국민의 줄기찬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헌법준수 의무를 저버릴 바에야 차라리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옳다는 것이 우리 사제들의 입장이다. 모든 재앙과 파국에 사제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통감하며 이 땅에 화해와 일치의 강물이 넘치도록 신명을 다 바칠 것을 서원한다.” – ‘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시국선언문’ 중

    "사제들 책임도 커"

    천주교 신부들의 시국선언은 고통 받는 이들이 울부짖는 ‘낮은 곳’에서, 행동으로 실천되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문 채, 독서를 하고 있던 나승구 신부는 단식의 들어간 이유를 “절박함”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제’ 당시 추모기도를 바치며 시민들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나승구 신부(오른쪽)가 농성장을 찾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지금은 누군가라도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입니다. 민주화,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희망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있죠. 돈의 의한 독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 신부들이 굶고 있는 것은 미래의 세대들이 굶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절박함과 답답함이 신부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 신부는 “국무총리나 장관, 일부 정책을 바꾼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국정쇄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용산참사 현장에 농성장을 마련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MB정부 모든 ‘악’ 용산에 있어"

    “여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모든 ‘악’이 여기에 있죠.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1%의 특권층과 ‘토건족’의 배를 채우겠다는 생각,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 침해, 이를 감추기 위한 거짓과 위선…. 이 모든 것이 담긴 공간입니다. 그래서 국정기조 전환,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이곳에서 단식을 시작했죠.”

    잠시 후 이강서 신부(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가 농성장을 찾았다. 이 신부는 지난 4월 초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정현 신부와 함께 ‘용산 생명평화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유족들은 그를 ‘남일당 본당 주임신부’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신부는 미사 관계로 단식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국정기조 바꿀 생각이 없으면, 깨끗이 퇴진해야 한다. 이보다 높은 수위의 (신부들) 투쟁은 없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신부들의 ‘진정성’에 끝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때는 ‘나는 괴물이요 귀가 없는 동물이다’이라고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식 중인 신부들을 ‘범법자’처럼 바라보는 경찰의 시선, 농성천막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은 이들의 마음을 지치게 한다”며 “하지만 농성장을 찾는 분들이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 신부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고 전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농성장

    신부들은 다시 눈을 감고 묵상에 들어갔다. 농성장 한편에 놓여진 시국선언문에는 이들이 고행을 택한 ‘진짜’ 이유를 알게 해주는 성경구절이 적혀있었다.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 미가 6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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