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엠 그레고리 백”
        2009년 06월 19일 03:14 오후

    Print Friendly

       
      ▲ 영화 <깊고 푸른 밤> 포스터

    1985년에 제작된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은 최인호 작가의 같은 제목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미국을 ‘한국이 아닌 어떤 곳’으로서의 배경으로 삼아 ‘마리화나’라는 환각의 도구에 기대어 가수와 소설가라는 문화예술계의 유신치하의 한국 사회에 대한 패배감과 절망감을 그린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민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에게 있어서 ‘아메리칸 드림’의 불가능성이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를 그린다.

    미국에 밀입국한 백호빈(안성기)은 영주권을 취득해서 한국에 두고 온 애인을 불러들이는 것이 꿈이다. 밀입국자라는 신분에서 드러나듯 호빈은 미국으로부터 합법적인 이민의 자격을 승인받을 기반이 없다. 즉, 그가 떠나온 한국에서도 내세울만한 자격이나 기반이 없는 하층계급 출신이다.

    호빈은 오로지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흑인과 결혼해 미국에 왔다가 이혼한 교포 여인 제인(장미희)과 위장 결혼한다. 국제결혼으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적법한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해나갈 사회적 경제적 일원이 되지 못한 제인은 호빈과 같은 불법체류자와 위장 결혼을 해서 영주권을 받도록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결혼 진위여부를 심사하는 이민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거라는 형태로 공동생활을 하지만 그 공동생활은 호빈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해체될 계약관계다.

    밀입국…자격 없는 하층민

    호빈이 첫 계약 상대도 아니고, 서로의 계약 목적이 전혀 다른 데서 시작한 관계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 그러니까 호빈이 영주권을 받고 제인은 돈을 받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목적과 공존할 수 없는 욕망의 좌절을 경험한다.

    미국인과 이혼한 여성 이민자로서의 고단한 삶을 벗어나 안정적인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새로이 품게 된 제인은 호빈이 자신의 육체를 어루만질 수는 있으나 결코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 진입한 나라 아메리카에서 성공적인 시민이 되면 한국에서의 결핍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호빈은 영주권을 얻자 한국에 두고 온 애인을 데려오고자 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애인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듣는다.

    제인과 호빈은 각자 목적을 달성했지만,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둘의 관계를 이어온 고리가 끊어져야 한다는 계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관계로 출발했다.

    제인은 ‘남성’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호빈은 ‘외국인’, 그것도 흑인과 결혼했었던 여성에 대한 경멸 때문에. 그러나 계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동거과정에서 공유하게 된 몇몇 단면들 때문에 서로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기대가 생겨난다.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저택에서 날마다 파티를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저택에서 날마다 파티를 즐기며 사는 풍요로운 삶이 보장될 줄 알고 어린 나이에 주한미군 흑인장교와 결혼해서 미국에 온 제인이 겪은 것은 남편의 폭력, 다섯 번의 계약결혼, 바텐더로서의 생활이다. 첫 결혼에서 낳은 혼열아 딸 로라와도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 내에서도 ‘이산’되어 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두루 겪은 제인이 살아가는 방편은 여성이 별다른 기술이나 자격 없이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자신의 ‘성’을 밑천 삼는 일이다.

    선원 출신의 불법 밀입국자 호빈이 한국에 있는 애인을 데려오기 위해 미국에서 하는 일은 청소, 세차, 접시닦이 같은 막노동이다. 이 역시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별다른 기술이나 자격 없이 몸 하나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호빈이 미국을 열망하는 것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 이미 저질러놓은 범법행위 때문이다. 호빈에게 넓은 신세계 미국은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 정도는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는 공간이다.

       
      ▲ 영화의 한 장면

    그래서 호빈은 자신이 정말 제대로 절차를 거친 적법한 결혼으로 미국에 왔는지를 조사하러 나온 이민국 직원 앞에서 예전에는 한국인이었으나 지금은 미국인이 된 여자 제인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미국으로 왔다고 하는 대신 ‘나는 미국을 사랑합니다.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며 자유와 기회의 나라입니다’라며 미국 남성을 상징하는 기호로서의 이름 ‘그레고리 백’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미국인이 되고자하는 자신의 열망이 부족한 영어로 제대로 소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목청껏 부른다.

    ‘나는 미국을 사랑합니다’

    이토록 간절히 미국에 편입되고자 하는 호빈에게 제인은 장애물이다. 제인은 둘 사이에 생긴 아이에게 ‘제인’이나 ‘그레고리’나 ‘로라’가 아닌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고자 하며, 한국인 유모를 통해 한국인으로 키우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이런 제인의 바람은 완전한 미국 시민이 되기를 열망하는 호빈의 입장에서 볼 때 단지 고국에 있는 애인을 데려오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의 실패, 완전한 미국화의 불가능성으로 이끌기 때문에 장애물인 것이다.

    계약결혼과 파경을 반복하면서 남자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제인은 계약결혼 첫날 육체적으로 접근해 섹스를 시도하는 호빈에게 권총을 겨누며, 영주권을 갖게 되기까지는 자신이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그러던 제인이 호빈에게 돈 이외의 새로운 욕망, 결혼을 통한 안정을 바라게 되는 것은 ‘지아비’로서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악랄하고 비열한 행위를 일삼던 호빈이 첫 남편 마이클 앞에서 자신이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제인을 위해 마이클과 마주친 자리에서 애정 넘치는 연인인양 다정한 태도를 연기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혼혈아 딸에게 따뜻한 보호자의 모습을 보일 때, 제인은 불량스럽기 그지없는 호빈이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뻔뻔하고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으며 다른 여자를 육체적으로 욕망할지언정, 법적 아내도 아닌 사실혼 관계로 지냈던 고국의 여인을 향해 아무런 의혹이나 사심 없이 보내는 희망을 담은 호빈의 초대는 제인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 영화의 한 장면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실패한 것임을 알고 있는 제인을 끌어당기는 호빈의 매력은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 미국 시민으로서의 성공적 정착이 아니라 한국적 가치로의 귀환에 대한 기대다. 제인에게 그것은 ‘가족’이다. 그러나 미국 시민이 되기를 갈구하는 호빈에게 제인의 과거는 포용할 수 없는 얼룩이다.

    아메리칸 드림, 지극히 한국적인 것

    제인의 흑인 전남편, 합법적 결혼을 통해 낳은 혼혈 딸,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었던 여러 차례의 위장결혼. 이 모든 것은 불법 밀입국자 호빈의 입장에서는 미국 사회로의 진입에 필요한 고리를 잇는 시민권자로서의 제인이 가진 배경이다.

    그러나 호빈에게는 이것이 매끈한 정당성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기준에서 행실 바르지 못한, 그러니까 이용가치가 있는 동안 좀 즐기다 효용이 다하는 순간 버려도 좋을 흠 많은 여자라는 증거다.

    이것은 사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 대한 호빈의 입장이다. 미국에서 호빈이 바라는 것은 어떤 불법과 부도덕을 경유해서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 백호빈이 아니라 미국 시민 ‘그레고리 백’으로 승인되어야만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을 불러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영주권을 인정받아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기쁨에 겨운 순간, 고국의 아내는 결별을 통보한다. 미국인이 되고자 하는 호빈의 욕망은 한국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맞닿아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한국으로부터의 소외와 배제는 여전하다.

    이런 한국의 냉담함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다.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미국의 책임을 묻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와 같은 미국에 대한 탈신화화, 객관화에 대한 움직임이 일면서 유신정권의 경제성장 정책을 통해 ‘선진국이 되어 미국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집단적 욕망’에 대한 각성과 반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호빈은 위장결혼이라는 부정한 방법으로 정당하게 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이라는 제도적 승인을 얻어낸다. 미국 사회의 합법적 보장을 배경으로 한국의 애인를 초대하지만 그 초대를 거절당한다.

    그랜드캐년에서 머리 처박고 죽다

    전화를 통해 애인은, ‘난 이제 더 이상 외롭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난 당신을 잊을 거예요. 이젠 당신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갖고 사는 사람보다 늘 내 곁에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거예요.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요’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바라본 타자로서의 미국이라는 이상을 공유하기를 거절당한 호빈 자신은 미국 안에서 타자로서의 결핍을 함께 치유하자는 제인의 초대를 거절하는데, 그 거절은 자신이 완전히 미국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한국적 소음에 대한 거부이자, 법적이나 지리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귀환을 요청하는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 된다.

       
      ▲ 영화의 한 장면

    호빈은 가장 야비한 방식으로 제인을 배반하고 착취한다. 금전갈취와 섹스. 이에 대한 처벌은 존재의 소멸이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그랜드 캐년에서 자동차 핸들에 달린 경적에 머리를 박고 죽은 호빈과 그에게 겨누었던 총구를 자신에게 돌리는 제인의 모습은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뿐 아니라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80년대 이후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상이한 동기를 가지고 미국에 이주하는 이민자들이 늘면서 더욱 이질적이고 복잡해진 한인 이민사회의 문제까지 드러낸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100% 미국 현지 로케이션으로 제작된 <깊고 푸른 밤>은 당대 한국 사회의 의식, 욕망, 정치적 상황, 경제적 여건 등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포착해내었다. 영화 내용뿐 아니라 주연을 맡은 배우가 암시하는 디아스포라의 비극적 이미지가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깊고 푸른 밤>은 단관 개봉이라는 당시 상영방식에서 49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80년대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