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 안녕
    2009년 06월 22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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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초생달이었다. 다행히 어제 내린 비가 말끔히 가시고 동해 해안단구 언덕 밑에서는 아침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 보는 장엄한 광경! 역시 나는 이곳으로 잘 들어 왔어. 스스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오늘 새벽은 유난히도 그렇다. 이런 날을 나는 생태적 아침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도 한다.

생태적 아침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가장 옳은 판단을 한 것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고, 가장 그른 판단을 한 것이 운전을 배우고 차를 산 것이다."

아내는 의아했을 것이다. 시골로 이사 오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대가 없었던 아내이지만 왜 굳이 교통이 불편한 이곳까지 들어와야 하는가에 불만을 나타냈던 아내였기 때문이다. 평소 내가 생활 속에서 보여 주었던 생태적 신경질(?) 때문이라도 나는 아내가 나를 이해할 줄 알았다.

(나는 집안 일에 대해서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음식물을 비롯한 쓰레기 처리에서는 아내를 심하게 감시하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아마, 내 마음 속 어딘가에 화석처럼 남아 있었던 가부장적 기질이 그때 마음껏 발휘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천국으로 이사오다

도시에 살면서 나는 많이 우울했었다. 스스로의 생활습관도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또는 철학적으로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30 대 중반에 건설업으로 돈을 벌다가 IMF 때 부도가 나고 건진 4 층 짜리 건물도 하나 있었다. 거기 3층 4층을 내가 쓰고 있었다. 나는 그것 때문이라도 더욱 자학을 하게 되었다. 되먹지도 않은 건물주가 되어 세입자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내가 할 짓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론 내 생태적 고민과 철학적 의식도 대단히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과 함께 허균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오기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마저도 사치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로서 글을 쓰기위해 농촌으로 온 것 또한 전혀 철학적 인것과 거리가 먼 유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자 천국이었다. 건강도 놀랄만하게 좋아졌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게다가 나의 생업인 농수산물 인터넷 쇼핑몰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프라가 나도 모르게 형성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죄를 짓는 것이다. 더구나 잘난 척하는 진보 좌파에게의 그 죄는 가중처벌의 대상이 된다. 도시의 인간들은 생태적으로 뿐만아니라, 인간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정치적으로 또는, 진보좌파들이 좋아하는 철학적으로도 몸둘 바를 몰라야 한다.

도시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도시의 대량 소비는 농촌으로부터 또는 지구 곳곳에서 파괴와 착취와 말살을 야기시킨다. 우리가 부르짖는 민주주의는 이제 더이상 생태적 해결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아무리 입으로 진보적인 담론을 부르짖어도 도시에 사는 것만으로도 그 인간은 더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가 아무리 잘 난 진보지식인라도 할지라도 의식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활동가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도시에서의 삶은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그 피해가 결국은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구조다. 남을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비규환의 사회이다. 도시에서 아무리 생태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해결책이 없다. 아무리 아이들 교육을 잘하려고 노력 해보아야 한계가 있다. 아무리 노동운동을 해봐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도시는 자신도 모르게 범죄자가 되어 간다.

도시에서 당신의 연봉이 점점 더 높아간다면 그 죄는 또한 깊어져간다. 도시에서 부자가 된다면 당신 때문에 600 명의 거지가 생기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시에서 1 인당 최저 생계비가 40 만원이라면, 그 돈이면 농촌에서는 풍족하게 살 수 있다.

도시를 이대로 방치해두고는 진보정치는 요원하다. 나는 진보적인 정치가 활동가 지식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다. 당신들의 삶은 이미 진보적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은 진보좌파가 아니다.

도시에 사는 당신은 진보좌파가 아니다

헤겔은 "개념을 스스로 발전시키는 것은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부정성이다" 라고 했고, 포에르바하는 "변증법은 관념이 아니고 실재다" 라는 말이 기억나는 아침이다.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다. 만약 도저히 농촌으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농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농촌은 더 이상 도시를 위해 존재하는 더부살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농촌은 도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우주 만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도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흉악한 자본가로부터 퇴출된 노동자들이여. 주저 말고 농촌으로 오라. 그곳에 당신의 안식척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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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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