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독재’를 생각한다
        2009년 06월 22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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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vs 독재

    노무현 사망 이후 민주주의, 독재 등 말이 등장하고 있다. ‘담론’ 차원에서. 담론이라는 면에서 독재나 민주주의가 세력관계를 반영한 적이 오랜 되었는데, 좀 새삼스럽다.

    그럼 ‘독재’란 무엇일까? 담론 수준에서 독재는 ‘군부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이 아닐까? 요즘 보수정당이나 일부에서 자주 쓰는 ‘소통의 부재’란 아마도 시민사회와 반대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다수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좀 꼼꼼하게 살펴보자면, 이는 시민사회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지 못하는 ‘이익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는 곧바로 ‘정당정치의 미발전’으로 이어진다. 예전 말로 치자면, 대의제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시민들이 ‘MB OUT’ 등의 문구가 드러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되돌이켜 보면 이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질문하면 그 역시 아니다. 포퓰리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2000년대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고, 시민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정부’,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왜 독재나 소통 결여란 문제가 제기될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자. MB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사용이 잦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강력하다 등이 이를 보여주는 주된 현상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 정권에도 사회운동 등에 대한 탄압은 존재했고, 억압적 국가기구도 작동했다. 불안정노동, 구조조정, 노사관계로드맵 등을 기억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을 뿐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기구 작동이 이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독재라고 부르는 근거는 아니다.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부르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담론 수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좁혀진다. 다시 1987년 수준의 민주주의로 회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라는 담론을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보면 모든 자본주의 국가와 정권은 독재이다. 반동적 독점자본의 정치적 테러독재 형태를 아주 예전에 파시즘이라 불렀듯이, 자본주의 국가는 모두 부르주아 독재이다. 다만 정권 형태의 차원에서 ‘누가 집권’했냐에 따라, 반동적 부르주아지냐 아니면 자유 부르주아지냐에 따라 그 형태상 차별성이 나타날 뿐이다.

    이런 엄밀한 논의를 떠나서, 담론 수준에서 독재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대중들에게 외치면,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그 민주주의는 87년 제8차 개헌에서 규정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즉 민주주의의 계급성이 아주 쉽게 망각된다는 것이다. 지금 운위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의 정치적 외피로서 민주주의이다. 그 외피에 상처를 내는 반동적 부르주아지들의 지배에 대항하자는 것이 현재 시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문득 18년 전 논쟁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1991년 5월 강경대 군의 테러 치사 사건 이후 사회운동은 한 달이 넘게 거리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다들 파쇼타도-민주주의를 외쳤지만, 문제는 대안이었다. 에피소드 같은 논쟁이었지만, 어느 세력은 ‘파쇼 타도-민주주의 쟁취’를 외쳤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란 문제가 떠올랐다. 그 안에서도 한편은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다른 한편은 민주주의 임시정부 아니면 과도정부 슬로건을 외쳤다. 적어도 당시 NL이 주장했던 ‘국회해산-즉각 총선’은 대안이 아니므로, 노동자 권력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에 비해 2009년은 많이 후퇴한 셈이다. 물론 제헌권력, 국민소환 등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논쟁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권력의 항상성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내가 해버린 하나의 이유는 ‘독재’란 담론이 지닌 자기 한계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용하더라도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인지되지 않았을 때, 민주주의 투쟁은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억압적 국가기구’, 이른바 공권력의 문제다. 일단 전제해야 하는 것은 현재 국가기구의 작동은 80년대적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른바 국가-자본관계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전일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의 동원은 과대성장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은 자신의 장기적 정치이익 – 이른바 경제위기 극복이나 사회안정 등 – 을 위하여 공권력의 노골적인 사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총자본과 국가간 이해의 수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MB정권은 자본분파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공권력을 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29일 오후 경찰이 시청광장 주변에 차벽을 치려고 하자 시민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다시 1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 시절, 이른바 ‘이완된 독재’ 혹은 ‘시민사회의 팽창’ 등이 논의되며, 국가권력과 전면적인 투쟁인 ‘기동전’이 아닌, 시민사회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포위하고 이들을 장악하는 진지전 논의가 ‘그람시’를 원용하며 사회운동에 들어왔다. 다만 그때는 그람시를 아주 잘못 이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국가=억압’, ‘시민사회=헤게모니’라는 얼토당치 않은 말을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그람시 소개서 중에 그런 해석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늘 억압적이며, 최종 순간에 자본(총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서 강제력을 준비하고 예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며 억압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현재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은 ‘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상황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국선언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독재에 맞서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는 이념적인 면에서나, 조직적인 면에서 분화가 공고화된 상태이다. 지금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내 MB정권의 공권력의 과잉 사용과 시민사회내 이익매개 기능의 단절을 비판하며 나온 – 모두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 반대연합이란 의미에서 –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와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진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안이 퇴영적인 만큼 설득력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넓게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혹자는 87년 6월 이전을 회고하며, ‘좀 더 대중적인 슬로건’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내 존재하는 대항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죽음 곁의 현상에 주목해 보자

    추모정국에서 형성된 민주주의-독재 전선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현재 전선이 가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에 그러하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역시 이 점에서 나는 죽음으로 형성된 추모정국의 생명력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대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죽음과 추모에서 한 발 떨어져서 추모 주위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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