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2009년 06월 17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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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정규직 노동자들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정규직 일자리 마련을 위해 비정규직 수 백명이 장기 휴업, 강제 퇴직을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안 됐는데, 이제 정규직 2,646명의 정리해고 문제는 모든 운동권의 핵심 사안이자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GM대우자동차가 비정규직 900명 이상이 무급 순환휴직에 이어 ‘300만원 먹고 떨어지라’는 강제퇴직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대두되야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겠지요.

       
      ▲ 사진=주간 변혁산별

    현대차에서도 6월 11일 엔진공장 34명이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것을 포함해 이미 4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조용히 집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번에 엔진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중에는 9년을 일한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9년 동안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내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울산 3공장, 4공장, 5공장 등 곳곳에서 피치다운, 정규직 전환배치를 통한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예고되고 있으니, 비정규직의 고통과 한숨,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정규직이 짤려야 움직이는 운동권

    이게 쌍용차, GM대우차, 현대차만의 문제이겠습니까? 민주노총의 선봉 금속노조 지역지부 사업장들에서도 비정규직을 ‘짜르라’고 합의하진 않지만 조용히 묵인하고 넘어가고 있지요.

    이 대목에서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척 원망스럽겠지만 그게 약육강식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치인 걸 어쩝니까? 정규직보다 조직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운명입니다.

    비정규직을 해고해도 저항이 형성되지 않는 현실. 그게 비정규직을 감싸않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한 도덕적 지탄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 부정까지 다다르지 못합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감싸 안아야 된다는 것은 의식적 운동의 영역이지 현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니 현실의 문제로 만들지 못하는 비정규직 운동의 현실이 우리의 가슴을 억누르고 있지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운명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1사 1조직’ 따위의 조직방침이 가장 계급적 원칙이 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도 원망스럽습니다.

    정리해고 당해도 조용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쯤 되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됩니다. 정리해고 당해도 저항 없이 조용히 물러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디 도장실이라도 점거하고 라인 끊으면 회사 측과 손잡고 “진압할까 말까?”,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될 텐데 바보 같은 우리의 조카, 동생, 자식들의 다른 이름인 비정규직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요.

    뒤늦게나마 쌍용차는 집행부가 바뀌고 비정규직과 연대하면서 사내 비정규직, 부품 계열사를 포함한 총고용보장의 전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상직적인 문제죠. 양반, 상놈의 신분사회도 아닌데 정규직만 살야야 한다는 투쟁은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겠죠.

    GM대우차에서는 제발 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발생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미 버림받은 비정규직, 사무직 노동자 문제를 어떤 논리로 접근할 지 너무 끔찍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한 번 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은 남이 아니고 같은 하나의 노동자다’, ‘1사 1조직 방침이 맞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고 조직방침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 사진=주간 변혁산별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논리에 편승해 ‘비정규직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어야 내 고용이 보장된다’, ‘비정규에 대한 차별이 있어야 회사가 이윤을 많이 내고 내가 성과급이라도 한 푼 더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혼재되어 있지요.

    아직까지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인 한국의 노동운동’이 어디로 갈 지 조합원들의 머릿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두 가지 기도

    신이 있다면 두 가지 기도를 해 봅니다. 제발 현대자동차의 ‘1사 1조직’ 규칙변경이 통과되어 자본의 분할통제에 대해 한 방 먹이고 싶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대자동차의 ‘1사 1조직’ 규칙변경은 금속노조의 전체로 확산되어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 나갈 것입니다.

    자본이 만들어준 정규직만의 보신주의, 정규직만의 이기주의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를 부수고 계급적 연대의 출범을 선포하는 진정한 반격의 시작입니다.

    또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을 염원합니다. 원청회사보다 원청노조가 더 미울 수 있지만 역사는 비정규직 운동의 역동성만을 냉정하게 평가할 뿐입니다. 생산을 분할 담당하고 있는 당당한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스스로를 조직화해서 원청 자본과의 대응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굳이 정규직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산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합니다. 양적으로는 이미 정규직보다 더 많은 생산 공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장운동의 중심이 비정규직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동지가 생산의 주체

    이제 당신들이 생산의 주체입니다. 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조직화의 연장선상에서 정규직 운동이 건강해질 수 있고, 자본의 분할통제를 넘어선 단결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정규직 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이 분리되어 경쟁하는 악몽을 꿈꾸고 싶지 않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사무직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해야 하고, 단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미련을 두고 눈을 비비고 일어나 그 길을 향해 좀 더 걸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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