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회의 문화, 정말 걱정된다
        2009년 06월 17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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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6일 진보신당 제1기 2차 전국위원회가 열렸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어떤 지역 당원께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전국위원회가 끝났으니 지역 당협에 회의 보고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위원회의 보고는 지역에서 선출된 전국위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역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진보신당 당원분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2차 전국위원회는 지난 1차 전국위원회에서 의결하지 못한 2009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다루는 자리였습니다. 4월에 열린 1차 전국위원회에서는 4월 재보궐 선거 이전이었습니다. 4월 재보선을 통해 진보신당이 원내정당이 되면 그 역할과 예산안이 모두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국위원회가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안건인 사업과 예산은 2차로 미루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진=정상근 기자

    결국 6월이 되어서야 2차 전국위원회를 통해 2009년 사업과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었습니다. 한해가 절반이나 지난 상황에서 사업계획과 예산을 처리하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이 그러했기에 이는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길고 긴 마라톤 회의

    1차 전국위원회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된 것과 달리 이번 2차 전국위원회는 굉장히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1시 30분에 시작된 회의는 8시가 되어서야 끝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8시까지 장소를 연장하여 쓸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당직자분들이 바쁘게 뛰어다니시는 것을 보면서, 중앙당에서도 회의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전국위원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부터 달려왔던지라 회의가 끝나자 무척이나 배가 고팠습니다(국회 안에 매점 같은 게 있는 줄도 모르겠고…). 아마 더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회의가 끝나고 중앙당에서 김밥을 주셔서 허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마라톤처럼 하면 지칩니다.

    무엇이 우리의 회의를 이렇게 늘어지게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자리는 초등학교 학급회의가 아니라 공당의 중요한 의결기구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위원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서 논의 된 것은 논의 안건 1번 ‘2009년 사업계획’과 2번인 ‘2009년 예산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2009년 사업계획에 대한 논의에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에 대하 많은 의견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를 논의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따라서 다른 논의 안건들이 충분한 심의와 숙고를 거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국위원회는 두 개의 논의 안건이 준비되어 올라왔습니다. 하나는 이상섭 전국위원이 제기한 인터넷/IT TFT 구성에 관한 논의 안건이고 다른 하나는 안영신 위원이 제기한 상임위원회 논의기구 설치 안건이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 사업계획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과 긴급 발의들이 나와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업계획에 대한 무수한 질의와 발의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상당수는 유의미한 것이었고,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상섭, 안영신 전국위원이 제출한 안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긴급발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안건을 검토하고 심의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안건이었다고 하더라도 전국위원들은 간소한 설명만을 듣고 표결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이상섭, 안영신 전국위원들이 준비한 안건은 순서상 뒤로 밀려 더더욱 시간에 쫓겨 표결에 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상섭 전국위원의 경우 상당히 꼼꼼하게 안건을 준비해오고 심지어 PPT파일로 프리젠테이션 자료까지 구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에 쫒겨 제대로 발표를 하지 못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노력해온 안건일수록 뒤로 밀려 급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는 회의였습니다.

    우려스러운 당의 회의 문화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점입니다. 이와 같은 회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진보신당의 의결기구인 전국위원회는 수많은 긴급발의들을 급하게 처리 할 것이며, 미리 준비한 안건이 뒤로 밀릴 것을 걱정하는 다른 전국위원들은 대강 처리될 안건을 굳이 준비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특정한 안건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도 시간과 눈치에 얽매여 정작 나와야 할 중요한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심의와 숙고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걱정까지 낳게 합니다.

    그냥 내비둘 수 만은 없는데…

    전국위원회가 끝나고 제가 느낀 감상들을 다른 지역의 당원분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개의 반응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바닥이 다 그렇지 뭐" 하는 반응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진보운동을 해 오신 분들께서는 이런 점들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게 진보신당을 만들자고 한 것은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저는 지금의 상황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임위원회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해야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해보면 안영신 전국위원께서 준비했던 상임위원회 설치 안은 매우 진지하게 재검토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논의도 부실했고, 전국위원회에서 아쉽게 부결되었던 안건입니다.

    하지만 지난 전국위원회와 같은 마라톤 회의를 막고 전국위원회(본회의) 진행을 효율적으로 하면서도 안건의 심의, 숙고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임위원회 형태로 전국위원회를 운영해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전국위원회에서는 상임위 설치 안건에 대해서 전국위원들이 더 많은 수고를 해야한다는 반론이 제기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전국위원회가 길고 지루한 마라톤 회의, 숙고되지 못한 안건처리의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상임위원회의 운영은 더 많은 수고를 해야한다는 비용의 문제를 일정하게 상쇄시킬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의 종료 시간을 공지하고 그 시간을 엄격히 지키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아무리 메텔이 좋아도, 안드로메다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것이 제가 두 번의 전국위원회를 경험하면서 느끼게 된 점들입니다. 잘 다녀왔다,는 짧은 덕담을 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좋은 당을 만들기 위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멀고 먼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민중이 함께하는 행복의 나라로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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