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자율화 미친교육 2연타
        2009년 06월 12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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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에 교과부가 3단계 학교자율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를 발표하는 교과부 학교자율화추진관은 이렇게 말했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하여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학교 교육을 다양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방안은 2008년 4월 15일에 발표한 1,2단계 학교 자율화 계획을 완성하는 단계로 중앙의 권한을 시도교육청 단위로 이양했던 1,2단계 자율화에 이어 학교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자율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미친 소리다.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완벽하게 자율성이 보장된 교육부문이 한국에 이미 있다. 사교육부문이다. 그곳에서 ‘자율’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자율성 보장? 사교육 시장을 보라

    교육이 죽고 아이가 죽어나가고 있다. 창의성? 만약 어떤 학원이 창의성 따위를 기르는 교육을 했다간 당장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창의성같은 ‘불필요’한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은 입시교육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에게 창의성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그런 짐을 떠안은 학생은 경주에서 뒤처질 것이고 강사와 학원은 저주와 비웃음 속에 멸문지화를 당한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교과부 전문가들은 어디 외국에서 살다 왔나? 안드로메다에서 떨어진 ET인가? 어떻게 이렇게 자기 나라의 실정에 캄캄할 수 있나?

    한국의 교육시장에서 자율성이 강화된다는 것은 곧 입시교육과 입시경쟁이 강화된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 게다가 다양화라니. 입시경쟁이 강화되는 판에 무슨 다양화인가? 안영미 표현대로 ‘미친 거 아냐?’

    시도교육청 단위에 권한을 이양했던 자율화 조치에 이어 이번엔 3단계로 학교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자율화 조치를 취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에게 자율성이 주어지면 시도 지역 차원에서의 입시경쟁이 강화된다. 그 자율성이 학교 현장으로 내려가면 개별 학교 차원에서의 입시경쟁이 강화된다. 모든 학교가 모든 학교에 대해 투쟁하는 투전판이 되는 것이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국가가 어떻게 이런 짓을 벌리나?

    미친 교육 2연타, 미친다 미쳐

    2008년 4월 15일에 발표했다는 1,2단계 학교자율화 방안이란 이른바 ‘4.15 학교자율화’를 가리킨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에 소수만 모였던 인파가 처음으로 대규모로 확산되며 청계광장에 가득 들어차는 광경을 연출한 날이 있었다. 그날의 촛불집회는 공식적으로 광우병 문제와 더불어 ‘미친 교육’을 반대하는 행사였다. 그때의 ‘미친 교육’이 바로 ‘4.15 학교자율화’를 뜻했다.

       
      ▲ 지난 6월 서울광장 (사진=손기영 기자)

    그때 국민에게 사과한다더니 이번에 그 ‘미친 교육’을 3단계로 심화하는 3단계 학교자율화가 발표된 것이다. 작년에 이어 미친 교육 2연타를 맞은 셈이다. 정말 미친다 미쳐.

    그때 연합뉴스에 보도된 교과부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구체적인 규제 지침들이 폐지됨으로써 일선 학교의 운영 방식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긴 하지만 포괄적 장학지도권의 폐지는 우리 교육사에 유례없는 역사적 대사건이라고 봐야 한다." (연합뉴스 2008-04-15)

    국가가 개별 교육청이나 개별 학교에게 왈가왈부 안 하겠다는 소리다. 교육판 탈규제다. 마침 며칠 전에 김문수 경기지사는 교육부를 아예 폐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들려왔던 얘기도 교육부 폐지론이었다. 학교자율화는 교육부 폐지까지는 아니지만 국가가 교육 현장에서 상당부분 철수한다는 걸 의미한다.

    입시경쟁을 막을 주체는 이 나라에서 국가밖에 없다. 국가가 뒤로 빠지면 개별주체들은 무한경쟁의 지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그 개별주체들을 구원하라고 국민들이 정권을 맡긴 것이다. 자기들은 뒤로 빠질 테니 죽든 살든 국민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라니, 이럴 거면 도대체 정권은 왜 잡았단 말인가?

    자율화에 넘어가면 안 된다

    민주화 세력은 이미 학교자율화를 받는 멍청한 짓을 했다. 2008년 여름에 촛불집회를 하다 말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판으로 몰려간 것이다. 그때 교육감이 교육대통령이라고 국민들에게 광고를 해댔다. 학교자율화 정책을 선전해준 것이다. 학교자율화 1,2단계가 교육감 권력 극대화다. 김문수 지사의 교육부 폐지론은 이걸 주장한 것이었다.

    그다음 이번 3단계 개별 학교 자율화는 교장 권력 극대화로 귀결된다. 그 교장은 공모교장이 될 것이다. 이미 민주화세력은 공모교장제를 받으려는 기색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미는 착한 교육감, 착한 공모교장’을 뽑으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순진한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 교육감, 교장이 되도 입시경쟁의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학교정보공개로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에서 착한 사람, 즉 입시교육을 안 시키는 사람이 선출되는 기적이 나타날 가능성 자체도 극히 희박하다.

    정권 변해도 말짱 도루묵

    교육감, 교장이 누가 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자율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자율성을 주면 안 된다. 학교자율화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입시경쟁을 막을 주체는 교육감이나 교장이 아니라 국가일 수밖에 없다. 학교자율화는 국가를 무력화하려는 책략이다.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자율화, 분권화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파탄으로 귀결됐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자율화 기조를 계승한다. 당연히 파탄도 계승하고 있는 중이다.

    자율화 기조를 막을 생각을 안 하고 교육감, 교장 인선 문제에 일일이 힘을 빼다가는 모조리 파탄의 모래지옥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자율화를 못 막으면 정권이 아무리 변해도 말짱 도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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