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순 사장-'권력의 개들' 몰아내야
    미디어법 저지, 사장탄핵 사원총회를
        2009년 06월 11일 01:3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85년 2.12 총선 때의 일이다. 학살정권의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과 관제 야당인 민한당에 맞서 양 김씨에 의해 급조된 신민당은 이민우 총재를 앞세워 선명 야당의 깃발을 들고 ‘신민당 돌풍’이라는 한국정치사의 일대 진전을 이루어 냈다.

    관제방송 시청료 거부운동과 KBS

    그 당시 본인은 KBS 88요원 채용을 위한 입사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백수 신세의 청년 실업자였다. 무료함을 달랠 겸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에 정치1번지라는 종로의 교동국민학교 유세장을 찾았다.

    학살정권의 만행에 이를 가는 유권자들이 구름떼처럼 유세장을 메웠고 예상 밖의 ‘이민우 돌풍’이 불붙기 시작했다. 유세가 끝나자 청중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시위대열을 이루며 두가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KBS 자폭하라!”

    그렇게 시작된 80년대 관제방송에 대한 시청료 거부운동을 우리는 힘겹게 극복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한 KBS 구성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국민들은 KBS에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고맙고도 자랑스런 평가를 내려주었다. 불과 1년 전까지의 일이다.

       
      ▲이병순 사장.(사진=미디어오늘) 

    이병순 사장 입성 1년 만에 KBS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변화의 방향은 정권의 성격과 정비례한 구체제로의 복귀였다. 불길한 조짐은 1월의 용산참사 현장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사현장에서 KBS는 배척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성난 군중에 쫓겨나는 KBS

    충격 속의 봉하마을에서 KBS 중계차는 플래시가 집중되는 빈소 옆이 아니라 논바닥 황소 옆으로 내밀렸다. 촛불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인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에서 KBS 카메라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 물병세례의 표적이 되었고 중계차는 맞은 편 인도로 멀찌감치 밀려나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좌빨 불순분자’들의 악의적 선동 때문이요, 완장 찬 노사모들의 편파적인 독선 탓에 발생한 천만부당한 일회성 사건일 뿐인가?

    KBS가 직면한 오늘의 사태는 정치보복에 의한 전직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을 보는 KBS의 시선과 시각에 대한 시청자들의 냉엄한 평가이며 이병순 사장 1년 동안 변화된 KBS에 대한 총체적 평가이다.

    30년 전의 국민들도 보도지침으로 검열된 신문기사 속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낸 눈 밝은 국민이었다. 하물며 정보화시대 인터넷 일등국인 21세기 대한국민이 KBS가 내밷는 언술의 시대적 의미를 놓치겠는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맞아 KBS는 추모정국의 의미와 파장을 철저히 축소했다. 또 정치적 타살에 대해 분노한 민심을 최대한 은폐하려 했다. 설령 인터넷규제법과 미디어악법 등의 MB악법을 강행처리하여 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 하더라도 KBS의 관제적 성격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리 보존 위해 개가 된 자들을 쓸어내야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기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망해가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권력이 KBS를 지켜주던 시대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 할 때만이 KBS가 살 수 있다.

    연임을 위해 또는 자리보존을 위해 ‘권력의 개’가 되기를 자청한 자들을 쓸어내지 않고는 우리 역시 권력의 하수로써 역사적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을 일러 매국노라 한다면 개인의 사적 이익과 출세를 위해 방송을 권력에 팔아넘긴 자들은 매방노라 하겠다.

    우리는 죽어도 매국노, 매방노의 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병순 사장의 사병집단이 아니다. 소중한 국민의 수신료로 먹고 사는 우리가 국민을 배신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87년 6월항쟁을 통해 국민들은 권력에 묶여 있던 KBS의 쇠사슬을 끊어주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스스로가 권력의 쇠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분노한 민심은 KBS를 두번 다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해 6월부터 수많은 촛불시민들이 전국각지에서 KBS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때 정작 우리 KBS인들은 무엇을 했었던가? 성난 민심이 KBS를 응징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병순 사장에게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병순 체제하에서 KBS의 미래는 없다. 지난 1년의 행태가 그것을 증거한다. 인사권을 움켜쥐고, 감시체제를 복원하고, 제작 자율권을 짓밟는, 권력 의중에 충실한 이병순 사장을 그대로 두고서는 KBS에 희망은 없다.

    거지근성 가진 자들

    부사장과 편성, 제작, 보도, 라디오본부장 그리고 보도국장 등에게도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방송은 다양한 개인들의 창의적 산물이요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지시와 명령의 상명하복 체제로써 방송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짓밟는데 앞장선 주요 간부들 또한 KBS를 떠나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센 놈한테 붙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지근성을 가진 자들은 공영방송의 구성원 자격이 없다. KBS가 1년 만에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된 배경에는 우리들 모두의 책임도 크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공적 가치의 소중함을 지킬 줄 아는 자만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나로부터 우리 모두의 심기일전을 기대한다.

    노동조합 또한 오늘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청료 거부운동을 극복하고 신뢰도 1위의 대표 공영방송으로 KBS가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5천 사원의 대표조직이요, 구심점인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 대대적인 공영성수호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언행이 일치된 노동조합의 거침없는 행보를 기대한다.

    지금은 비상한 시기이다. 공영방송 KBS의 붕괴 또는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이다. 몇몇 출세주의자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KBS를 희생 제물로 바칠 수는 없다. 사랑받는 국민의 방송으로 KBS를 지키는 일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나라가 바르게 서는 길이며, 참 주인인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이다.

    조중동 방송 나오면 KBS 설 자리 없다

    KBS를 굳건한 공영방송으로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집권 여당의 미디어 악법을 저지하는 일이다. 누차 얘기했듯이 재벌과 조중동이 참여하는 상업방송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공영방송 KBS가 설 자리는 없다.

    집권여당이 현 상황에 대한 처절한 반성없이 미디어 악법을 강행처리 하려 한다면 우리는 65%의 국민여론에 의지해 사생결단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KBS가 공영방송으로 국민들의 우호적 평가를 받았다면 그 뿌리는 바로 90년 4월의 방송민주화 대투쟁이다.

    둘째, 방송환경의 상업적 제도변화를 저지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금과 같은 사장독재, 정권에 종속된 사장의 일인지배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KBS는 역시 80년대 관제방송으로 회귀하여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미디어 악법을 저지하고 사장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이 현 시기 KBS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사장 독재, 사장의 일인지배를 극복하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장을 국민직선 또는 사원총회에서 선출하지 않는 한 KBS의 사장 임명권은 국민적 대표기관을 자임하는 국회 또는 대통령의 영향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좋은 대통령이냐 나쁜 대통령이냐 또는 정권의 간섭이 어느 강도로 이뤄지느냐의 정도의 문제일 뿐 현 제도 하에서 정치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사장 탄핵 위한 사원총회

    그래서 첫째, 실효성 있는 견제 수단으로 사장의 탄핵권을 사원총회에 부여하는 등 공영방송법제도의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를 강제하는 법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역사는 오늘의 요구를 내일의 법으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지금 당장 법적 실효성은 없다 할지라도 오늘의 요구가 선례가 되고 관행이 되어 제도화 될 수 있도록 사장탄핵을 위한 전 사원총회 또는 전 조합원총회를 실시하자.

    둘째, 방송제작 분야의 경우 인사와 업무배정의 권한은 방송의 공영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최근의 5차 사법파동의 핵심은 법관 인사권과 법원 행정권에 의한 사법권의 침해와 통제였다. 헌법으로 신분이 보장된 판사들도 이럴진대 회사원에 불과한 기자와 PD의 경우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본부장과 국장 선임이 제대로 이뤄지고 그들의 업무배정 권한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아래로부터 공론을 형성해 전달하고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할 수 있는 기자평회의와 PD평회의 같은 사원평의회가 구성되어 각 단위별 의사결정권에 대한 참여와 감시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 의사결정권에 대한 참여와 감시야 말로 사장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수단이다.

    셋째, 이병순 사장 부임 이래 최악으로 치달은 현행의 인사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인적 혁신 없이 KBS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각 부서에서 검증된 업무능력과 평판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치권 줄대기 인사, 핵심 실세들의 친분에 의한 정실인사, 사내민주화 세력에 대한 음해에 공을 세운 반동적 인물에 대한 보답인사로 점철된 현행 질서를 바꾸지 않는 한 KBS의 퇴행은 가속화 될 뿐이다.

    넷째, 사측의 제도권력과 대항해 사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5천 사원 모두가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되기 위한 소통과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 실국총회, 본부총회, 직종별 총회 등을 상시적으로 운영해 공론을 모으고 집단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인사혁신과 제작자율권 수호를 위한 사내민주화 투쟁이 우리의 갈 길이다.

    인사혁신과 제작자율권

    관제사장에 대한 불신임, 부적절 인사의 퇴출, 부당한 지시에 대한 거부와 불복종, KBS의 정체성과 방향성 확립, 의사결정권에 대한 참여, 주요 프로그램에 대한 의제 설정 및 아이템 선정에 대한 집단적 참여와 감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제작자율권 수호투쟁과 인사혁신 투쟁을 아우른 사내민주화 투쟁을 거사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운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KBS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될 것이다. 

                                                     * * *

    * 이 글은 최근 KBS 사내 통신망에 올라온 글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