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자아비판인가 자아분열인가?
    By 내막
        2009년 06월 10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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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10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6·10 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자아비판’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뿌리내렸다"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형적 틀은 갖추어져 있지만, 운용과 의식은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열어놓은 정치공간에 실용보다 이념, 그리고 집단 이기주의가 앞서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실용(평화)보다 이념(반공) 그리고 집단(강남 땅부자와 재벌) 이기주의가 앞서는 일들이 매우 자주 벌어지고 있고, 정부여당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국가기관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사적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이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또한 "성숙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독선적인 주장이 아니라 개방적인 토론이, 극단적인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화가 존중받는 것"이라며, "성숙한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이 자율과 절제, 토론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 가는 위대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광장에 대한 묻지마 봉쇄와 같은 독선적 주장이 아니라 개방적인 토론이, 이전 정부와 비판세력에 대한 저인망식 먼지털이 수사라는 극단적인 투쟁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화가 존중받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이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성숙한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이 자율과 절제, 토론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가는 위대한 과정"이지, 여론 수렴절차는 무시하고(미디어법 공청회 파행),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남발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모습이 맞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사회갈등과 분열보다는 사회통합과 단합을 이루는 기제가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며, "이러한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인 저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을 보며 반성했다"고 말한 다음 촛불네티즌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고, 재래시장 깜짝 방문 등 민심 탐방을 다니면서 다른 쪽에서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등의 이율배반적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노력하겠다"는 단어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이 대통령의 기념사 마지막은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먼저 가신 민주화 인사들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인다"며, "민주화 운동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이었다.

    각급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들을 통폐합 및 폐지하고, 기존 민주화유공자에 대한 서훈 박탈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하는 정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동안의 이율배반 행보를 감안하면 가히 ‘일관성’은 있다고 할만하다.

    ‘말’이 문제됐던 노무현, ‘말’만 번지르한 이명박

    6·10 항쟁이 정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항쟁 20주년을 맞은 2007년이었다. 그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첫 정부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문 때문에 다시 진보 보수를 막론한 정치권과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97년 경제 위기 때문에 발생한 많은 우리 경제의 지체를 빌미로 민주세력의 무능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양심이 없는 사람들의 염치없는 중상모략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남탓’이 되었다.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는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는 말은 ‘분열과 갈등 조장’이 되었다.

    특히 "독재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하여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저는 그들 중에 누구도 국민 앞에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보수언론들의 성감대를 자극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6·10 항쟁 20주년 기념사가 사회적 반향과 큰 반발을 불러왔던 것과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22주년 기념사는 문장 하나 하나가 너무나 매끄럽고 흠잡을 데가 없어서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반응과 함께 실소를 유발한다.

    아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는지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 싶다. 말 보다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말과 행동의 괴리가 거의 자아분열 수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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