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의 발단
    2009년 06월 08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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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위기인 것은 옛 것이 무너지고 있어서이기보다는 새 것이 등장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의 붕괴가 이론(異論)의 여지 없이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미래가 암울한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지 현실의 장에서든 상상의 영역에서든 너무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향한 수많은 도전과 실험이 있어왔고,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다양한 대안이론이 창출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이론이 공히 가지는 난점 중 하나는 그 이론이 비현실적이라거나 치밀하지 못하다는 상투적인 비판뿐 아니라, 대안으로 힘을 가질 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는 물리적 한계에서도 비롯된다.

<레디앙>은, 북경 인민대의 김정호씨와 함께 여러 대안이론을 알리는 긴 연재를 시작한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에서 지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김정호씨는 현재 북경 인민대학 박사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레디앙>에 대안사회주의론에 관련된 몇 편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앞으로 연재될 ‘대안사회주의’ 시리즈는 필자인 김정호씨가 가진 이론적 관점에 의해 쓰여질 텐데, <레디앙> 편집진은 그러한 이론적 관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이번 연재에 담겨 있을 문제의식이 대안사회주의에 관련한 다양한 토론과 논쟁을 촉발시켜주길 바랄 뿐이다.

아래는 필자가 계획하고 있는 연재 주제와 순서다. 각 주제의 제목은 집필과 편집 과정에서 다소 변경될 수 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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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유고 ‘노동자 자치 사회주의’에 대한 회고
Ⅱ. 사회주의 본질론
Ⅲ. 사회주의 발전단계론
Ⅳ. 사회주의의 내적 동력문제
Ⅴ. 사회주의 시장경제론
Ⅵ.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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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유고 ‘노동자 자치 사회주의’에 대한 회고
1. 들어가는 말
2. 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의 발단과 전개과정
1)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의 발단
2)원전학습열풍과 사회주의 본질에 대한 재인식
3)노동자 자치의 사회자치로의 발전
4)자치정치제도 개혁
3. 유고의 사회주의 자치이론
1)자치경제이론
가. 사회소유제이론
나. 자치와 연합노동이론
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론
라. 확대재생산이론
2)자치 정치이론
가.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
나. 당과 사회정치조직이론
다. 자치 민주정치이론
4. 연방해체 과정중의 유고
1)80년대 전반기의 조정과 개혁
2)최후의 노력과 반성
5. 사회주의 자치제도의 성과와 한계
1)자치제도의 성과
2)자치제도의 한계

제1장 유고 ‘자치사회주의’에 대한 회고

1. 들어가는 말

한국 진보진영은 그동안 구 사회주의의 실패를 딛고 그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 찾기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 같은 작업이 현재 서 있는 지점을 잠시 보자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가 가졌던 관료주의적 병폐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노동자 자치" 사상을 중심으로 한 방향성에 대체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국가사회주의의 단일한 모델에만 갇혀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기존 인식의 폭을 넓히고 다양화하는데 일정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지나친 "노동자 자치"에 대한 미화로 그 인식의 편면성과 한계 또한 보여준다.

새로운 대안사회에 대한 탐구 작업은 현실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지양할 새 사회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함께 지나간 경험에 대한 정확한 사실 인식과 올바른 분석 작업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기대치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현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고 재조명하고자 하는 일이 갖는 중요한 의의이다.

20세기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서 한때 번창했던 사회주의 자치제도는 오늘날 사회주의개혁의 전주곡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비록 유고 사회주의 자치제도는 이론상의 오류와 실천과정에서의 심각한 결함으로 인해 실패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귀중한 경험은 후대의 사회주의 체제개혁에 대한 연구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중요한 참고적 가치를 갖는다.

2. 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의 발단과 전개과정

1) 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의 발단

유고 사회주의 자치이론이 20세기 40년대 말과 50년대 초에 발단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얼마 안 된 1946년, 유고공산당은 본국의 민족적 특색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진행한다는 사상원칙을 수립함으로써, 사회주의 자치이론을 위한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

사회주의모델을 탐색하던 초기, 즉 1945년부터 1948년 시기엔 불가피한 역사적 원인에 의해 유고는 소련모델을 본받아 고도로 중앙집권화한 정치경제체제를 수립한다. 이러한 체제는 세계대전 후의 유고 사회주의 건국 초기에, 전국의 여러 민족과 민중들을 지도하여 반혁명 무장반란을 분쇄하고, 외국 반동세력의 무장간섭위협을 저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새로 탄생한 혁명정권을 공고화하고, 국내 정치정세를 안정시켜 전쟁의 상흔을 신속하게 치료하며, 생산을 회복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도 부정할 수 없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병폐 역시 빠르게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됨으로써 체제가 지나치게 경화되었다. 그리고 기업의 적극성을 속박함으로써 생산영역에서 많은 기형적인 현상이 출현하였고, 국가 관료기구의 비대화와 관료주의를 낳게 되었다.

‘소련식’의 병폐

티토와 카더얼 등의 유고공산당 지도자들은 일찍이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체제 내에 존재하는 이 같은 병폐를 지적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사회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난하였다.

   
  ▲ 합성된 티토와 국기 이미지

이상의 국내 경제 건설 중에 출현한 종종의 비정상적인 현상이, 유고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자치이론을 창립하는 데 있어 내부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1948년 발생한 소련과 유고의 충돌은 그 이론 탄생의 외부적 추동력이 된다.

1948년 3월 중순, 소련이 유고에 주재하던 자국의 군사 고문단과 기술전문가들을 갑자기 전원 철수시키면서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양국관계는, 유고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지나온 과거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에 대한 그들의 재인식은, 이후 진행과정에서 보듯이 자신들의 지나온 경험적 실천의 총괄로부터 시작해서, 이론적 탐구 그리고 다시 실천적 돌파라는 일련의 인식과정의 순환상승과정을 밟는다.

초기, 스탈린과 소련중앙의 비판에 직면하여 유고 지도부와 맑스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어떻게 자기 변론을 진행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다만 스스로의 생존을 확보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국의 역사적 경험과 발전과정에 입각해서 현실의 발전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적 합리성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7월 21일에 역사적 의의를 담은 유고공산당 제5차 당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서 유고공산당 지도부와 전체 대표자들의 주요한 임무는 자신들의 지나온 역사를 회고하고 본국의 경험을 총괄하는 일이었다. 티토는 대회를 위해 준비된 정치보고에서 처음부터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 보고의 임무는 우선 우리당의 각 발전시기의 모습을 간략하게 짚어보고, 당의 발전과 투쟁과정에서의 기본적인 약점과 결함을 지적하며, 당이 구 유고에 있어 수행한 해방투쟁과 오늘날 사회주의 건설과정 중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그 다음은 … 유고 공산당이 어떠한 기초위에서 건설되었는지, 즉 유고 노동자계급의 당이자 선봉대로서의 유고 공산당이 어떠한 기초위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어서 티토는 무려 10만 자에 이르는, 19세기 70년대 유고 사회주의운동의 발단으로부터 시작하여 1948년 소련과의 충돌에 이르기까지의 80년간의 역사적 과정을 회고하였다.

유고는 유고식으로

보고의 중심사상은, 유고 공산당은 자주 독립적인 당으로 유고 전체 민족과 민중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지도역량이며, 과거에는 파시즘에 맞선 해방투쟁의 승리와 사회주의혁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개척한 바 있고, 현재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본국의 발전경로를 선택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고공산당의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적인 발전경로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혹은 유고식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선 당시 유고 지도자들과 맑스주의자들은 아직 자세히 연구한 바 없었고, 또 그것을 당장 해결해야 할 긴급한 임무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입으로는 유고식의 자기 길을 가야한다고 강조하긴 했어도, 그러나 그들은 내심 유고의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몇 가지 소수의 유고 특색 이외에, 기타 주요 방면, 예컨대 사회 기본제도에 있어 소련과 다를 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산수단의 국가소유제나 고도로 중앙집권화 된 계획경제체제와 중앙행정관리체제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소련으로부터 배워온 것으로 스스로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1949년 이전 유고 지도부와 맑스주의자들은 대외적인 선전과 실제 행동 상에 있어 자기 모순상태에 있으면서, 사상적인 면에서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즉, 한편에선 당과 국가의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소련과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키고 소련 당 지도부의 불만을 일정 해소키 위해, 유고 당 지도부는 부득불 농업에 있어 소련식 생산의 합작화를 가속화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 정도를 높여갔다.

이 같은 상호 모순되는 언행은 유고 당 지도부를 줄곧 곤혹스러운 국면에 처하게 하였는데, 즉 소련의 자신들에 대한 불만스러운 태도를 바꾸지도 못하면서, 또 한편으론 과도한 생산의 합작화 추진으로 자국 농민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 결과 양국 간의 국가 간 긴장관계에 덧붙여, 유고 내부에서조차 각종 사회모순이 날로 격화되어, 사회 경제 정치 등 제 영역에서 심각한 위기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곤란을 극복하고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고 당 지도부와 맑스주의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길을 갈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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