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FTA-안티조선 소신부터 밝혀라
        2009년 06월 08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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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의 칼럼 ‘그날 새벽, 그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를 읽었다. 2008년 초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독자적인 진보정당 건설의 길을 포기했다”며 “미국 민주당식 정당을 만들기 위해 ‘민주당 좌파’가 되자”고 했던 주 전 의장이 이제 ‘친노세력’과 연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칼럼에서 주 전 의장은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아직 젊은 그가, 부지런한 독서가인 그가 머지않아 사회민주주의자로 진화할 것을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나는 그를 우리들이 만드는 ‘사회민주주의연대’의 고문으로 모실 생각이었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또 “진보에 힘을 보태겠다는 노무현의 약속은 누가 이행할 것인가? 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해찬 전 총리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이해찬의 사회민주주의자로의 개종을 기다리면서, 박해와 조롱과 외로움을 인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전 의장이 ‘친노’와 연대 못할 것으로 봤던 세 가지 이유

    나는 작년 민노당 분당 이후 주 전 의장이 ‘민주당 좌파’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가 대표를 맡기도 했고, ‘뉴 민주당 플랜’을 내세우며 우경화 되는 민주당에서 무슨 ‘당내 좌파’를 하겠다는 걸까? 민주당 좌파를 하겠다면 정동영 전 장관과도 연이 닿은 ‘민주연대’의 재야 출신 의원들과 손잡겠다는 건가?”하고 말이다.

    또 “민주당에서 스펙트럼 상 당내 좌파는 소위 ‘친노세력’인데, 주 전 의장이 그렇다면 ‘친노세력’과 연대하겠다는 건가?”라는 의문도 가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 전 의장이 ‘친노세력’과 연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친노세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사회양극화를 강화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데 따른 실정(失政)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주 전 의장이 ‘민주당 좌파’를 지향한다고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의 책임까지 같이 지겠다는 선택을 할리는 없다고 보았다.

    둘째, 주 전 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정책 노선에서 상당 부분 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분권을 위해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에 대해 주 전 의장은 2002년 대선 당시부터 “신행정수도 이전은 사기극”이라고 극언하며 적극 반대에 나섰다.

    이외에도 민노당과 열린우리당의 기본적인 정책 기조 차이에 따라 주 전 의장은 노 전 대통령과 상당 부분 다른 정책적 입장을 보여야 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자, 주 전 의장 역시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진영 전반의 ‘한미 FTA 반대’ 입장에 섰다.

    셋째, 주 전 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정면 대결했던 조선일보 등 언론권력과 별다른 각을 세우지 않은 채 각종 기고․인터뷰에 적극 응해왔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생전부터 안티조선 운동이 상식처럼 된 ‘친노세력’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흠결이다.

    조선일보는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부터 노 전 대통령 ‘흔들기’에 나섰고, 재임 중이었던 2004년에는 탄핵을 선동하였으며, 행정수도 이전을 가로막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개혁 입법 좌초에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또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관련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적극 동참하면서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초래하는 데 일조하는 등 ‘친노세력’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주 전 의장이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상 결코 ‘친노세력’과 손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아무리 주 전 의장이 ‘친노세력’과 연대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와 어울리는 한 노사모 회원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미 FTA, 한강과도 같은 진보정당과 ‘친노인사’ 사이의 간극

    나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진보정당의 잠재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직후 불어닥친 ‘정몽준 돌풍’ 이후 민주당 ‘후단협’이 노 전 대통령 흔들기에 나섰을 때도 끝까지 ‘국민후보 노무현 지키기’에 동참했던 15%의 유권자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들 15%의 ‘진성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체로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나마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진보신당 평당원 중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였던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 중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밀어붙인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에 실망하여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정당으로 옮겨 온 분들도 많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과 연대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올바른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핵심 유권자층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진보정당 발 ‘제2의 노풍’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정당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의 차이가 ‘청계천’만큼 좁다면, 진보정당과 ‘친노 핵심 정치인’들 사이의 차이가 ‘한강’만큼 넓다는 데 있다. 주 전 의장의 소망과 달리 진보정당과 ‘친노 핵심 정치인’들 사이의 연대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무리하게 밀어붙인 한미 FTA 추진에 대한 입장만 봐도 그렇다. “한미 FTA의 대안은 한미 FTA를 안하는 겁니다”라고 단언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한미 FTA를 반대하는 농민의 상징인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진보정당의 지도급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한미 FTA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진보정당 평당원들 및 지지자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던 남산 하얏트 호텔 앞에서 “망국적 한미 FTA 철회하라!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나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고 절규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의 사례만으로도 진보진영이 한미 FTA에 대해 굳건한 반대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친노 핵심 정치인’의 대표 격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7년 <대한민국 개조론>이란 저서에서 “박현채 선생도 살아 계셨다면 한미 FTA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도발적인 가정을 내세우면서 한미 FTA 추진에 앞장섰다. ‘좌희정 우광재’라 불리며 노 전 대통령의 ‘동업자’를 자임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 역시 한미 FTA를 추진한 대표적인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다.

    유일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지지를 표시했던 천정배 의원 정도가 2007년부터 한미 FTA 반대에 대한 명확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런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친노 핵심 정치인’들은 대체적으로 한미 FTA에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 제안을 했을 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간의 ‘조건부 연정론’을 제시하면서 진보정당과 ‘친노세력’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노 대표는 1. 이라크 파병 철회, 2. 국가보안법 폐지, 3. 민주노동당 안으로 비정규직법 제정 등의 조건을 내걸고 ‘조건부 연정론’을 펼쳤다.(※ 한미 FTA는 2005년 당시 추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건부 연정론’의 조건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미 FTA-안티조선 소신부터 밝혀라

    따라서 주 전 의장이 자신의 소망대로 ‘친노세력’과 연대하고, 이해찬 전 총리의 ‘사민주의자로의 개종’을 이끌어 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주 전 의장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친노세력’과 연대하기 위해 한미 FTA 철회라는 진보진영의 정언 명제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한미 FTA 철회를 ‘친노세력’과의 연대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걸 것인지 말이다.

    만약 주 전 의장이 전자를 선택한다면, 더 이상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경제 노선인 ‘미국식 FTA’를 지지하는 사람이 사민주의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주 전 의장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친노세력’과의 연대는 당분간 ‘응답 없는 러브콜’에 그칠 공산이 높다.

    둘째, 주 전 의장은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조중동과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다는 인식 속에서 ‘친노세력’의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의지는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전 의장이 계속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기고나 취재 협조에 적극 응하는 등 안티조선 운동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면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코 주 전 의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안티조선을 실천하지 않는 ‘친노세력’과의 연대란 기껏해야 공염불에 불과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면서 폭발한 우리 사회 진보 개혁적 시민들의 에너지를 주 전 의장이 알아차린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회민주주의 연대 고문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이해찬 전 총리가 사민주의자로 개종하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선의로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추구해야만 하는 ‘풀뿌리 유권자 연대’의 길 대신, 참여정부의 실정(失政)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친노 핵심 정치인’들과의 손쉬운 상층 연대의 길에 미련을 두고 있는 주 전 의장의 모습은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다가 민주노총 국민파와 손잡고 영국 노동당식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결과적으로 종북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물론 그런 잘못도 ‘친노세력’이 주 전 의장을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나 저지를 수 있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민노당 분당 이후 주 전 의장은 나름대로 일관된 행보를 걸어왔다고 생각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주 전 의장의 행보는 노무현보다 장기표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정 주 전 의장의 “장기표보다 노무현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에 대한 성찰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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