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매애와 연대의 가족을 꿈꾼다"
        2009년 06월 06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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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부지영 감독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극장에 걸린 지 한 달이나 지나 영화를 본 것도, 이제 와서 소개하게 된 것도 아쉽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젊은 인텔리 여성감독의 입봉작에 대한 선입견, 예를 들어 난해하다거나 어딘지 연출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우선 재밌었고, 스타급 어린 여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진보신당 마포 당원이기도 한 부지영 감독은 인터뷰 요청에, 아무래도 영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영화부터 본 다음에 그래도 인터뷰를 하려는지 연락 달라고 했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면 스포일러라 하든가, 영화 줄거리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요?”
    “괜찮아요.”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엄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그리고 사회적 신분이나 성격도 다른 두 자매가 둘째의 아버지를 찾아 아웅거리며 여행하다가 결국 아버지를 찾고 보니(더 정확하게는 ‘깨닫는다’), 같이 살고 있는 이모더라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누나 동생 하며 알고 지내던 어머니와 둘째를 낳고 성전환 수술을 한 후 아버지임을 숨기고 ‘이모’로서 둘째를 보살펴온 것이다.

    “영화 줄거리가 자매애, 가족, 성소수자로 죽 이어지더라고요. 혼란스럽지는 않았는데, 어떤 데 강조점을 둔 거죠?”

    가족은 자매애로 채워진다

    “그 세 가지가 영화 키워드고요, 차례대로 떠오른 생각이예요. 저는 자매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친자매뿐 아니라 여성간의 연대를 중요하게 여겨왔어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아버지를 만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설정했다가, 시나리오가 변해서 이모가 나오게 됐어요. 제 가족도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었고,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지영 감독(사진=이재영) 

    애초에 첫 관심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축약어)였어요. 그런 분들,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한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이 이야기 안에 녹여 넣은 거죠.”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등장하는 가족은 엄마가 빠진 부계혈족으로만 이루어진 가족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정반대로 여자로만 이루어진 가족이고. 뭔가 의미하는 게 있을 성싶다.

    “전에 봉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어머니를 없앤 게 오합지졸 같은 가족의 모습을 보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있었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죠. 저는 가족을 채워주는 게 할머니, 어머니, 이모라 생각해요. 가족이란 유대감이고, 그건 바로 모계죠. 그래서 제 영화에서 아버지를 없앤 거예요.”

    그런데, 자신과 섹스해 아이를 만든 아버지의 성전환을 어머니가 수긍하고, 게다가 나중에는 ‘이모’로 동성 동거까지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 석연치 않았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그건 영화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어요. 관객들이 개인마다 상상할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었죠. 여성이라 생각하는 남성의 경우 여성과 성관계 맺기는 어렵겠죠. 저는 누나(어머니)가 동생(아버지)의 그런 상태를 알고 있었고, 인간적 연민으로 바라봤다고 설정했어요.

    ‘아는 누나’가 ‘아는 남동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가족이죠. 그래서 아이를 만들고, 수술 후에는 가족으로 거두어주는 거죠.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인 관계로 그리지는 않았어요. ‘유사 부부’가 아니라, ‘유사 남매’로 시작해서 ‘유사 자매’가 되는 거죠.”

    영화는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이모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으로의 원정으로 그려진다. 비쳐지는 풍광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문화나 정서 같은 것도 그렇고 제주의 특별함이나 고립감 같은 게 느껴진다.

    남매에서 자매로, 연대로써의 가족

    “제 고향이 제주도라 잘 알기도 하고, 이 영화에 적절한 공간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거예요. 여자들 이야기고, 제주가 유배지이기도 하고. 전주 살던 아버지가 제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성정체성 때문에 육지에서 쫓겨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종적 혈연보다 여자들의 연대로써의 가족을 표현하는 데 제주가 맞더라고요.”

    부 감독은 인터뷰 내내 직접적이든 에두르든 가족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끊임없이 내보였고, 다음 영화 역시 가족을 주제로 삼을 계획이란다. 그의 ‘가족’은 어떤 정의나 개념일까.

    “가족이라는 게 생긴 게 국가 만드는 과정에서잖아요. 그래서 가족이 생긴 최초부터 사회에서 요구한 어떤 역할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인간성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제도나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원래로 치자면 서로 어깨를 빌려주기 위한 게 가족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무시되고 있고, 그래서 ‘사랑’이라든가 가족의 본령을 되찾고 싶어요. 이 영화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우리 사회는 ‘경쟁을 위한 참호로서의 가족’에 대해 억지로 눈감고 있는데, 이 영화는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바로 ‘선택으로서의 가족’이죠.”

    “‘선택으로서의 가족’이라는 거, 그런 지향을 실제로도 펼치시나요? 두 딸들하고도 그렇게 실행이 되나요?”

    “딸들에게는 양가적 감정을 느껴요. 예쁘지만, 괴로운 존재죠. 지금은 딸들이 어려서 어쩔 수 없이 예뻐하기만 할 수밖에 없지만, 갈수록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중학생쯤 되면, 거리두기를 하고 딸들과 저희 부부 서로가 독립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한 살 정도 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동물’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가 울면 금방 깨어 일어나 안아주고 그랬었죠. 그런데 실제 아이란 그런 사랑뿐 아니라 돈이 있어야 키울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사회는 그런 측면은 말하지 않고, 생명이라든가 경외심이라는 이야기만 되뇌이면서 현실을 숨기고 있죠.”

       
      ▲인터뷰 도중 활짝 웃는 모습.(사진=이재영) 

    아이들과의 거리두기

    “아이들하고 거리두기 하겠다는 거, 부 감독이야 그러실 수 있지만, 남편도 거기 동의하시나요?”

    “제 남편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남편은 아이 잘 보는 사람 아니예요. 아기 보라고 그러면 진짜 보고만 있더라고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공개돼 ‘열성 영화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평단도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었고. 그런데 4월 말, 상업 개봉을 했을 때는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듯 적은 극장에만 걸렸고, 개봉 한 달이 좀 지난 지금은 서너 군데로 줄어들고 있다.

    “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라고 평가해요. 관객이 2만 명 좀 넘었는데, 애초 생각했던 정도예요. 이 영화가 준 선물, 배우와 스탭들, 인터뷰 등등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너무 적게 걸린 거 아닌가요?”

    “처음 개봉관은 열 군데였어요. 영화 성격상 투자비 환수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투자하지 않은 영화이고, 그렇게 되면 역시 대기업 중심인 배급사에서 꺼리게 되죠. 영화진흥위 등이 이 영화에 투자를 했는데, 그런 투자자들은 배급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예요.”

    “그래도 영화다양성이라든가, 의무상영이라든가 뭐 그런 정책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지원책이 많이 없어진 게 가장 아쉬워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는 투자를 뽑아낸다는 경제원리로만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지원책들이 다 없어졌어요. 그러면서 아예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고 있죠. 이제는 대기업 영화만 볼 수밖에 없게 됐죠. 예전에는 ‘다양성 영화 개봉 지원’이라는 정책도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어요.”

    이제 대기업 영화만 볼 수 있다

    “가족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다음 영화도 가족 얘긴가요?”

    “예. 행복하려고 가족을 이루었는데,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게들 살잖아요. 가족이라는 게 대개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엄마가 일하지 않는 전업주부여야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잖아요. 엄마, 아빠든 다른 가족 구성원 누구든 가족 일을 돌아가며 맡아 하는 태그매치죠. 사회나 국가가 해야 하는 역할이 다 가족에게 집중돼 있으니 행복할 수가 없어요. 유럽만 해도 덜 그런데. 사회가 가족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거죠.

    어떤 논문에 보니 ‘한국인의 가족 피로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한국인의 근대화는 가족을 풀가동하는 가족 동원체제에 의존해 이루어졌다’라고. 이런 데서 단상을 얻어, 이런 이야기 거리를 포함해서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예요.”

    다른 진보신당 당원으로부터 부 감독을 소개받을 때, 그가 성미산마을공동체에서 마을극장과 공동육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환경정의, 여성민우회, 녹색교통이 성미산마을에 건물을 지어 들어오면서 지하공간을 성미산마을에 내주겠다고 그랬어요. 마침 극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던 중이라서 같이들 돈을 모아 마을극장을 만들었죠.

       
      

    개관 축제도 하고, 영화제도 하고, 연극, 뮤지컬도 하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밤마실 영화’를 해요. 맥주 한 캔씩 들고 같이 영화 보고, 토론도 하는.”

    이런 ‘공동체’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면 만날 모이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극장을 만든 것도 그런 걱정이나 경향을 깨려는 거였죠. 마을 분들에게 같이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길 바라고요. ‘밤마실 영화’에는 보통 동네 분들도 많이 오시는 편이라서, 공동체 사람들과 보통 동네 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남편도 본인도 ‘일’을 하는 그리고 어린 두 딸이 있는 부 감독네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들에게 육아는 고통의 나날이다. 가족에 대해 나름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부 감독은 이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대안은 횡적 대가족

    “큰 아이가 24개월이 됐을 때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작정하고 주변에 알아보다 성미산 어린이집을 알게 됐어요. 보통의 어린이집은 아이 맡기고 돌아나오면 선생님들과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하고, 그렇다고 비싼 사립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건 스스로 납득되지 않고. ‘소통을 근간으로 신뢰하며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곳’은 없을까를 찾았던 거죠.

    사실 공동육아가 사립만큼 돈이 많이 들기는 해요. 돈을 모아 조합으로 설립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그런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만 참여하는 한계를 넘어서려고 해요. 문턱을 낮추려 하고 있죠.

    지금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소득에 따라 차등보육료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요, 집 사는 데 들어간 돈을 조합원들이 갚아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훨씬 부담이 덜어질 거 같아요.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많은 신경을 써야 해요. 모임에도 참여하고, 시설에 필요한 일을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나름의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우리가 횡적인 대가족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있는 종적인 대가족에서 육아 부담이 분산됐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대안은 횡적인 대가족이죠.

    공동육아를 하다 보니 어린이집의 선생님도, 아이 친구들의 엄마 아빠도 가족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도 엄마 아빠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지거나 하지 않게 되고. 아이들에게 제 자리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되요.

    어떤 책에 보니 ‘자식들에게 저작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나의 아이는 나의 00다’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그 단어가 절절할수록 문제가 될 소지가 많고, 파국을 초래하는 거 같아요.”

    때가 무르익었다

    부지영 감독은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사회당적을 가졌고, 지금도 진보신당과 사회당 두 곳에 당비를 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그리고 바라는 진보정당 활동은 어떠할까.

    “진보신당이 하는 정치활동을 보면 다들 동의가 되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하지만, 공식모임에도 못나가고 ‘당활동=당비’인 정도예요.

    일단, 조승수씨 된 것 너무 축하드리고, 많이 아쉽기도 해요. 민주노동당에서 현실 정치 목소리 낼 수 있는 채널이 있다가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의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공간에서 여러 일을 해야 할 거 같아요.

    ‘무르익은 느낌’이 들어요. 이럴 때 공세적으로 뭔가 해야 할 텐데. 당이, 촛불 이후를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지,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 가르쳐주길 바래요.

    얼마 후에 열릴 인디포럼에서 칼라TV가 ‘올해의 얼굴상’을 받게 되요. 저는 그 정도 활동은 못하고 그저 후원이나 할 뿐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이런 생각을 모아 큰 흐름을 만들어야 할 텐데.

    돈 많이 벌게요. 그런데 벌 수 있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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