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 구조위기 외면 오바마만 봐"
    한국의 진보정당 활동에 주목하는 이유
    By 내막
        2009년 06월 05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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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세미나 중인 마틴 하트 랜즈버그 교수.(사진=김경탁 기자)

    미국 루이스클락 대학 경제학과 교수 겸 정치경제학 과정 주임교수로 활동하면서 한반도 등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 성과를 보여온 마틴 하트 랜즈버그 교수가 2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에서 ‘세계경제위기와 민중운동의 상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2시간이 넘게 이어진 이날 세미나에서 랜드버그 교수는 현재 미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매우 미약한 상황이고 희망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현안 중심 운동 조직화를 통한 지도자 양성이라고 밝혔다.

    미국 노동자들, 구조적 위기 못 보고 오바마만 바라봐 

    랜즈버그 교수는 "미국의 경우 진보정당 건설 운동이 노조들의 외면 속에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이슈 중심으로 강한 대중운동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고,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는 힘도 생겨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들의 의회정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에서의 이러한 경험이 미국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 마틴 하트 랜즈버그 교수 (사진=김경탁 기자)

    랜즈버그 교수는 ‘미국의 경제위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이날 발제를 시작했다. "현 시대 미국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오바마 정부에 대해 ‘지나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진단이다.

    랜즈버그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노동자들은 현재 미국경제에 불어닥친 위기가 구조적이고 그 연원이 긴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오바마 행정부가 정책을 잘 운용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가 노동자 스스로 조직화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 랜즈버그 교수의 진단으로, 여기에는 미국의 기존 노동조합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랜즈버그 교수는 "노동자들을 만나 이런 저런 문제점들과 정책대안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와 그거 좋은 생각인데, 오바마한테 가서 이야기해봐라’고 이야기한다"며, 많은 노조들이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자신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인식하고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지지자들의 기대 하나씩 배반 중

    랜즈버그 교수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오바마는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고, 그의 당선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오바마와 대통령으로서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오바마는 취임 이후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것들을 하나씩 배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노조들은 오바마 당선을 통해 노동관계법 개선과 의료보장 확대, FTA 반대 등을 기대했지만 어느 것 하나 노조들이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것은 없으며, 전쟁정책에도 큰 변화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노동법은 부당해고에 대한 벌금이 미미하고,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노조가 결성되더라도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고, 오바마를 지지한 노조들은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기를 기대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그러나 오바마는 노조 결성 과정을 간소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부당해고 벌금을 좀 올리는 것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고, 단체협약 체결에 대한 정부 조정은 논의해보자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또한 미국 국민의 절대다수가 찬성하고 기대하고 있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경우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의료보장 제도와 오바마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의료보장 방식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어서 의료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저항운동이 벌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 구조개편보다 현상유지 선호

       
    ▲ 랜즈버그 교수의 강연을 통역하고 있는 임영일 소장. (사진=김경탁 기자)

    랜즈버그 교수는 "현재 미국이 안고있는 경제위기는 1980∼9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와 지나친 금융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구조개편이 필요하지만 오바마는 구조개편보다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는 2년간 8조 달러의 예산을 경제회복에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 돈의 40%는 감세를 통한 기업 지원에 투입한다는 것이 오바마 정부의 계획으로, 새로운 자극을 주는 시스템 재건이 아니라 기존 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이다.

    랜즈버그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기업세를 많이 거둬서 경제구조개편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오바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기불황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장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상황이 더 어려운 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바마가 뭔가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오바마의 정책이 구조적 배경 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노조도 독자적인 자기 정치적 행보를 하기보다 오바마 정부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비관적인 상황"이라며,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이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바마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노조 약화의 시작, 신참 차별하는 이중협약

    랜즈버그 교수는 미국의 기존 노조운동이 현재와 같이 미약한 모습을 나타나게 된 배경에 대해 1980년대와 1990년대 정부와 기업의 공세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못한 것을 지목하면서, 대표적으로 1980년대 많이 이루어졌던 ‘이중협약’으로 대표되는 양보교섭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노조들이 받아들인 ‘이중협약’은 기존 조합원의 기득권은 보호해주는 대신에 신규 직원에 대한 차별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현재 자동차 철강산업의 경우 기존 노동자들이 시급 30달러를 받는 반면 신참 노동자들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달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노조운동의 정당성과 조직적 통일성이 약화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1990년대 미국의 기업들은 노조 파괴 전문가들을 투입해 노조활동가를 해고했으며, 이 과정에 일부 노조들이 파업투쟁으로 대응했지만 대오를 갖추지 못한 산발적 저항은 철저한 응징을 받을 뿐이었고, 이 과정을 지켜본 많은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 자체를 두려워하게 됐다고 한다.

    한편 랜즈버그 교수는 노무현 김대중 정부의 실패가 퇴행적인 이명박 정부 집권으로 이어진 것처럼 오바마의 실패가 더 반동적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도 그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그래서 미국에서 진보적인 조직과 인사들이 오바마 정부에 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오바마의 실패가 진보세력 전체에 대한 신뢰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실패 진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까 우려

    랜즈버그 교수는 또한 노동자의 현실정치세력화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미국에서도 토니 마조키 화학노조 위원장이 주도로 미국노동당을 건설하는 등의 진보정당 건설운동이 있었고 노조들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노조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랜즈버그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정당을 만드는 것보다 이슈중심으로 강한 대중운동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노동정책이나 외교정책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요구를 조직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슈중심으로 새로운 요구들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리더들이 출현할 수 있고 이것들이 기반이 되어야 새로운 정당건설도 가능하다"는 분석으로, 랜즈버그 교수는 "그런데 지금은 그 기반도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 랜즈버그 교수와 임영일 한국노동연구소장. (사진=김경탁 기자)

    강한 대중운동 토대위에 정당 건설해야

    랜즈버그 교수는 "과거에는 운동이 강하면 굳이 정당이 필요 없고, 운동이 약하면 정당이 있어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운동이 강하면 당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철회했다"며, "그 대신 운동이 충분히 강해진 토대 위에 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나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다. 사람들을 믿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을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변화를 위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공황시대 미국의 노조연합체가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새로운 노조운동이 일어나서 문제에 대처했던 경험을 예로 들면서 "기존의 노조운동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답은 다른 쪽에서 나타날 수 있다"며, 최근 미국의 이주노동장 운동 단체나 학생들을 통해 희망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랜즈버그 교수는 "미국은 메이데이가 기원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메이데이 행사를 하는 곳이 거의 없었으나 몇 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의 강력한 참여로 미국의 주요도시 대부분에서 메이데이행사를 되돌려놓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의 활동이 기존 노조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랜즈버그 교수는 "또 하나 희망의 조짐은 학생들이 노동운동에서 하는 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1980-90년대 국제이슈에 몰입했던 학생운동이 최근에는 노조나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몇몇 똑똑한 노조들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인턴쉽이나 여름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미나가 끝난 후 연구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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