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적군파, 극좌 테러리스트들의 기록
    By mywank
        2009년 06월 05일 04: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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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가 지나간다. 독재자가 지나가는 길을 경찰이 지키고 서서 시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한다.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내들이 독재자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통제선 안쪽에 나타나 환영의 뜻을 나타낸다.

    통제선 밖에서 독재자의 방문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비난과 야유를 보낸다. 그러자 이 사내들은 경찰이 지키고선 가운데 야유를 보내는 군중들에게 달려든다. 독재자를 환영하는 문구가 쓰여 있던 피켓은 순식간에 각목으로 쓰임새가 바뀌어 군중들을 향해 휘두르는 무기가 된다. 각목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 Der Baader Meinhof Komplex>의 한 장면

    시민들이 멀뚱히 보고만 있는 경찰에게 항의한다. 드디어 경찰들이 곤봉을 빼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민들을 향해 각목을 휘둘러대는 사내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내들과 합세해 군중들을 몰아내고 짓밟기 위해서. 기마경찰이 시민들을 내몰고, 살수차가 물을 뿜어 대는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이 와중에 한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1967년 6월 2일, 독일 ’68혁명’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느긋하게 가족과 친구들이 나체 해안에서 여가를 즐기던 세상이 이렇게 부서지고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독일 68혁명의 가장 치열한 시절로 끌려들어간다.

    나체 해안에서 여가를 즐기던 세상이 이렇게 부서지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감독 울리 에델의 2008년 작품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 Der Baader Meinhof Komplex>는 독재와 독재에 대한 항의가 폭압과 테러리즘으로 한 시대를 관통하며 어떻게 피의 역사를 써내려가는지를 그려내는 영화다.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독일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화제작이며, 올해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출품되면서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지만, 국제영화제에 솔깃해 하는 한국에서 보게 되리라는 소식이 아직까지 없는 영화다.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RAF)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 극좌 테러리스트 집단의 핵심인물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를 중심으로 급진적인 무장투쟁집단을 이룬 젊은이들이 테러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혁명적으로 이루고자 했다가 어떻게 스러져갔는지를 보여준다.

    이 무렵 냉전시대의 첨예한 각축장이었던 독일은 안으로는 여·야 연합체인 대연정이 출범해 의회의 정부 견제 역할이 축소되면서 의회 무용론이 제기되어 의회 밖 반대파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밖으로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추악한 전쟁에 대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호치민, 마오쩌뚱,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국제적 비판에 동조하면서 국제적인 반전운동과 함께 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한 대학생이 공권력의 총구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베를린 시 정부와 경찰은 다음날 아침까지 오히려 경찰이 사살되었다며 사건을 은폐하려다 시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당국은 거대 언론의 입을 빌어 그 대학생의 죽음을 시위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다.

    정부와 경찰은 진실을 은폐하고

    이렇게 공권력이 항의의 목소리를 막고, 거대 언론이 진실을 호도하며 외려 백색 테러를 조장하는 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는 이제 ‘항의’가 아니라 ‘저항’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면서 테러리즘이라는 출구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돌멩이 한 개를 던지는 것은 단순한 폭력 행위지만 천 개를 던지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이고, ‘항의’란 무슨 일을 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이지만, ‘저항’이란 어떤 일을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안드레아스 바더와 구드룬 엔슬린이 이끄는 젊은이들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백화점을 폭파하면서 적군파의 테러가 시작된다.

    비판적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가 이들을 만나 뜻과 행동을 같이 하는 동안, 동조자가 모이고 테러의 범위와 수위도 점차 대담해진다.

    팔레스타인까지 찾아가 테러 훈련을 받고, 은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 보수적인 신문 빌트지를 발행하는 슈프링어 출판사며 독일 내에 주둔한 미군 기지를 폭파하고, 조직원이 살해당하면 보복 암살도 불사한다. 피가 피를 부르는 가운데 독일 젊은층의 25%가 넘는 사람들이 이들을 지지한다.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 Der Baader Meinhof Komplex>의 한 장면

    서독 정부와 경찰은 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더욱 강력한 통제를 시행한다. ‘물을 전부 빼면 물고기는 위로 뜨게 되어 있다’며 검문과 검색을 강화하고, 모든 국민의 신원을 전자등록제로 바꾸어 일상의 모든 영역을 감시하는 정책을 편다. 결국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직원이 검거되어 뿔뿔이 수감된다.

    ‘물을 전부 빼면 물고기는 위로 뜨게 되어 있다’

    정부 당국과 경찰은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수감된 적군파 지도부들이 경찰의 가혹행위와 반인권적인 독방 수감, 비민주적인 재판절차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이는 동안 한 사람이 감옥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감옥 밖에서 조직원들이 더욱 처절한 테러로 맞서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뮌헨 올림픽 참사, 해외주재 독일 영사관 점거 방화 테러,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사건, 정재계 요인 납치 암살 등이 이어지는 동안 감옥 안에서 울리케 마인호프를 시작으로 안드레아스 바더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은 자살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그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믿었다.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이런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을 따라가면서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기만 할 뿐, 해석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성격이나 발언, 행동의 계기나 내면의 갈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을 둘러싼 세계는 수많은 기록영상들을 통해 차곡차곡 짚어낸다. 베트남에서 처형당하는 민간인, 라틴 아메리카에서 죽은 체 게바라, 뮌헨 올림픽에서 죽어간 운동선수들, 적군파의 폭탄테러로 피투성이가 된 미군의 모습.

       
      

    이미 잘 알려진, 그러나 여전히 충격적인 뉴스릴들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자료화면으로 깔려 있다. 이런 기록들이 내면의 목소리 없이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만 표현되는 등장인물들이 연기하는 일대기와 만날 때, 영화는 관객을 무력하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고, 독재와 억압이 부르는 폭력도 여전하며, 세계정세는 늘 위태로운데 십 년을 싸우다 죽은 바더 마인호프 집단의 뜻을 잇던 적군파가 1998년에야 비로소 해체 선언을 했다는 것이 영화적인 볼거리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를 통해 돌아다볼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극적 재현이나 정교한 시대적 고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시대가 만나서 빚어내는 사건이 지속되는 과거로서 여전히 현재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 것은 물론 관객의 몫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어떤 상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책임이기도 하다. 영화는 단지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비추고, 들려줄 수도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1998년, 마침내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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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서 미처 들려주지 않은 적군파의 1998년 해체 선언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우리가 깔끔하고 오류 없는 역사로 회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배자들에 의해 설정되고, 시민적 사회에 의해 내재화된 한계를 넘어서려 시도했다.

    적군파는 해방을 위한 어떠한 길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에 대한 사고가 오늘날 존재하는 데 20여 년 이상 기여해왔다. 모든 세계에 자유와 해방, 존엄이 아닌 지배와 억압이 존재하는 한 체제문제를 제기하였고, 이런 제기는 정당하다.

    우리는 우리 역사의 이 순간에 모든 이들과, 지난 28년간의 도정에서 우리에게 연대를 보내주었던 이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원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우리와 함께 투쟁했던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모두 해방을 향한 미지의 그리고 뒤엉킨 길에서 다른 많은 이들과 함께 서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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