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이런 얘기 해주길 바랐다”
        2009년 06월 05일 03: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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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사실 잘 모르고 있던 내용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30원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도, 쌍용자동차에서 2천명이나 넘게 정리해고 당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도 (진보신당에서)이렇게 얘기해 주니까 이런 일이 있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40대 초반, 회사원)

    "박종태, 쌍용차 얘기 여기서 알았어요"

    5일 정오, 구로디지털단지. 주로 IT업계가 밀집되어 있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거리로 나선 ‘샐러리맨’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한 손엔 커피, 다른 한 손엔 휴대폰을 쥔 이들의 황금같은 점심시간을 멈춰 세운 것은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절규 섞인 판넬과 영상물이다. 이들은 그 곳에서 발길을 떼지 못했다.

       
      ▲국정기조변화 요구 판넬에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들(사진=정상근 기자) 

       
      ▲’이명박 정부 사과-내각 총사퇴-국정기조 변화’ 요구에 서명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진보신당 중앙당 당직자들과 구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들입니다. 저희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민생파탄도 모자라 민주주의까지 붕괴되는 현실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힘이 모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이곳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시국연설이 있을 예정입니다. 잠시만 발길을 멈추고 서명운동에도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의 안내에 따라 발길을 멈춘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 사과-내각 총사퇴-국정기조 전환’ 등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고 ‘국정기조를 전환해야 한다-안한다’는 거리 여론조사에서 스티커 붙이기로 민심을 드러냈다. 중년의 한 여성은 서명을 하다 “남편 것도 내가 (서명)하면 안되냐”고 물을 만큼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남편 것까지 서명하면 안 되냐?"

     12시 30분 경, 노회찬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처음엔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연설차량에서 눈과 귀를 집중했다. 연설이 시작된 이후 150여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발을 떼지 못했다. 여느 정치행사처럼 연호도, 박수도 많지 않았지만, 팔짱을 끼고, 커피를 들고 노 대표의 연설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고 또 진지했다.

       
      ▲노회찬 대표(사진=정상근 기자) 

    노 대표의 이날 연설은 “국민들께 안녕하시냐는 말이 안 나온다. 무엇이 전직 대통령을 자살까지 몰고 갔는지 국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

    노 대표는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물러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죄의 의미로 내각 총사퇴를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이어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벤트를 위해 내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청계천 이벤트, 대운하 이벤트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모든 것이 이벤트로 보이나? 노 전 대통령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도 이벤트고, 500만명의 조문객도 이벤트인가? 여러분들이 지금 이벤트를 한 것이냐”며 분노를 터트렸다.

    노 대표는 “경제라도 살리라고 했더니, 제일 먼저 부자세금을 깎아주고 복지예산을 줄이고 있다.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나? 자꾸 경쟁을 강조하는데 그건 동물의 왕국이지 인간의 왕국이 아니다. 우리는 사자와 토끼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바란다. 30원 때문에 사람이 죽고 쌍용차에서는 2천명이 넘게 해고통지를 받았다. 해고는 살인이다”고 말했다.

    "5백만 조문객도 이벤트냐?"

    노 대표는 “게다가 민주주의 역시 5공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한열, 박종철,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건드리고 있다. 철학-자신감-의지가 없으면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누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독재자의 임기를 보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30분이 넘는 노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발을 떼지 못하고 있던 150여명의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박수치는 표정들은 그러나 여전히 심각했다. 활짝 웃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30대 여성 회사원은 “저번 <PD수첩>을 보니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너무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느꼈었다. 오늘 연설도 듣다보니 점점 기분이 암울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정치가 현실을 바꿔야 할 텐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의지할 수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진보신당을 포함해 양심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음 투표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고 박종태 화물연대 지회장 사건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40대 회사원은 “나는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었고, 초반 그의 정책들도 지지했었다”며 “그런데 요새 서울시청을 (경찰)차로 막아서는 것을 보면서 저런 것은 좀 아니다 싶다. 무엇인가 이 정부가 오픈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150여명의 시민들이 노 대표의 연설을 듣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심각한 표정으로 연설을 듣는 시민들(사진=정상근 기자) 

    노회찬 "반응 굉장히 뜨겁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중소기업 자문업을 한다는 50대 남성은 “저거 다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주말마다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 있었나? 자기 월급 어려운 사람 주라고 기부하는 대통령이 있었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저게 뭐하는 것인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연설을 듣고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서 있었다”며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연설은 할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면 곤란하다. 들어보니 독재, 독재 하던데 6.29선언 이전에는 저런 말이 통하겠지만, 지금 그 말이 통하겠나”며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쨌건 지난 3일 간 거리연설을 이어간 진보신당은 고무된 모습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어제 저녁 명동에서는 이런 연설회에 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20대 여성들까지 서명을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을 봤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의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공감대가 넓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김영희 부대표도 “시민들이 길 가던 중에도 서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서서 연설을 듣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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