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새벽, 그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2009년 06월 05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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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맨발산행’에 올린 글을 수정하여 기고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지난 일요일 밀짚모자를 쓰고 맨발산행을 나갔다. 아버지는 박정희의 밀짚모자를 떠올리고 아들은 노무현의 밀짚모자를 떠올리는 듯했다. 아니 나 혼자 두 사람이 썼던 밀짚모자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묻는다. "발 안 아프세요?" "예, 아픕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조심스레 되묻는다. "어디 편찮으셔서 맨발로 등산하세요?" 암수술이라도 받은 사람인가 하여 묻는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예, 마음이 좀 아픕니다." 인정많고 호기심 많은 아주머니는 왜 마음이 아픈가를 묻고 싶지만 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덧붙였다. "며칠 전에 이십여년 짝사랑하던 사람이 데이트도 한 번 안 해주고 먼저 저 세상 가버렸어요."

    그렇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가버리고 말았다. 실망과 원망, 그리고 뒤엉킨 온갖 상념에서 벗어나려고, 가학과 자학의 본능적 몸짓으로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

       
      ▲ 사진=사람사는 세상

    지난 20여 년, 그 사람의 많은 행동들에 대해 찬성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삼류 정치평론가가 보는 상황은 그가 아니라 그의 적들이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밑바닥 국민정서는 이미 "이명박이가 너무 심하다"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나의 이런 속된 합리와 타산을 넘어서, 생사의 경계를 너머 멀리 보았다.

    나는 왜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원망하는가?

    이미 이승을 떠난, 그리고 정치를 떠나 종교의 영역으로 올라간 그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정도의 치욕과 외로움도 이기지 못한 그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선거에 나가서 여러 번 낙선하였지만 패가망신하여 영혼을 팔아서라도 자식의 학비를 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것 같았다. 대통령이 되어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나는 선배들 중에서 김근태보다 장기표에게, 장기표보다 이부영에게, 이부영보다 노무현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운동권 핵심으로부터 거리가 먼 사람에게, 운동권 사투리와 사고방식에 덜 절었던 사람, 중심보다는 주변에 있는, 대중의 정서에 더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를 걸었다는 이야기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의 인격과 능력에 대한 건방진 판단은 아니었다.

    1987년, 그는 비판적 지지론의 대표적 이론가 이해찬을 상대로 논쟁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그는 김근태, 이해찬 등 당시 ‘운동권’ 주류의, 정파적으로 왜곡된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학생운동에서 DJ 지지를 지시하는 대남 방송을 듣는 ‘주사파’가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하였으니 민주화세력 가운데 이른바 ‘현실정치세력’ 이외의 ‘운동권’ 가운데 태반이 이른바 ‘비판적 지지파’였다.

    그는 부산 촌놈이자, ‘운동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주변적인 멤버의 소박한 사고로 독자 정치세력화 논리에 지지를 보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스카웃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이 또한 운동권 핵심 멤버라면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는 곧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간절하게 바라고, 여러 사람에게 나의 바램을 말하기도 하였다.

    "아, 그가 진보정당에 합류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 우여곡절 끝에 이제 그가 퇴임한 대통령, 국가 원로, 청문회 스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다시 한번 진보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했다. 본인도 퇴임 직전에 자기는 "퇴임 후에는 진보정당을 돕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또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젊은 그가, 부지런한 독서가인 그가 머지 않아 사회민주주의자로 진화할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이 나라에서 지독하게도 외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가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나는 그를 우리들이 만드는 ‘사회민주주의연대’의 고문으로 모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시 나를 실망시키고야 말았다.

    그가 훌쩍 떠났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살다 갔다. 굳이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자를 넘어서서 사회민주주의자로 진화하는 도중에 갔다. 가까운 장래 국가 원로로서 그가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하였다면,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라는 두 세력의 대립구도를 벗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을 텐데, 그는 그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갔다. 오호 통재라!

    그날 새벽, 그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맨발로 걸으면서 그를 생각하다보니 궁금해졌다. 잠을 이루지 못한 그날 새벽, 그 사람은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싶었을까? 그는 남은 인생,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싶었을까? 그는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유러피언 드림』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진보주의’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 홍보기획비서관 양정철과 전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이 전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진보주의’는 미국식 사회민주주의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대서양을 건너면서 변한, 미국의 압도적인 개인주의 사회 풍토에 적응하여 뿌리내린 사회민주주의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진보주의 연구에 천착하였다고 하니 경제 위기와 오바마 당선으로 미국에서 불어오는 진보의 바람을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함께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도 읽었다고 한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비공개 연구카페에 실린 글 여러 편을 공개하였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4월 13일자 글에서 그는 "한국에도 진보주의의 역사가 있었는가?"를 묻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를 묻고 있다. 자신의 집권 시기를 ‘진보주의’라는 기준으로 돌아보려고 한 것 같다. 그 동안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4월 13일, 그는 다른 글에서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를 묻기도 했다. 또 3월 9일에는 올린 글에서는, "총장 직선제를 채택했던 대학교 중에서 아직까지 총장 직선제를 하고 있는 학교는 얼마 남지 않았"고 "교수들도 선거 때 일어나는 잡음과 후유증 때문에 직선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사실을 가지고 민주주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묻고 있다.

    노무현의 화두,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민주주의의 한계’라는 화두가 제기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즉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절부터 중우정치, 금권정치, 선동정치라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선거로 뽑힌 엘리트들의 깊이 있는 토론이라는 공화주의적 요소, 또는 선진국 정치에서처럼 지식인이 이끄는 정당이라는 현대의 군주, 즉 철인정치적 요소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두 가지 정치철학에 따라 무리지은 지식인 집단들이 정당을 만들어서 대중의 선택과 판단, 위임에 의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현대민주주의 정당정치는 단지 민주주의라는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때, 문제의 핵심은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올해 초 연구를 제안하면서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굳이 말하면 틀렸다.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 지식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 자기 발등을 쳐다보며 열심히 걸을 때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지식인과 그들의 집단으로서 정당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 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학진학율 85%의 나라에서 지식인, 정치인과 대화와 소통이 안 되는 국민, ‘미디어를 통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국민’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간혹 책을 사서 보내드린다는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에게, 조원희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만든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과 스톤이라는 미국 언론인이 쓴 『소크라테스의 비밀』을 사서 보내드리라고 부탁한 것은, 우연이지만 틀리지 않았다.

    왜 그토록 그 사람을 다급하게 몰아부쳤는지, 이명박 정권은 무엇에 쫓겼는가? 여유를 주어야 독서도 하고 사색도 하고 반성도 할 것 아닌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계속되는 촛불시위에 굴복하여 대국민 사과를 한 이명박 대통령이 저 많은 초는 무슨 돈으로 샀을까를 생각하다가(우리나라 국민들을 50년 전의 가난한 국민들로 착각하였는지), 자금의 출처를 캐라고 지시하여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를 민주화세력이나 ‘노무현 잔당’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으로 오인하였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고, 오해이며, 콤플렉스다. 실상 촛불시위는 민주화운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여중고생들이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세력은 머리를 숙이고 그 자리에 조심스레 끼어든 것이다. 이 너무 빨리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이 비극의 뿌리다.

    한국의 지식인, 우리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그는 세계사의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를 물었다. 세계사의 시계로 본 한국의 시각을 물었던 것이다. 그는 더 멀리 내다보고 싶었다. 그의 마지막 연구 메모는 5월 15일의 "수소 경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분명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라는 대립구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를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대립구도에 가두어버렸다.

    그 감옥 속에서 그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윤태영은 전한다. "내가 글도 안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다운 솔직한 토로이고 갇힌 사람의 심정이 절박하다.

    결국 그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는 민주화세력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산업화세력의 순교자인 박정희에 견줄만한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그의 후광을 배경으로 박근혜만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가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한국정치는 오랫동안 그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언제든지 새로운 대립구도가 주어지면 과거의 대립구도를 잊어버리는 국민이 아니다.

    이제 나는 밀짚모자는 쓰지 않으련다. 박정희도 노무현도 잊고 싶다. 올해는 부마항쟁 30주년이다. 지난 30년 동안을 돌아보면, 앞으로 30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스웨덴보다 더 살기좋은 나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하늘처럼 크고 복잡하며 물처럼 흘러가는 마음을 가진 국민들은 여러 구도를 동시에 품지만, 단순한 지식인들이야말로 문제다. 지식인들이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 사진=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을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준 것은 이명박이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거부한다는 것은 거대한 추모 행렬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정부가 여기에 대해서 구질구질한 이의를 단다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불행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무리하게 민주주의와 평화적 남북 관계의 성과를 후퇴시키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보에 힘을 보태겠다는 노무현의 약속은 누가 이행할 것인가? 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도 국가 원로의 한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읽던 리프킨의 책을 물러받아야 할 사람은 이해찬이다. 이해찬이 이제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해찬의 사회민주주의자로의 개종을 기다리면서, 박해와 조롱과 외로움을 인내할 것이다.

    나는 왜 오해를 받아가면서 굳이 ‘노동당 노선’의 포기를 선언하였는가? 내가 영국노동당, 호주노동당 같은 노동당을 만들어서 한국 정치를 뒤집어 엎어보자는 ‘노동당 노선’을 포기한 것은 1987년부터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노선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비판적 지지 노선’의 반성의 화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파와 독자정당파의 오랜 갈등을 정리하고 벽을 허물어 진보의 새로운 길을 함께 열자는 것이다.

    나는 애매한 정치연합이 아니라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유-노동 연합’ 정당을 제안하였다. 각자가 자기의 이념적 순수성을 지키되 정치는 현실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들은 원래 진보세력인데 아직은 ‘민족민주운동’을 할 때라 ‘비판적 지지’를 한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제안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 짝사랑은 다시 실망으로 끝날지 모르겠다.

    2009년 6월 2일자 <한겨레>에서 박명림 교수는 ‘자유-노동 연합’이 노동 진영의 편협함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시사하였지만, 정당을 달리 하는 한 서로의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 있다. 진보적 정치학자들은 이제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유-노동 연합’의 단일 야당을 전망해주기 바란다. 그런 정치 전략을 전제한다면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이제 현실 정치적 제약이 없이 오히려 넓게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이제 미국이 아니라 유럽으로 눈을 돌리자!

    200년 전부터 유럽의 하층민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들은 기회의 땅 신대륙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였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조국을 사랑하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유러피안 드림’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에 읽었던 리프킨의 저작 『유러피언 드림』의 논지다.

    『유러피언 드림』이 말하는 메시지는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눈을 유럽으로 돌리자.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부자와 기업의 감세, 기업과 금융에 대한 자유 방임 등 사회경제정책은 파탄이 났다.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은 미국에서도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식 복지제도, 미국식 의료제도, 미국식 교육제도는 더 이상 미국에서도 작동되지 않는다. ‘미국예외주의’는 끝났다.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인이 되었듯이, 조선인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살아남아 한국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닮은 코리안 드림을 성취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코리안 드림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프킨이 말하는 유러피언 드림을 만난 코리안 드림만이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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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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