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1일, 아직 끝낼 수 없는 투쟁
    By 나난
        2009년 06월 04일 08: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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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4일로 1,381일을 맞았다. 횟수로 5년을 넘기며 기나 긴 투쟁을 이어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커녕 노사간 교섭조차 중단된 상태다.

    기륭전자는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권고안을 받았다. 정부가 아닌 사측에 대한 ILO의 권고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믄 일이지만 기륭전자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ILO, 법원, 인권위 권고 모두 거부

    여기에 지난 5월 말,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고법재판에서 남녀 임금 차별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자들이 해온 조립공정과 남자들의 일이 동일노동이므로 미지급 임금을 배상하라’고 권고했지만 사측이 이에 불복,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이 인권위의 권고가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중간 착취 노동과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비열한 차별과 빈곤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당함을 확인한 것”이라면서도 “기본 인권에 대한 정당성도 확인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200여명의 해고와 상처투성인 몸뿐”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기륭분회는 더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외적으로 기륭전자의 불법파견과 편법고용이 확인된 만큼 그에 응당한 책임을 사측이 져야 한다는 것. 기륭분회는 ▲불법파견 책임 ▲차별임금 지급 ▲ILO권고안 수용 등을 요구하며 4일 기륭전자 신사옥 앞 1박2일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또 오는 10일부터 ILO 총회와 OCED 각료회의 원정 투쟁을 전개한다.

       
      ▲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ILO총회, OCED 각료회의 원정투쟁에 앞서 4일 1박2일 노숙투쟁을 전개했다.(사진=이은영 기자)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은 ILO 총회와 OCED 각료회의 원정 투쟁을 위해 오는 8일 출국한다.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파리를 돌며 세계 각국에 한국의 비정규직 실태와 기륭사태의 부당함을 알릴 예정이다.

    그는 “ILO 총회와 OCED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의 노동조합 대표들과 정부를 상대로 선전전과 서명활동 등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94일 단식투쟁도 무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상징이 된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생산직 노동자 200여 명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많은 64만 1,850원의 월급을 받고, 3개월, 6개월 단위의 계약을 맺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2005년 7월 31일 ‘잡담’ 등의 이유로 ‘문자 해고’를 당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갔고 사측은 직장 폐쇄를 강행했다. 지난 2005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졌지만 사측은 벌금 500만 원으로 법적인 책임을 벗어났다.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와 구속, 54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신청이 돌아왔다.

    그들은 최장 94일 단식을 비롯해 서울시청 앞 18m 높이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였고, 삭발도 했다. 기륭전자에 수주를 주고 있는 미국 시리우스 본사에 원정투쟁까지 갔다. 복직 투쟁을 하던 중 암이 발병해 소중한 동지도 잃었다.

    하지만 기륭전자 사측은 여전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2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도 30여명으로 줄었고, 현재 7명의 조합원만이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노조를 떠나 재취업한 조합원들 역시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고자들의 지금은

    지난 3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와 함께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최근 3~4년간의 취업 추이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륭전자의 경우 조사한 인원 34명 중 11명이 실업상태에 있어 실업자 비율이 32.3%가 되고 11명 중 장기 실업(1번 취직을 했거나 아예 하지 못해 2~3년 이상 실직상태에 있는 사람)자가 6명이나 됐다.

    또 정규직 취업 현황을 보면 8명을 차지해 23.5%나 되지만 내용을 보면 14시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2명, 12시간 봉제공장에서 일당제로 일하는 사람이 1명,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명, 1인 매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 명 등이라 실질적 의미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연 분회장은 “정규직이라 해도 대부분 직종이 식당 종업원이나 2~3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가 대방동 신사옥으로 옮긴 이후에도 구로동 구사옥 앞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5년을 끌어온 만큼 향후 얼마 만큼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기륭전자분회 이미영 조합원은 "다른 투쟁 단위들과 연대에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며 비록 7명의 조합원만이 남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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