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명박산성을 넘을 것인가?
        2009년 06월 05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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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10일 백만 촛불이 만든 불길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날, 이명박은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를 쌓아 그 불길이 청와대를 삼키는 것을 막으려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명박산성’이라고 불렀고, 처음에 명박산성은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또 사람들은 모래주머니와 스티로폼을 쌓아 명박산성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밤새워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어 더 나아가지 못했고,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명박산성은 점차 촛불을 가두는 견고한 감옥이 되었다. 경찰 버스는 광장을 빼앗았고, 집회는 불허되었다. 경찰은 물대포로 방패로 곤봉으로 색소로 공격해왔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얻어터지며 끌려갔다. 촛불만 붙여도 피켓만 들어도 구호만 외쳐도 불법이 되었고, 전경과 경찰버스에 의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빼앗긴 현실이 점차 일상이 되었다.

       
      

    끝내 만나지 못한 촛불과 총파업

    촛불이 만든 광장은 노동운동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노동운동이 일반 시민들과 괴리되어 고립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은 언론에 의해 왜곡돼 전달되기 일쑤였고, 관성이 된 집회와 투쟁문화는 시민과의 거리를 더 벌렸다.

    조직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넘어 비정규직 등 전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오래 전부터 ‘위기’가 이야기되고, 여기 저기서 비판에 직면해 있었지만 운동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노동운동이 일반 시민과 만나 하나가 되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촛불 광장에서 벌어졌다. 처음에 촛불은 노동자의 깃발을 거부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촛불 스스로가 깃발을 만들어 들기 시작했고 촛불과 깃발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은 허물어졌다. 민주노총 게시판이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격려글로 넘쳐나는 어리둥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고, 민주노총은 끝내 총파업을 하지 못했다. 사실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은 시종일관 촛불에 시큰둥했다. 촛불보다 당장 자기 앞에 닥친 먹고사는 문제인 잔업, 특근 한 대가리 더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총파업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결단에 의해 조직되어야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총파업’이란 말 뒤에 ‘을 비롯한 총력투쟁’이란 말이 따라붙었듯이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력을 다해 총파업을 조직하지 않았고, 결국 형식적인 총력투쟁으로만 그쳤다. 그러는 사이 촛불은 경찰 버스에 막히고 경찰 방패에 밀려나 하나 둘 일상으로 돌아갔다.

    노란 풍선, 노란 촛불

    이명박의 충실한 하수인인 검찰의 보복수사에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전국 방방곡곡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애도와 추모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 물결은 단지 전직 대통령을 사랑하거나 애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실로 거대한 규모였다. 그 물결 속엔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와,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 그리고 이명박에 대한 저항의 감정이 구분할 수 없이 뒤섞여 있었다.

    수십만이 운집해 전직 대통령의 운구를 떠나보낸 날, 사람들은 밤을 새워가며 오랜만에 되찾은 광장을 지켰다.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노란 풍선은 곧 노란 촛불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경찰 버스만 없어진다면 광장은 언제든지 다시 촛불로 뒤덮일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반대로 이명박에게는 5년 내내 경찰버스로 광장을 봉쇄해야지만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장례식 다음 날 새벽부터 전경들이 대한문 앞 시민 분양소를 폭력 철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파업으로 명박산성을 넘자

    문제는 여전히 명박산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에 있다. 이명박이 쌓은 명박산성을 뚫고, 광장을 둘러친 경찰버스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촛불은 다시 모여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박산성을 넘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고 현실적인 방법은 총파업이다. 2008년 촛불이 열어놓은 광장에서 끝내 총파업이 촛불과 만나지 못했다면, 2009년엔 총파업으로 광장을 되찾아 촛불이 다시 모여들게 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총파업과 촛불이 만나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폭력 사건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밑바닥까지 추락한 민주노총이었다. 용산 망루 위 다섯 철거민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특별하지 않은 사람’ 화물 노동자 박종태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사실 민주노총에게 지금의 상황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여기에 건설 노동자가, 화물 노동자가, 철도 노동자가,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금속 노동자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열사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이 투쟁들을 모아 ‘총파업’을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있다.

    이번에는 꼭 총파업과 촛불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총파업으로 명박산성을 넘지 못한다면, 그래서 이번에도 촛불과 만나지 못한다면, 나중에 광장을 다시 되찾는다고 해도 노동운동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또다시 현실을 탓하려 하는가. 민주노총 지도부의 결단과 지도부가 앞장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실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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