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닌주의 넘어선 좌파 대안정당 필요”
        2009년 06월 05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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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피렌체 대학의 유럽현대사 담당 교수인 폴 긴스버그가 아일랜드의 좌파 저널 <Irish Left Review>와 가진 대담을 번역한 것이다. 긴스버그 교수는 본래 영국 출신으로,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와 정당 정치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그 자신 적극적인 좌파 정치운동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이탈리아 현대사』는 연말쯤 후마니타스 출판사를 통해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아래 대담은 그의 최근작 『민주주의: 위기와 갱신』을 화제로 삼고 있는데, 이 책의 주제 자체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 좌파 정치 문화의 갱신인지라, 지금 우리의 고민과도 직결된 내용이 많다.

    특히 작년 촛불운동으로 촉발된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문제, 정당운동과 대중운동의 문제가 지구 저편에서도 역시 화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내용은 분량상 번역에서 제외했음을 밝힌다. – 역자 주

    : 선생이 최근 낸 책 제목이 『민주주의: 위기와 갱신』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야. 도대체 뭐가 위기야?” 왜냐하면 서구식 민주주의가 지금 한창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요.

    순전히 지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이제 매우 적은 고립된 예외를 제외하면 유럽 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지요.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한때 독재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던 나라들에서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어요. 선생이 말씀하시는 위기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 주된 측면이 뭐죠?

    민주주의의 위기 – 민주주의 제도의 신뢰 상실

    : 민주주의의 역설이 존재합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이런 저런 형태로 민주주의가 양적으로 확장되고는 있죠. 하지만 민주주의의 질 측면에서는 정말 위기에요. 특히 그 고향인 유럽에서 말이죠.

    위기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가장 중요한 측면은 의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중의 여론이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거리감일 것입니다. 우린 이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어요.

       
      ▲ 대담 중인 폴 긴스버그(왼쪽)

    그 한 형태는 이런 겁니다. 스웨덴이든 영국이든 이탈리아든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어요.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라, 이건 또 다른 주제죠,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말이죠.

    의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어요. 사람들은 현대의 의회가 제 역할을 하리라고,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리라고, 투명하게 작동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투표율이 떨어지고, 정치인들에 대한 심각한 냉소주의가 나타나죠.

    이것들이 우리가 쉽게 지적할 수 있는 위기의 몇몇 요소들이에요. 그 결과 대의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정말 허약한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시야를 유럽연합으로 확장해본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왜냐하면 지난 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동유럽의 투표율이 심각하게 낮았거든요.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투표율이 좀 높았던 곳에서도 사람들은 유럽연합 상임위원회와 장관회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유럽 시민 전체 사이에 벌어진 민주주의의 간극에 극심한 실망감을 드러냈어요.

    : 그럼 어떻게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죠?

    : 글쎄요, 제 책의 주장은 우리가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모델에 대한 토론을 다시 해야만 한다는 거죠. 아테네 모델로 돌아가서 말이에요.

    아테네 모델을 그대로 이어받거나 따라할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든 정치 제도에서든 지방정부나 새로운 형태의 참여 민주주의를 통해서 민중이 자기 삶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갖게 하자는 토론이 계속 있었거든요.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열렬한 토론들이 있었죠.

    저는 제 책에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와 여타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이 주제를 탐구했습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수백만의 주민들이 참여예산제와 같은 것들을 실험했지요. 민중들이 회의 참석과 투표를 통해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어요.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가 결코 제공해주지 못했던 것이죠.

    민주주의의 갱신은 직접 참여 민주주의로부터

    : 사람들이 대규모로 정치에 참여하리라 기대하는 게 과연 현실적일까요? 대중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사생활을 챙기길 원하지 않나요?

    : 이게 바로 우리처럼 참여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앞에 제기되는 흔한 반박 중 하나죠. 저는 ‘아, 그건 어리석은 관점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어떤 측면에서는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충분히 숙고해야 돼요.

    사람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회의를 위해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이게 이야기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에 참여하고 시민사회에서 적극 활동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참여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매일은 아니고 삶의 모든 측면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 삶의 특정한 측면에 대해서나 특정한 계기에는 말이죠.

    저는 이런 종류의 참여에 주목합니다. 그게 시민사회의 참여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참여든 상관없이, 개인의 생활주기 곡선 안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으로요. 20대 때는 매우 적극적이고 관심이 높다가 아이들을 갖게 되면 뒤로 물러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가 다시 앞에 나서고 싶어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일종의 퇴적 작용이라 할 수 있죠. 민주주의 실천의 측면에서 그렇고, TV 앞에 머물러 있거나 가족 안에 갇혀 있던 데서 벗어나 뭔가를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국면에서, 이런 생각을 아주 낯설어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갱신의 한 사례 – 참여예산제

    :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 시에서 벌어진 참여예산 사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이게 실제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다른 나라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간략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 참여예산제는 유럽 곳곳에서도 실험되었는데, 그 결과는 다양했죠. 그 기본적인 작동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선 매년 연초에 인구 130만 명인 포르투 알레그레 시의 시장과 시의회가 대중 집회를 통해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전년도 결산을 보고합니다.

       
      ▲ 폴 긴스버그

    그러고 나서 1년간의 예산 작성 과정이 시작되죠. 매우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러니까 동 수준에서 주민들이 모여 최초의 요구안을 정리하죠. 그 다음에는 좀 더 큰 수준에서 주제별 회의를 열고요.

    마지막에는 시 전체 수준의 회의를 열어 예산안의 일부를 결정해요. 예산안 전체는 아니에요. 시의회 예산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인건비 등 경직성 비용이니까요.

    이러한 다양한 주제별 및 여타 회의에서 예산 평의회를 선출합니다. 이게 바로, 이 모든 예산 작성 과정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목이죠. 한편에는 전통적인 대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된 시의회가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위와 같은 지역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기층으로부터 올라온 예산 평의회가 있죠.

    그래서 이 예산 평의회의 40인의 대의원들이 여름 내내 시의회와 함께, 그리고 특히 시장과 함께 토론을 벌이면서 세부안을 다듬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요.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죠.

    예산 평의회가 주민들에게 그 결과를 다시 보고하면, 1년간의 예산 작성 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시장이 그 예산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행하기 시작하죠. 포르투 알레그레의 경우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리고 유럽의 실험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여기에 다수의 소수 인종과 함께, 남성, 여성을 가릴 것 없이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유럽에서는 참여예산제를 실험해보니까 주로 중간계급이 참여했지요.

    유럽과 미국의 가장 커다란 문제들 중 하나는 노동계급의 정치 참여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통해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정치에 참여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지요. 좌파는 뒤로 후퇴해버렸어요.

    레닌주의를 넘어선 대안적 좌파 정당이 필요하다

    : 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참여예산제가 등장하는 데는 마침 노동자당이 가톨릭 교회 내의 급진적 부분과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브라질의 대중적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 긍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참여예산제 같은 실험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작동할 수 있으려면 이런 형태의 정치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민주주의의 갱신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제기하는 민주적 좌파가 모든 유럽 국가들에 필요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정말로 조직이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는 불분명하죠.

    레닌주의 정당은, 전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제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거든요. 게다가 민주집중제는 기층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는 아주 부적절하죠. 문제는 전통적 정당들의 형태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정치 조직이 어떠한 형태를 띠어야 하느냐입니다.

    전통적 정당들은 말하자면 일종의 카르텔이었어요. 국가의 부에 접근하고 이를 관리하면서 유권자와 지지 집단에게 이것을 분배하는 식이었죠. 물론 저희들 몫으로 챙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보다 민주화하고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게 하며 보다 투명하게 만드는 방향에서 대안적인 좌파 조직에 대해 전혀 새롭게 사고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례가 정말 적어요.

    : 선생은 위의 책에서 민주주의를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데 핵심 구성 요소로서 경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데요. 무슨 의미죠?

    : 네,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 현장에서 노동 조건이나 소속 기업의 전반적 전략에 대해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선출한 대의원들을 통해서 노동 시간 중에 회의를 열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 민주주의의 한 사례 – 이탈리아 노동자 평의회

    제가 염두에 둔 모델은 1970년대 이탈리아에 존재한 노동자 평의회예요.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서 노동자 대의원들이 공장의 모든 수준에, 모든 쟁점들에 대해 개입했지요. 그 쟁점들 중에는 보건과 안전 같은 것뿐만 아니라 식당 문제 같은 것도 있었고 노동 시간 중에 총회를 여는 것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죠.

    노동 시간 중에 총회를 여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을 권리도 있었어요. 이것은 ‘150시간 교육제’라고 불렸죠. 노동자들이 연간 150시간 동안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졌던 거예요. 그래서 공장에서 일할 때도 좀 더 천천히 일하거나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이것은 1971년부터 1976년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이때는, 제 생각에는, 이탈리아뿐만 유럽 전체에서 경제 민주주의의 최전성기였지요. 그람시 시절로부터 50년, 60년이 지난 토리노에서 이걸 정말 실감할 수 있었어요. 거기에는 대안적인 정치 문화가 존재했고, 대중적 차원에서 대안적인 정치 리더십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 말에 중단되었죠. 1968년의 운동 전체가 그랬던 것처럼요.

       
      ▲ 강의실의 폴 긴스버그

    : 1970년대에 이탈리아 사용자들은, 선생이 이전 저작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서술한 대로, 노동자 평의회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공장 평의회의 존재를 결코 반기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아주 달갑지 않은 간섭으로 보았던 거죠.

    1970년대에 존재한 것과 유사한 모델이 압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경제 체제와 장기간 공존할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대안적인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는 의미인가요?

    : 네, 현존 자본주의 형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지난 몇 달간의 경제 위기도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나 그 실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지요.

    마이드너 구상 같은 평화적인 탈자본주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려운 점은, 적어도 저의 경우에 어렵게 느끼는 점은, 어떻게 평화적인 방식으로 현존 경제 체제를 넘어서고 그것을 변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1970년대에 알도 모로가 암살당하고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이 만연한 이후[역주 –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극좌 테러단체 ‘붉은 여단’이 기독교민주당 좌파 소속 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해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좌우 양쪽에서 테러 행위가 빈발했다], 이탈리아 좌파는 대부분 폭력적 수단에 등을 돌렸어요.

    평화의 문화에 기반하면서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수파를 형성할 힘을 획득하고 그래서 설득과 대중 참여의 힘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을 구축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그런 사례는 아직 없죠.

    197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는 마이드너 구상[역주 – 루돌프 마이드너의 임노동자기금 구상]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공장의 주식을 점차 더 많이 소유하게 해서 결국에는 공장의 전반적인 소유권이 소유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만들자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노동자들 자신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고 노동조합 등의 대표로 구성된 지역별 위원회가 소유 주체가 되는 식이었어요. 매우 비범한 계획이었지요. 하지만 어디서도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뭔가 일이 되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경제 체제에 대한 대중적 거부의 거대한 충격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 텐데,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이런 대중적 거부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죠.

    1968~69년의 운동은 실업률이 최저점에 도달한 상태에서 일어났죠. 반면 나치즘은 실업률의 최고점에 등장했어요. 따라서 2008년과 2009년의 전 지구적 대위기가 훌륭한 기회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는 거지요.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 선생이 주장하시는 개혁 프로그램은 유럽에서 좌파가 재생해야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유럽 좌파의 약점은 뭐라 보십니까? 이게 매우 광범위한 질문인 줄은 알지만, 두 세 가지 주요 측면들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제 책에서 제기하는 핵심 문제[민주주의의 갱신]가 바로 이 재건의 한 가지 측면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민주주의의 갱신이 모든 운동의 토대가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경제적 사고의 갱신과 경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 이제는 다들 자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안 경제 체제는 어떤 모습일지, 연금기금의 힘은 무엇인지, 협동조합의 힘은 무엇인지, 묻고 있지요. 정말 절박하게,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고, 제안이 필요하고, 그 제안을 조직된 형태로 실행하는 게 필요합니다.

    1940년대, 50년대, 60년대 이탈리아 공산당이 매우 강력했던 때에는 말이죠, 일개 평당원이라 할지라도 일요일 아침이면 <루니타> 신문[역주 – 이탈리아 공산당이 내던 일간지. 제호의 뜻은 ‘단결’]을 팔러 나갔고, 자신의 실천이라는 소우주가 이탈리아를 마침내 사회주의로 이끌 보다 거대한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사실 이것은 결국 두 머리 괴물과 같았습니다. 진실이 아니었죠. 그 시대에 공산당은 점차 더욱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갔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 핵심은 현실적 외양을 띤 행동 프로그램을,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자기-조직화와 참여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목표들과 서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중에게, 대안은 분명 존재한다는 신념을 불어넣는 거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 전통의 유산,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유산입니다.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종합 혹은 21세기 벽두의 자본주의에 대한 참으로 새로운 분석은 아직 존재하지 않아요. 지금 이러한 토론들이 가능한 한 최대로 격렬하게 폭발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베를루스코니의 성공 비결과 이탈리아 좌파의 지리멸렬

    : 요즘 이탈리아는 선생이 서구 민주주의의 부정적 흐름이라고 규정한 것들 중 다수를 압축해놓은 것만 같은데요. 베를루스코니와 그의 정치연합이 성공하고 계속 번성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이탈리아 좌파는 그와 맞서는 데 왜 그토록 취약한 것인가요?

    : 글쎄요, 이탈리아 좌파는 공산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에서 비롯된 가장 안 좋은 것들 중 하나는 항상 자격 증명서를 따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좌파를 더욱 더 허약한 상태로 만들었지요. 이게 한 가지 이유에요.

    또 다른 이유는 베를루스코니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동물적 본성을 아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영업자와 소규모 기업, 가족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요.

    특히 이 나라의 북부 지역, 즉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에서 그래요. 이들 지역은 북부동맹[역주 – 북부 이탈리아의 지역 분리주의를 내세우며 베를루스코니 세력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극우 정당]과 함께 베를루스코니 세력이 강력한 곳들이지요.

    이들 소규모 기업들은 납세를 적게 해야만 수지가 맞고, 국가는 이들에 대한 과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도 않고 공공 복지에 기여하라는 요구도 받지 않는 거죠.

    이게 이탈리아 사회의 강력한 현상이에요. 특히 이 나라의 가장 발전된 지역에서 말이죠. 베를루스코니는 이러한 심성을 참으로 잘 대변하고 있어요. 이런 현실의 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겁니다.

    지금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해요. 제 생각에는 그의 행보를 막기는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위 공직이지요. 비록 권한은 별로 크지 않지만, 국가의 정치적 문화적 의제를 제기할 강력한 기회를 갖게 돼요.

    베를루스코니가 대통령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좌파는 타협에 익숙해진 것만 같아요. “베를루스코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잊어버리자”고 말하면서요. 이게 중도좌파, 발터 벨트로니[역주 – 공산당 출신으로 로마 시장을 역임하고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총리 후보로 나섰음]와 민주당[역주 – 과거 공산당원이었던 중도좌파의 상당수가 미국 민주당을 모델로 삼아 중도우파와 통합해서 만든 정당]의 상황이죠.

       
      ▲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을 출간할 예정인 폴 긴스버그의 대표 저서 『이탈리아 현대사』

    이건 정말 치명적입니다. 이 나라의 윤리에도 치명적이지요.

    하지만 여기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의 수많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좌파가 너무나 분열돼 있습니다. 특히 급진좌파가 그렇지요. 그래서 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에는 너무 무력한 상황이에요.

    지난 7년 동안 저는 세 차례나, 급진좌파를 통합해서 하나의 단일 조직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공산주의를 내걸거나 이제는 다른 깃발을 내거는 여러 조직들로 다시 분열됐어요.

    여러분이 흥미를 느낄만한 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방정부 조직 중 하나인 ‘민주주의 형성 센터’가 제 책의 독일어판을 채택해서 5천부를 자체 발간하고 정부 기관에 무료 배포했어요.

    : 베를린에서요?

    : 네. 저는 정말,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제 책은 눈치 보며 할 말 못할 말 가리는 책이 아니니까요. 독일어판 판권을 소유한 바겐바흐 사도 기뻐했지요. 덕분에 상당한 만족감과 함께 희망을 느낄 수 있었어요.

    : 좋은 소식이군요. 더블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길 기대해봅니다. 만약 한 명의 아일랜드 국회의원이라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면, 그건 아마도 반체제적인 걸로 여겨질 겁니다.

    : 그게 고든 브라운이라도 마찬가지겠지요. 그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 <주간 진보신당>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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