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국선언에 '국정쇄신 없다' 받아친 청와대
        2009년 06월 04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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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교수 124명, 중앙대 교수 68명이 3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교수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며 낸 선언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정부의 사죄와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인 집회·결사 및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동국대 경북대 성균관대 성공회대 연세대 한신대 등 서울과 지방의 다른 대학도 이번 주에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로 하면서 이같은 분위기는 전국대학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귀를 막은 청와대의 옹고집 같은 행보를 우려하는 여론이 이처럼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날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일고 있는 국정쇄신 요구를 ‘정치적 이벤트’라며 완강히 거부했다.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교수들 "민주주의 후퇴 우려">
    국민일보 <둘째 아이부터 대학 무상교육 추진 / 말만 앞선 복지부 저출산 대책>
    동아일보 <"북 ‘슈퍼노트’ 9904장 부산 밀반입" 미 비밀검찰국 확인후 유통망 추적>
    서울신문 <임채진 검찰총장 사표>
    세계일보 <이상득 ‘2선 후퇴’ 선언>
    조선일보 <조선일보·미CSIS ‘워싱턴 포럼’ / 오바마 행정부 ‘대북 4대원칙’ 발표>
    중앙일보 <후진타오 "대북정책 재검토하라" 지시>
    한겨레 <교수들 "민주주의 지켜야" 시국선언>
    한국일보 <임채진 검찰총장 사퇴>

    대학 교수들 잇따른 시국선언 발표…민주주의 후퇴 우려

    서울대, 중앙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이어 대구·경북 지역 대학과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의 교수들도 잇따라 시국선언을 낼 것으로 알려져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 한겨레 6월4일자 1면  
     

    서울대 교수 124명은 3일 연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되고,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라며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에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와 함께 이 대통령에게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할 것 △표현의 자유 등 민주사회의 기본권을 보장할 것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점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 등을 요구했다.

    중앙대 교수들도 이날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통해 △내각 총사퇴 △신영철 대법관 사퇴 △MB악법 강행처리 중단 등을 요구했다.

    한겨레는 사설 <교수 시국선언, 엄중히 받아들이라>에서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5년 만에 나온 이번 시국선언은, 지금 민주주의 위기가 그 어느 때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엄중한 인식에 따른 것일 터"라며 "(시국성명의 요구를) 하나로 아우르자면,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질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같은 날 교수들의 시국선언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사설을 실어 대조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사설 <서울대 교수 선언문이 드러낸 법적·도덕적 허무주의>에서 "직업적 운동권의 선언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지성을 길러내는 서울대학 교수들조차 죽음은 모든 걸 덮어버리고 만다는 도덕적·법적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려서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가능성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편집에서도 드러났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기사를 각각 14면과 10면에 단신으로 처리한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1, 2면에 주요기사로 처리했다.

    이 대통령, 정치권 시민사회 안팎의 국정쇄신 요구 거부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 등에서 현 정부의 나라운영에 대해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3일 국정쇄신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질 전망이다.

       
      ▲ 경향신문 6월4일자 1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 같은 정치적 이벤트로 국면을 전환하려 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나라) 당에서도 그렇고 쇄신 이야기가 많은데 국면 전환용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구시대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4·29 재보선 참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여야와 시민사회단체, 대학교수 사회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국정쇄신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자, 현행 국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경향신문)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한나라당 쇄신특위와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이 잇따라 국정기조 전환, 조각 수준의 개각 및 청와대 개편, 대탕평의 정치와 인사 등을 촉구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어 향후 여권 내부의 갈등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동아일보조차 한나라당의 쇄신요구는 일회성으로 지나갈 분위기가 아니라고 내다봤다. 동아일보는 5면 <여 쇄신요구 급속확산…청은 ‘잠잠 모드’> 기사에서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원희룡 위원장은 3일 오전 박희태 대표를 만나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사쇄신과 당지도부 사퇴 등 두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로 구성된 최대 계파 모임인 ‘함께 내일로’도 정기 간담회를 갖고 당 쇄신론에 동참했다.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21’도 1박2일의 모임을 가졌다. 안상수 원내대표마저 이날 의원총회에서 "당정청 쇄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국정기조 변화를 계속 거부하고 계속 정국을 갈등국면으로 끌고 간다면 안팎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 ‘2선 후퇴’ 과연?

    청와대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는 정세 속에서 그동안 여권의 실세로 권력을 누려왔던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한 것은 이런 여권의 돌아선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동아일보 6월4일자 5면  
     

    이 의원은 3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앞으로 정치 현안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경제와 자원 외교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 이원은 신상발언을 자청, 준비해온 글을 읽으면서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관리를 철저히 하며 근신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부덕의 소치"라며 "앞으로 당과 정무, 그리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정치 2선 후퇴’ 발언을 그대로 믿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나라당에서 쇄신요구가 거세지면서 정계은퇴 요구까지 나올 수 있음을 알고 먼저 선수친 것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쇄신특위를 비롯한 소장파 의원들이 2선 후퇴가 아닌 정계은퇴까지 거론할 움직임을 보일 것을 예상해 먼저 한발 물러섰다는 것"(동아일보)이다.

    ‘2선 후퇴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동아일보의 평가도 박하지만 조선일보는 더 차갑다. 조선일보는 사설 <이상득 의원의 ‘정치 2선 퇴진’ 발언을 보며>에서 "정치와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일 말고 그가 하려고 들면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선 후퇴’를 선언했지만 막후에서 ‘그림자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사설 <여당 변화 계기 돼야 할 ‘형님 퇴진’>에서 "그는 연석회의를 떠났지만 지역구 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위원,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역할은 그대로 남았다"며 "애초에 ‘만사형통’이나 ‘형님 정치’가 가리킨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연석회의와 같은 공식적 차원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라는 사적 지위와 여당의 원로 의원이라는 공적 지위의 결합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임채진 검찰총장 사퇴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국민 슬프게 해"

    임채진 검찰총장이 3일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검찰수뇌부 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임 총장은 이날 ‘사퇴의 변’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인해 많은 국민을 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번 사건 수사를 총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께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 한국일보 6월4일자 1면  
     

    임 총장은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달 23일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청와대는 "사태 수습과 수사 마무리까지 자리를 지키라"며 사표를 반려했었다.

    청와대는 조만간 사표가 처리될 것이라면서도 "무책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앙일보 3면 <격앙된 청와대 "본인 심경만 생각한 사표는 무책임"> 기사에서 "대통령에겐 전반적인 국정관리가 중요한데, 임 총장 본인 심경만 생각해 사표를 내는 건 무책임하다"는 얘기가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 보도’ 경향·한겨레 공격한 동아일보, 이번엔 지상파방송 비판

    동아일보가 3일자 신문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자신들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과 이후 논조가 달라졌으면서 보수언론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한데 이어 4일에는 지상파방송 논조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 동아일보 6월4일자 6면  
     

    동아일보는 6면 <상황따라 바뀐 지상파방송 ‘노 전대통령 보도’ / (서거 전 비판모드) "온 가족 비리…돈 앞에 몰락" 무너진 청렴성 연일 비판 / (서거 후 ‘미화 모드’) "불 같은 도전…소탈한 시민" 감성적 언어로 치켜세워> 기사를 게재해 지상파방송의 논조 변화를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1개 면을 털어 보도한 이 기사에서 KBS MBC SBS 등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도덕성이 실추됐다고 연일 보도해놓고, 서거 후에는 검찰에 책임을 돌리고 일대기와 측근 인터뷰로 미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비판에 사설로 반박…"비판과 비난의 차이도 모르고"

    한편, 경향신문은 사설 <비판과 저주의 차이>에서 동아와 조선일보가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경향과 한겨레 등이 서거 후에는 동아와 조선일보 등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전날 주장한데 대해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경향신문 6월4일자 사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내버려 두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반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첫째, 이들 신문은 비판과 비난을 의도적으로 혼동했다. 경향신문은 진보·개혁성을 내걸고 출발한 노 전 대통령이 금전 비리에 얽혀 드는 모습을 비판하고 엄정한 수사를 요구했다. 이는 끝도 없이 잘못과 결점을 책잡고 나쁘게 말한다는 뜻의 비난과 다르다. 우리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신문들이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아니 대선 후보 시설부터 한목소리로 그에게 비난을 퍼부어 온 사실을 기억한다. 그것은 비난을 넘어 사실상 ‘저주’의 수준이었다. 어떤 소설가가 표현한 바 ‘희빈 장씨의 저주’가 그만했겠는가 싶을 정도였다."

    경향신문은 이어 "보수신문들이 이 시점에서 ‘공범의식’을 강요하고 나선 데는 필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며 "당장은 6월 미디어 입법 정국을 앞둔 전열정비로 보인다. 이들이 하나의 정파로서 사익 추구에 몰두해온 모습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라고 덧붙였다.

    미확인 대북정보 난무…’노 전 대통령 서거 물타기’ 의혹 제기하는 언론들

    북한동향과 관련한 ‘첩보’와 ‘정보’가 정부에서 무분별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정부와 일부 언론이 오히려 충돌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4일 미국과 일본의 차분한 대응과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교하면서 정부가 북한과의 충돌위기를 되레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8면 <쏟아지는 북한정보…누가 ‘군사충돌’ 부추기나>에서 "한국 정부는 정부 당국자 또는 핵심관계자 등의 이름으로 언론에 구체적인 정보사항까지 줄줄이 밝히며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준비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게다가 국내 언론들은 정부가 ‘서비스’하는 정보에다 막연한 추측을 덧붙여 발사가 임박한 듯이 긴박한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고 지적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군사충돌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충돌 가능성을 더 크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잇단 대북정부 유출 다른 의도 있나>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대북 정보 유출에서 다분히 국면전환용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곤경에 처한 정부가 정부 내부에서도 조율되지 않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을 언론에 흘려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려 한다는 얘기"라며 "역대 정권의 경험이 말해주듯 정부의 국면전환용 북풍 활용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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